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iya Jul 25. 2017

청춘은 아름다워라

영화 '수상한 그녀'를 보고

  여러 날의 근거 있는 우울함에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갔다. 시간에 맞기도 했지만 중견배우 나문희와 박인환의 연기 내공을 알고 있기에 기대감도 있었다.

한 없이 푹 꺼진 내 기분은 아랑 곳 없이 다정한 중년 부부들이 꽤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흥, 좋~겠네” 같이 와 주지 않은 남편에 대한 뒤틀린 심사가 화살이 되어 나온다.

 훌륭하게 키운 아들을 낙으로 살아가는 한 할머니가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본다는 줄거리다. 자칫 신파조의 판에 박히게 흘러갈 이야기를 통통 튀게 그려낸 감독의 역량을 높이 사고 싶었다.


  잘 생긴 남자와 사랑에 빠진 부자 집 아가씨 나문희(오말숙). 독일에서 광부로 일하기 위해 떠난 남편은 사망 통지서 한 장으로 돌아오고, 배속의 아이를 살리려는 어머니의 모정은 모진 풍파를 견뎌내게 한다. 시장바닥에서 시래기를 주워다 배고픔을 달래야 했고 자신을 거두어 준 설렁탕집의 비법을 빼내어 그 집을 망하게 한 비도덕적인 일도 아들 하나를 대학 교수로 훌륭하게 키워 냈다는 자부심으로 스스로를 용납했던 그녀였다. “나 보다 자식 더 잘 키운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라며 소리치던 그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자식에 대한 집착으로 며느리와의 관계는 어려워지고 요양원을 운운하는 식구들에 대한 서글픔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그녀는 담담한 심정으로 영정 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들어간다.

젊어서도 못해본 분칠을 영정사진 박으면서 발라 본다는 그녀의 말에 제일 예쁘게 찍어 주겠다는 청춘 사진관의 사진사 말대로, 인생에서 가장 예쁘고 빛나던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가수가 되고 싶었던 꿈이 실현되고, 일찍 떠난 남편으로 인해 미련으로 남아있던 이성에 대한 그리움도 젊은 PD 한승우(이진욱)를 만나 가슴 설렘으로 보상받는다. 일찍 엄마를 잃고 오두리(심은경)에게 포근한 사랑을 느낀다는 그 젊은이에게마저도  그녀는 모정이 앞선다. 이불을 덮어 주면서 어린 아들을 재울 때의 자장가를 조용히 불러준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절 언제나 그녀 품에 안기던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러나,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 다른 삶을 살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가족을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게 된다. 손자가 만든 밴드에서 노래를 하고,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박씨 영감(박인환)의 집에 머물면서 아들네의 옆을 떠나지 못한다.

좌절하는 손자에게 “너는 너가 얼마나 괜찮은 놈인지 너 자신이 모른다는 것이 문제여” 라며 용기를 북돋우고 꿈을 쫓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다던 오두리이지만 가족을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삶의 전부였기에. 

  손자의 사고로 같은 혈액형의 피가 필요했을 때, 피를 뽑으면 다시 늙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팔을 내민다. 

어머니를 알아본 아들이 “제 아들은 제가 책임지고 살게요 그냥 가세요”라고 하지만 “아니 나는 다시 태어나도 하나도 다름없이 살련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래야 내가 니 엄마고 니가 내 자식일 테니까”라며 아들을 보듬는다.

그 순간 극장 안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다.


 한 없이 외롭게 만드는 남편과 아직은 준비되지 않은 어미에게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는 자식들로 인한 서글픔에 영화를 보러 간 나 자신도 똑같은 대답을 했을 것이기에.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일 테니까. “서른 넘으면 콱 죽어 삐릴라 했는데 그때 애가 생기더라고~.”라며 혼잣말을 하는 말숙 할머니(나문희)처럼 원 했든 원치 않았든, 자식이 있는 어미의 마음은 한결같을 것이기에 말이다. 

이성 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모성애라 하지 않는가 라고.


  이 영화에서 해학적인 요소들은 단연코 뛰어나다. 여자를 연령대에 따라 공들에 비유하며 시작하는 것부터, 뽀글 머리 파마를 한 아줌마들을 보고 저것이 브로콜리여 인간이여?라는 오두리의 대사. 그리고 마지막 신에서 김수현(박씨 영감의 젊은 시절)이 늙은 나문희를 보고 “워떠 후덜 거려? 하는 대사에서 모두들 빵 터지게 만듦으로써 자칫 무거운 분위기를 상큼하게 끌어가는 연출의 묘미를 읽게 되었다. 그 연출을 뒷받침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가슴 절절이 사무치는 노래 가락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향숙아 고향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