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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Jul 05. 2017

대모산에 올라

  대모 산에 올랐다. 잎들이 다 떨어진 나무들이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스산한 바람을 이겨내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노랑 빨강 꼬까옷으로 한껏 멋을 부리며 으스대더니 나무들도 가는 세월은 어쩌지 못하나 보다.


  20여 년 전 대모 산을 처음 본 날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비 온 다음날이어서인지 마 알간 아름다운 단풍들에 온 마음을 빼앗겼었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치동의 그 노른자 아파트를 포기하고 대모산 아래 5층짜리 아담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들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그 소리를 감내할 만큼 매력적인 산이었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라 그야말로 이순신 장군처럼 온 산을 놀이터로 여기며 놀았다. 친구들과 아지트를 만들고 제법 그럴듯하게 암호를 대고야 들어갈 수 있도록 비밀문도 만들어 낮에는 아이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산꼭대기 벤치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아빠와 함께 온 여자 아이 둘을 보았다. 빨갛게 얼은 볼을 하고선 쉴 새 없이 조잘대는 아이들을 남편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우리도 저랬었지.

 우리 가족에게 대모산은 가족의 쉼터였다. 다들 바쁜 일상이었지만 토요일이나 일요일엔 반드시 함께 산을 올랐다. 산 구석구석에 무슨 나무가 있는지 언제쯤 새 순이 올라오는지 산딸기는 어느 계곡으로 가야 많이 있는지를 훤히 꿰고 있었다. 가을이면 알밤을 줍는 재미로, 겨울이면 하얗게 내린 눈밭에 귀신 할머니 집과 눈사람을 만들러 오르곤 했다. 산을 오가며 조잘대는 아들과 딸의 이야기에 시간을 쪼개 바쁘게 살아가는 삶도 힘든 줄 모르고 보낸 것 같다. 김정일이도 무섭다는 중2도, 입시지옥의 고등학교 과정도 수월하게 지내었다. 산과 함께 한 어린 시절이 정서적으로 아이를 안정시킨 덕이라 여겨진다. 


  오늘은 남편과 단둘이 아무 말 없이 산을 올랐다. 서너 발 앞서 올라가던 남편이 뒤돌아보고 기다려 주면 그 마음이 고마워 그저 씩 웃으며 따라간다. 그리곤 서로 말없이 또 걸어간다. 아니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서로의 맘을 알고 있는 이심전심이다. ‘이쯤에서 아들이 넘어져 울었었지. 이 고개를 넘으면서 딸이 다리 아프다 칭얼대었지. 여기선 급하게 응가하고 뒤처리하느라 온 식구가 깔깔대던 곳이지.’ 가끔씩 주고받는 말은 이런 기억의 파편들 뿐. 우리의 산행은 여기에 있지 않는 아이들로 가득할 뿐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정기적인 산행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급한 일이 있네, 데이트를 하러 가야 하네, 시험일이네,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아이들에게 처음에는 섭섭한 마음이 앞서 싫은 소리를 하거나 감성을 자극해서라도 함께 하려고 했었다. 몇 번을 그러고 나니 서로가 더 이상 즐거운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자식들의 개인생활을 존중해 주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그것도 그만두었다. 남편과 둘이서 여행도 가고 영화도 보고 재래시장도 가 보았지만 그 또한 별 재미가 없어져갔다. 뭐 빠진 뭐처럼 도무지 허망할 뿐이었다. 이제는 주머니도 넉넉하건만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도 없고 모자랐지만 나눠먹던 그 맛도 아니다. 그저 휑하니 돌아보곤 “별 것도 없네.” 하고선 서둘러 돌아오곤 한다. 그 더디 자라는 것 같던 아이들은 벌써 둥지를 떠날 때가 되어 이제 우리 옆엔 아무도 없다. 언제나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져보나 했던 날이 왔건만 우리는 할 일이 없이 이렇게 물끄러미 옛날이나 그리워하고 있을 뿐이다.


  “좋은 때입니다. 이때가 제일 좋은 때이지요” 라며 일어서는 남편의 말에 아이들 아빠도 행복한 표정이다. 가져간 귤 하나씩을 나눠주며 언제나 행복하라는 기원을 했다. 아이들은 자라서 제 갈 길로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 이건만  저 아이 아빠도 한 번쯤은 허전한 맘을 갖게 될 거란 생각에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내려오는 길에 나는 짐짓 힘들다는 엄살을 부리며 슬그머니 남편 손을 잡았다. 괜히 이말 저말 조잘대면서 남편의 기분을 밝게 하려고 했다. 들깨 칼국수를 사달라고 졸라도 보며 아이들 빈자리를 메우려 했다.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집에 돌아왔을 땐 힘이 쏙 빠진 내 모습이 허전해 보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처럼 둥지를 가득 채웠던 아이들의 존재가 쉽게 잊혀 질리는 없으리라.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 서로 보듬고 가정을 이루었고 훌륭하게 새끼들을 성장시켜 제 몫을 하게 했으니 이제 무슨 일인들 못 하겠는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다시 둘이 되었을 뿐이다.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산다는 의미로 두 획이 기대어 사람 인(人)이 되었다는데 서로 모자란 곳 채워주고 넘치는 것 나눠 가지며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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