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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아줌마 Mar 11. 2023

신은 그만 잊으세요


우연히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것을 계기로 이후 나는 영혼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 20년이나 진지하게 영혼의 문제를 탐구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종교나 신神의 문제에 관심을 쏟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신과 사후세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영혼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오직 이 곳, ‘나의 삶’이 펼쳐지는 이 시간을 조금 더 수월하고 의미 있게 살고 싶어서다.


나에게 영혼은 내 운명의 주체를 의미한다. 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나의 영혼이며, 그래서 운명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면 영혼의 의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열렬히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신도, 내세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신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신은 그만 잊으세요



타임머신이 개발되어서 우리가 구석기 시대로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아주 신이 나서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것이다.


“미래에는 핸드폰이 있어서 화상통화도 할 수 있고, 우주선을 타고 달에도 갈 수 있어요!”


하지만 핸드폰도, 화상통화도 알지 못하는 구석기인들은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고 눈만 껌벅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화상통화는 멀리 있는 사람의 얼굴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기술이에요.’ 하며, 우리의 경험을 구석기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경험으로 번역하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의도와 달리 구석기인들은 갑자기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지도 모른다. 그들이 아는 한, 멀리 있는 사람을 갑자기 데려올 수 있는 존재는 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과 신의 관계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류가 과학기술을 활용하게 된 것은 길게 잡아도 500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시간 동안 지구의 표면을 바꾸어 놓을 만큼 어마어마한 변화를 이루어냈다. 그러니 만약 영원에 가깝도록 존재한 신이 계신다면, 신은 얼마나 대단한 것들을 이미 이루셨겠는가. 또, 이미 그러한 문명을 이루신 신께서 우리에게 다가와 그 이야기를 해 주신다 한들 우리가 알아들을 수나 있을까?


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적 갈등이 바로 이러한 ‘이해 불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차원이 다른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3차원 세계에 사는 존재가 2차원 평면에 사는 존재에게 정육면체를 설명한다고 해 보자.


정육면체가 드리우는 2차원 그림자


3차원의 존재가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2차원의 존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림자 뿐이기 때문이다.


3차원 입체의 2차원 그림자는 그림처럼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 육각형 등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2차원 존재가 이를 두고 진실을 가리자고 들면, 필연적으로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는 신에 대한 진실을 가리고자 하는 모든 이론이 이와 같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오히려 신에 관한 이야기를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이 신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외경畏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간혹 사람들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 증거로 ‘이 세상의 모습’을 내밀곤 한다. ‘이 세계를 보라. 신이 존재한다면 이 혼란스럽고 혼탁한 세상을 그냥 두고 보실 리가 없지 않은가!’라고. 하지만 나는 이 또한 잘못 본 그림자의 하나일 뿐이라 생각한다.


물론 어떤 사람은 구석기 시대로 갈 수 있다면, 당장 그 곳에 가서 왕이나 신으로 군림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그 세계가 잘 성숙해 갈 수 있도록 가능한 한 개입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며 보호하고자 할 것이다. 인간도 최소한의 양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이러할진대, 신은 오죽하시겠는가.


그래서 나에게는, 힘들더라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만히 지켜보며 돕는 신의 마음이 오히려 더 크고 깊은 사랑으로 느껴진다.




나는 예수님이나 부처님처럼 큰 종교를 일으키신 분들이 정말로 신적인 존재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신들이 존재하는 또 다른 차원과 문명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천 년간 부정되지 않을 지혜를 인류가 그토록 미개했던 시대에 앞서 드러내 보일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딱 여기까지이며 여기까지여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과 신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우리는 결코 신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어린아이가 성장해 가면서 조금씩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듯이, 우리의 의식이 성장할수록 조금씩 더 신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신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영혼의 세계를 말하고 싶은 것도 이런 이유이다. 우리 삶의 목적이 신께 의지하거나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성장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원래 한 가지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다른 일도 잘 하는 법이다. 그러니 이 생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내세인들 잘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관심은 오직 이 생을 잘 사는 데 있다. 내세와 신의 문제는 죽고 나서 또 다른 차원이 나타나면 그 때 가서 해결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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