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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Jul 21. 2017

향숙아 고향가자

“향숙아 향숙아~” 뒤따라오는 말은 웅얼거림에 가려 무슨 말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듣지 않아도 따라 나오는 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고향가자’ 이리라. 뜸해도 사흘이 넘지 않게 거의 매일이다시피 들려오는 말이다. 바로 옆집 아저씨의 술주정이다. 째지는 듯한 쇳소리가 이어진다. 그의 아내의 반응이다. “아이고 못 살아 못살아. 그년이 그래 보고 싶으면 가라 누가 못 가게 했나 뭐 때문에 나를 못살게 구노” 이어지는 푸념은 밤공기를 가르고 한참이나 계속된다.


  향숙이 아버지는 전쟁 때 가족을 북한에 두고 홀로 내려온 실향민이었다. 워낙에 말이 없는 분이라 자세한 내막은 알 수가 없었지만 이렇게 주정하면서 내뱉는 말과 그의 아내의 푸념을 들어 추측할 뿐이었다. 일찍 결혼해서 딸아이 하나를 낳고 남한에 사는 친척집에 일거리를 구하러 왔다가 전쟁 통에 생이별을 했단다.

 해방 전에도 넉넉지 못한 살림이었지만 삼팔선이 갈리고 점점 흉흉해지는 북한의 인심과 남 앞에 나서지 못하는 순한 성정으로 그의 아버지가 남한으로 몰래 내려 보낸 것이라고 했다. 간혹 어른들이 쉬쉬 하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전쟁 때 인민군으로 내려왔다가 투항했다고도 했다.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체부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을 보면 후자가 맞지 않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향숙이 아버지는 평상시에는 일체 말이 없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해가 지고야 들어오는데 들어올 때는 반드시 손에 뭔가를 들고 왔다.

 시골 우체부란 흩어져 있는 동네를 다니며 편지도 전하고 심부름도 해야 하므로 적어도 3∼40 리는 걸어야 하는데 시간을 줄이자니 산길을 다닐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눈에  띄는 것이 산나물이요 뱀일 것이었다. 사람이 자주 밟는 곳에 묻어둬야 더 효과가 있다고 부엌 앞에 땅을 파고 묻어둔 뱀술은 십 년이 넘었다고도 했다. 그 집에서는 자주 그렇게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연기가 나곤 했다.


  향숙이는 내 친구였다. 바로 앞집에 살고 있기에 자주 만나 숙제도 하고 놀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소란을 피울 때면 집 밖에 나오지를 않았다. 시골 동네에선 저녁마다 몇몇 집에서는 주정 소리가 나게 마련이고 그런 것에 익숙하기에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향숙이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몹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아마 언제나 자기 이름이 불리는 것이 신경 쓰였으리라. 어느 날 평상에 엎드려 숙제를 하다 말고 “왜 너거 아버지는 맨 날 고향에 가자 하노” 하고 물어보았다. 잘은 모르지만 자기보다 언니인 딸을 몹시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향숙이 엄마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듯이 새침한 편이었다. 음식 잘하고 집안도 윤이 나게 반질거리게 해놓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두 딸의 옷을 유달리 예쁘게 차려 입혔다. 손수 바느질을 해서 옷을 만들고 시골 아낙으로서는 드물게 뛰어난 패션 감각을 갖고 있었다. 향숙이 동생인 은숙이는 얼굴도 예뻐서 엄마의 솜씨가 더한층 빛이 나게 했다. 성격 또한 엄마를 닮아 할 말 다하고 야무졌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부부간에 금슬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향숙이 아버지는 그러한 아내 때문에도 더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내심 자신을 위로해주는 큰 딸은 자기가 가자고 하면 싫더라도 따라나서겠지만 아내와 둘째 딸은 따라나서기는커녕 면박을 줄 것이 분명하기에 언제나 은숙이가 아닌 ‘향숙아 고향가자’였다.


  이제 이렇게 고향을 그리워하던 어른들은 하나 둘 저 세상으로 가고 있다. 그분들로서야 죽어서라도 부모 형제를 만나고 어릴 때 뛰어놀던 고향산천을 다시 보기를 소망했을 것이지만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이 대립된 사상으로 서로를 경계했기에 향숙이 아버지뿐만 아니라 여러 실향민들이 떳떳하게 월남했다고 밝히지 못하고 살아갔을 수도 있으리라.

통일은커녕 점점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고 문화마저 이질화되어가니 통일이 되는 것도 문제라고들 하지 않는가.

  어쩌면 이 실향민들의 마음은 그나마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가리라 염원하는 고향이 있었고 반겨줄 부모 형제가 있었기에 말이다. 부모 형제가 사는 물리적 고향도, 내 마음이 언제나 맴돌고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의 고향도,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없어지고 있지 않나 싶다. 이제 우리는 누구나가 실향민이 된 셈이다.


  평생을 가슴 사무치게 부르던 고향엔 발걸음도 디뎌보지 못한 채 남한과 북한 땅에 딸들만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향숙이 아버지는 이제 저 세상에서 어느 곳의 딸을 부르고 있을지.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의 정씨와 백화처럼 향숙이 아버지도 이제는 반겨줄 고향도 돌아갈 고향도 잃어버리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내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기나 한 것일까? 내 딸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 가자고 할 내 마음속의 고향이 있기라도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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