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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Jul 04. 2017

청새치 나무로 살고 싶다

 올라갈 땐 못 보았었다. 다섯 시간의 산행 끝에 설악산 정상에 오른 후, 파김치가 된 몸을 끌고 다시 내려와야만 했다. 숙소 예약이 안되어서 잘 곳이 없었고, 힘이 남아도는 몇몇 친구들이 맛 집 순례를 꼭 해야 한다고 우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오른 후 다시 그 시간만큼을 내려올 때는 모두들 힘이 빠졌고 입을 굳게 다문 채 주위를 둘러볼 여유조차 없었다. 


  이슬을 머금은 아침 산 공기와 콸콸 흘러넘치는 계곡물을 옆에 끼고 오를 때는 그 나무가 그곳에 있는 줄을 몰랐었다. 너럭바위에 둘러앉아 싸온 과일이랑 음식을 나눠먹을 때도 몰랐었다. 아직은 힘이 남아서 옆 사람들과 이야기하기에 바빴고, 자연경치를 감탄하고 만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중간쯤 내려왔을 때였다. 휘감아 흘러내리는 계곡 한가운데, 아름드리나무가 사지를 활짝 펼치고 서 있었다. 마알간 속살을 드러낸 채였다. 내려다보았기에 보였는지도 모른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상어들과의 사투 끝에 살점을 다 뜯어 먹히고 가시만 남았던 청새치처럼, 그 이름 모를 나무가 그렇게 서 있었다. 푸른 잎사귀가 하나도 없는 걸 보면 분명 죽은 나무이건만 힘차게 흐르는 계곡물 사이에서 쓰러지지도 않고 묵묵히 그 커다란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난 뒤의 당당함과 쓸쓸함을 안은 채.


  요즘 어느 스님의 ‘내려놓기’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인생길의 반을 돌아갈 우리 나이쯤 되면 누구나가 손아귀 힘이 풀리게 된다. 지금까지 악착스럽게 움켜쥐었던 모든 것들, 돈도 명예도 가족도 적당히 풀어진 마디 사이로 흘러 보내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나 또한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어느 정도 일뿐 내려놓기는커녕, 어떤 면에선 더 강한 집착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 같다.


  아마 자식에 대한 애착만큼 질기고도 끈질긴 것이 또 있을까? 자식 가진 부모야 예외 없이 자식에 눈멀어 한평생을 살아가기 마련일 것이다. 어느 곳을 본들 예쁘지 않은 구석이 있을까? 그렇지만 그 사랑이 깊고 관계가 좋을수록 객관적 눈을 가지거나 독립 개체로 보기 힘들기 마련이다. 딸애도 그런 고슴도치 새끼였다. 내 자식은 산처럼 커 보이는 게 인지상정이라 딸아이가 선택한 남의 자식은 반 눈에도 차지 않았다. 큰소리 몇 번으로 시작된 전쟁은 급기야 딸아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너 마음대로 결혼할 거라면 나한테서는 한 푼도 받아갈 생각은 마라라‘는 낯 뜨거운 말까지 스스럼없이 하기에 이르렀다. “엄마 제 인생 이예요, 잘 살든 못 살든 내가 선택해야 내가 책임지고 살 거잖아요. 엄마가 내 걱정되어서 그러시는 줄은 알지만 절 믿고 맡겨주세요. 계속 이러시면 영원히 제가 주인으로 살아갈 수 없을 거예요. 제발요, 엄마!” 아이의 말대로 자기 인생인데 내가 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는가, 고생을 안 해 봐서 저 모양이지 세상에 부족한 게 없이 살아서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라, 호되게 고생을 해 봐야 내 심정을 이해하지. 이렇게 흑과 백의 수천 가지 생각들이 들쭉날쭉하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수긍도 해보지만 막상 얼굴을 보기라도 하면 분노의 화신이 되곤 했다. 

집착과 번뇌는 목구멍에 달라붙은 가래처럼  뱉어 내지도 못하고 삼킬 수도 없이 온 삶을 지치게 하고 있었다. 그러던 때에 이러한 꿈을 꾸게 되었다.


왁자지껄 온 가족이 모였다. 친정 시댁 할 것 없이 모두들 웃음꽃이 만발이다. 동서가 태어난 지 이틀이 된 아이를 내게 준다. 난 손님을 맞이하다 말고 누워있는 아이를 보며 함박웃음을 보인다. 아이가 일어나 어렵게 첫걸음마를 떼더니 초고속으로 보여주는 인류의 진화 속도 마냥 일곱 발자국을 걷는다. 꿈속에서도 나는 ‘석가모니다’ 하고 생각한다. 아이는 뛰기 시작하고 난 뒤에서 석 가 모 니라 운율을 넣어 부른다. 아이는 뛰어가면서 ‘숫 도 다 나’라 맞받는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뛰어가서 이제는 중학생만큼 자란 아이 앞에 두 무릎을 꿇고 부처님을 뵙게 되어서 감사하다고 눈물 흘리며 예경 올린다.


  창문에 비치는 둥근달을 보며 멍하니 누워 있었다. 꿈속의 아이는 처음 보는 얼굴이건만 아주 자연스럽게 딸아이라 믿게 된다. 짧지 않은 삶을 살아왔는데 왜 난들 지금의 내 모습이 바르지 못하다는 걸 모르겠는가?

신은 우리에게 삶이 쓰다는 걸 가르쳐 주기 위해 먼저 그렇게 달콤함에 젖게 하시나 보다.

 삼천 년 전 이렇게 둥근 달빛 속에서 아들은 생사의 문제를 풀기 위해 집을 떠나고 아버지는 그 허망함에 하염없이 뜰을 거닐었을 것이리라.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 숫도 다나의 심정은  나와는 비교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나 훌륭하고 바르게 자란 아들이기에 배신감 또한 컷을 것이고 세상을 잃어버린 심정이었을 것이다.

 

 갚아야 할 빚이 있든, 보답할 은혜가 있든, 부모와 자식의 끈질긴 집착의 고리를 생채기 내지 않고 풀어내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인과에 의해 살아가며 내가 남의 삶에 관여할 수 있는 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도 안 된다는 걸 인정하고 깨닫기까지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그러기에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부처님을 자식으로 둔 숫도 다나가 아닐까?

  계곡의 그 나무처럼 내 것을 다 내어주고 난 뒤의 당당함을 나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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