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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Jul 11. 2017

맹출이 엄마

어릴 적 우리가 살던 집은 맹출이네 문간방이었다.

 맹출이 네는 원래 식구가 많은 집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세 들어갈 즈음에 큰 아들은 원양어선을 타러 가고 둘째 아들은 택시 운전을 한다고 대처에 나가 있을 때라서 자연히 집이 비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그 마을에 살게 되었다. 아이들이 많은 가족에게 쉽사리 집을 빌려줄 사람들은 드물어서 하루를 꼬박 찾아다닌 뒤에야 겨우 그 집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많은 식구에 부엌이 딸린 방 한 칸짜리 집도 그저 감지덕지할 뿐이었다.

 골목을 끼고 우리 집이 있고 우리 마당을 지나야 맹출이 네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이다 보니 좋든 싫든 밤낮 그 집 식구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화장실이라 할 것도 없는 변소가 맹출이 네 집 옆에 딱 한 개뿐이었으니 자연 한 집안처럼 어울려 살아야 했다.


 그 당시 맹출이 엄마의 나이는 되짚어 생각해 보면 쉰이 넘었을 것 같다. 원양어선 선원이었던 큰아들은 장가갈 나이가 넘었다고 했지만 6살 막내인 맹출이가 있었으니 그 여자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그녀의 성격은 참 변화무상하다는 말이 맞을 정도였지만 어린 우리들조차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했기에 은근히 우리는 그녀를 놀림의 대상으로 여기곤 했다. 좋을 땐 간이라도 빼 줄듯이 엎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도 그녀에게는 이유가 되어 싸늘한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 날 아침이면 당장에 변소 간 이용이 거절당한다. 똥장군이 변소 간 앞을 차지하고 새벽부터 온 동네에 인분 냄새를 풍기면서 똥통을 채우고 있는 것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다행히 학교나 버스 터미널로 뛰어가 해결이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곳이 언제나 무슨 귀신이 나온다느니 누구네 장가 못 간 총각이 목메 죽은 곳이라는 등 섬뜩한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이 따라다니는 곳이라 좋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우리 아이들은 그녀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하며 아부 아닌 아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는 언제나 이용당하는 것은 막내 동생이었다. 맹출이는 6살이었고 막내는 5살이었지만 체구나 인물 면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데다, 여섯 살보다 다섯 살 동생이 글자를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는다는 사실에 적잖이 기죽어한다는 사실을 우리 다섯 형제들은 누구나 알고 있었기에 큰 애들은 맹출이가 잘하는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놀이를 유도하고 맹출이의 기를 한껏 살려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기가 산 맹출이는 평소에 찍소리도 못 하던 놈이 갑자기 장군이나 된 듯이 네 활개를 치면서 거드름을 피운다. 그러면서 유일하게 아는 박 맹출 이라는 세 글자를 땅바닥에 써 갈기며 뽐내는 것이었다. 우리 다섯 형제는 모두 손뼉을 치면서 칭찬해 주고 그동안의 우리의 노력을 자랑스러워하면서 그녀를 흘끗흘끗 보곤 했다.

 이쪽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척 똥통만 채우던 그녀도 슬그머니 다가와,  “함 보자, 우리 아들이 진짜 이름을 쓸 줄 안다고? 아이고야, 참말이네 정말 참말이네 니 누구한테 배웠노 참말 니는 커서 선상님 될라나 보데이” 하며 슬그머니 끼어든다. 그러한 날엔 며칠간의 변소 간 출입은 걱정을 안 해도 될 뿐만 아니라 색다른 반찬도 상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큰 도시에서 택시 운전을 한다던 둘째 아들이 간질병으로 집으로 돌아온 날, 그녀는 아들이 사 온 나일론 양말을 들고 우리 집으로 건너왔다. 마루에 앉아 아이들 양말을 꿰매고 있던 엄마도 그 나일론 양말이 좋은지 자꾸만 만져보곤 하는데, “사모님요 그 지랄병인가 뭔가는 장가가서 섹시하고 자기만 하면 낫는 다는데 얼른 장가를 보내야 할 낀데 지가 눈 맞아서 데불고 살던 가시나가 하나 있다는데 데려 와야 하겠지예” 그렇게 데려온 색시와 신방을 차리고 여러 달을 보냈지만 그 지랄병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자꾸만 심해지는 것 같았다. 

 무당이 불려 오고 어스름 무렵 시작된 굿판이 해가 부옇게 떠오를 때까지 계속되었지만 굿판이 벌어지고 있는 그 자리에서도 땅바닥에 나뒹굴어 버둥거리는 것은 계속되었다. 객귀가 들려서 그렇다느니 조상 묘를 잘못 써서 그렇다느니 거기다 색시네 집 조상까지 굿판에 불려 나와 무당의 춤 장단에 놀아났지만 도저히 그 병은 나아지지를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맹출이 엄마는 언제나 꼭두새벽이면 물동이를 이고 집을 나섰고 우리 형제들이 추워서 이불속을 못 벗어나는 시간에도 푸우 푸 양동이에 흘러내리는 물 훔치는 소리를 내면서 대 여섯 번을 오가는 것이었다.

 큰 아들이 돌아온 후, 그 병은 귀신이 들은 것이 아니라는 소리로 온 마을이 술렁거리고 드디어 둘째 아들 내외는 방앗간을 한다는 처갓집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그 동네를 떠나 왔지만 아직도 ‘맹출이 엄마 온다’라는 농담은 우리 형제들 사이에 남아서 옛 기억을 되새기곤 한다.  어린 시절 무섭고도 우습게 보였던 그녀도 지금은 호호 할머니가 되었거나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생활의 질곡을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맞아들이던 우리네 촌 아낙네의 모습. 배우지 못했어도 아는 것이 없어서도 살아가는 그 힘만은 대단했던 우리네 아줌마들. 지금 내 나이가 그즈음인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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