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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Jul 14. 2017

같이 가실래요?

 남편이 출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을 접 은지 일 년 남짓. 자의 반 타의 반의 퇴직이었지만 그런대로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처음 몇 달은 그동안 바빠서 하지 못한 일들로 행복해했다. 일하느라 소원했던 친구들도 만나면서 바쁘지만 행복해했다. 그리고 가족 여행도 두세 번 다녀오고 틈틈이 외출도 하며 지냈다. 

 남편이 퇴직하던 날, 나는 현모양처의 흉내를 내느라 그동안 고생했고 경제적 여유도 있으니 평소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면서 즐기며 살라고 말했다. 한동안 우리 둘 다 행복했다. 아침에 아이들이 나가고 나면 동네 산을 오르고, 맛있는 음식도 사 먹으면서 그동안 서로 일하느라 바빠서 못 해 본 일들을 하며 지냈다. 집안 살림을 하며 직장에 나가느라 힘들어했던 내 일들을 남편이 거들어 주니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즐거움도 시들해져 귀찮아지고 그는 자연히 아이들에 대한 잔소리가 늘면서 마주 보며 웃던 순간들도 줄어갔다. 혼자서 운동가는 것도 싫어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아침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집을 나가기 시작했다. 어디를 그렇게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서점에도 가고, 아직도 일하고 있는 동료들의 사무실에도 둘러본다는 것이다. 점점 말 수도 줄고 처진 어깨가 신경 쓰이던 때쯤 잠자리에 돌아누워 자기도 다시 출근을 하고 싶단다. 

  사실 나도 그즈음에 남편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지고 있었다.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없으니 들뜬 생활이 될 수밖에 없었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하다못해 동네 아낙들과의 수다 떠는 일조차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람들과의 왕래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할 수 있을 때 안 하는 것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돌아누운 그의 바람 빠진 어깨를 보니 십여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딸아이가 고등학생 때였을 것 같다. 한창 휴대폰이 유행이었고 아이도 그때 새로 산 폰으로 시간을 보내다 그만 아빠한테 들켰던 모양이었다. 아빠가 휴대폰을 빼앗아 박살을 내버리자 아이가 조목조목 따지면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대거리를 했다. 험악해진 둘 사이에서 아이를 나무라고 현명치 못한 남편의 행동에 오지게 한 소리를 해야겠다고 작정하고 방에 들어섰는데 그때도 저러한 슬픈 어깨가 보였었다. 논리로는 아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는 언제쯤 아빠의 슬픈 어깨를 이해할 것이며 큰소리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아빠의 마음을 가슴으로 느낄까? 생각했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아버지의 언행, 진솔한 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고 소리부터 지르는 아버지에게 아이는 답답하고 한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는 뒷면에, 아버지의 무한한 애정과 매끄럽게 아이와 대화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질책과 어색함을 아이는 이해할 수 있을까? 침묵 속에 돌아누운 남편의 어깨가 그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뒤에서 남편을 껴안았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일해 온 사람이다. 한 남자로서의 삶은 제쳐둔 채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자신이 이루어 놓은 성 안에서조차 설 곳을 잃고 이렇게 쓸쓸히 돌아누워 외로워해야 한단 말인가.

  은퇴한 남편들의 이야기가 친구들의 모임에서 농담 삼아 화젯거리가 되곤 한다. 젊은 시절에는 한가락씩 하며 잘 나갔던 남자들조차도 요리를 배우러 다니네, 아내의 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에 들어와야 한다는 등, 여러 말들이 도마에 오른다. 물론 농담 삼아하는 말들이겠지만, 어쩐지 뒤끝이 씁쓸하다. 나 또한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여자들은 갱년기를 무기 삼아 위로도 받고 당당한 요구도 하지만 남편들의 그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질지.

  “여보, 이제부턴 같이 갑시다. 2인 1조 면 무엇인들 못 하겠어요?” 일자리를 찾으러 부지런히 다니는 남편의 어깨가 다시 당당해지도록 힘주어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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