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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Nov 30. 2021

영원한 이별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촛불이 완전히 소진하여 심지마저 다 태우고 희미한 연기 자욱만 남기듯이 아버님도 그렇게 생을 마감하셨다.

입관하기 위해 놓여있는 아버님의 주검은 두 손으로 가볍게 안아 올릴 수 있을 것처럼 작아 보였다.

정신이 빠져나간 물질의 덩어리는 너무나 보잘것없어서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작고 초라한 주검을 보면서 갑자기 사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살아온 날들은 어떻게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남은 삶만큼은 허투루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일련의 행동들이 남편의 죽음에 맞닥뜨린 두려움에서 하는 것이라 백번 이해한다 하더라도 아버님은 그다지 바람직한 삶을 살아 오시지는 못한 것 같았다. 결혼 후 아버님에 대한 어머니의 넋두리는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들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을지 모르지만 비난받는 자도 비난하는 자도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있는 자식들조차도 초라하게 만들 뿐이었다.

아버님은 말씀이 별로 없으시며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시는 온화한 성격이시라 어머니의 비난이 의아하다 생각해왔다. 결혼 후 띄엄띄엄 보는 관계로 그분들의 관계를 알 수는 없었지만 상대의 가슴에 저러한 한을 심어 준 일이었다면 왜 이렇게 시간이 흘러 올 동안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을 하지 않은지가 의문이었다. 그 연세의 한국 남자들은 도대체 어떤 교육을 받고 살아왔는지 대체로 아내들의 가슴에 한을 남기고 떠난 이야기들은 주변에 널린 일이다. 자신의 행동들에 대해 추호도 미안함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상대의 지나친 성격 때문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죽음을 앞도고 짧지 않은 병상생활 기간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단 말인가?  

누구도 죽음은 피해 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눈앞의 영화에 눈이 멀어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행동한다. 사랑도 가족 간의 유대도 재물도 명예도 영원할 것이란 착각 속에서 움켜쥐고 그것을 지키려 남에게 주는 상처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은 것은 저 초라한 주검 하나와 주변인들에게 준 상처뿐이지 않은가.

  아버님의 주검 앞에서 60년 간의 이 삶을 되돌아보며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남은 생은 좀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기적이란 것은 내 것을 지키기 위해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라 체면도 허례도 버린 참다운 삶을 말한다. 

환갑이 넘으면 죽음이라는 것은 흔한 일상이 된다. 끊임없이 날아드는 지인들 부모님의 부고장, 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드물지도 않은 친구들의 부고장으로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죽음이라는 것을 도외시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그런데도 고개를 돌리며 애써 무시할 것인가?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늦지 않게 해야 할 일들을 적어보았다.


  우선, 우리는 지난 삶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진정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그것이 물건이든 정신적 지주이든- 깊이 사고해서 생활을 단순화해야 한다.

둘째,  살아오면서 의식을 했든 하지 못했든 남에게 조그마한 상처라도 주었다면 진심으로 속죄하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 직접 사과하고 남은 생동안 더 잘하려고 노력하거나 사과할 상대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났다면 마음으로라도 그들에게 참회해야 한다. 흔히 가족에게 입힌 상처는 뭉개버리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매일 보는 상대에 대한 민망함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가 상대적이다 보니 나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가까운 이에게서 받은 상처야말로 미움과 원망이 자라 손을 쓸 수 없는 증오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최소한 내가 떠난 자리에 사랑은 넘쳐흐르지 않더라도 미움과 원망이 남아서야 되겠는가.

셋째, 가족 간의 결속을 느슨하게 해서 정신적으로 독립된 삶을 살아야 한다.  

늙으면 가족밖에 남는 것이 없다고, 자식들이 노후의 기쁨이고 의지처라며 자식을 놓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새들도 둥지를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법인데 인간들은 성장하여 떠난 자식들도 끌어안으려 할 뿐만 아니라 다 큰 자식들이 부모에게 빌붙어 사는 것을 금수저니 은수저니 하며 부러운 대상으로 여기기 조차 한다.

부모와 자식은 S극과 N극처럼 자연스럽게 서로를 끌어당기는 관계이다. 나에게 생명을 주고 한 사람의 성인으로 살아가게끔 키워준 부모의 사랑을 모르는 자식도 없을 것이고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자식들이 소중하지 않은 부모도 없다. 물론, 자연엔 그렇지 않은 별종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하지만 그런 소중한 자식도 성장하여 둥지를 떠날 때가 되면 비록 눈물로 지새우는 밤들이 계속된다 해도 그들을 놓아야 하는 것이 우리 부모들이다. 우리가 부뚜막에 올려놓은 아이마냥 전전긍긍 걱정하는 자식들은 사실 우리보다는 월등히 수승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살아가면서 매일 느껴가고 있다. 늙은 부모를 사랑해 주는 자식이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최고의 삶이겠지만 오느냐 안 오느냐로 자식들을 속박하며 탓해서도 안될 것이다. 복을 받든 안 받든 그것은 우리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효가 사회의 근간이었던 조선시대에도 효부상이 있었지 않는가. 일상적이고 흔한 일이었다면 상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나의 죽음은 내가 준비한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한 달 전, 화장실 출입을 할 수 없는 처지라 병원에 모셔야 했다. 큰아들인 남편이 직장일로 병원에 늦게 도착했기에 남편을 대신하여 모든 병원서류에 내가 서명을 했다. 위급한 상황이 오더라도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도. 아버님이 몇 달 전에 그렇게 하라고 말씀도 하셨고 우리도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겨왔기에 망설임 없이 서명을 했다.

장례식을 치르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아버님 생각이 날 때마다 의사의 위중한다는 말에 침상에 누워서 팔운동을 하던 그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과연 아버님이 진짜로 원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밤낮 머릿속에 머물러 결국 내 몸과 마음이 병들어 한 달을 앓았다. 병원에 늦게 온 남편이 원망스럽고 병원 휴게실에서 대기 중이던 어머님과 시동생에게 미루지 못한 내 알량한 첫째라는 책임감이 그지없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러한 아픔을 절대로 주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최소한 의식이 있는 상태로 병원에 간다면 (요즘은 미리 신청을 할 수도 있단다) 내 삶의 결정권은 내가 가지고 싶다.


지난날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열정이 있었기에 자식들을 낳아 키웠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젊음을 준다 하더라도 돌아가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적당히 주름진 내 얼굴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물론 내가 모르는 나로 인해 받은 상처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제나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는 지금이 내 생에 최고로 좋은 날인 것 같다.

사 랑 합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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