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정신의 구조 - 6
정신을 구성하는 네 층
인간은 '육체와 영', 혹은 동아시아에서 정精과 신神이라 부른 두 차원이 중첩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비유컨대 육체가 땅이라면 영은 자기장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땅과 자기장만 있다고 지구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존재의 기반일 뿐이고, 지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공기나 물 같은 매개 요소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재 구조에도 육체와 영을 이어주는 세부 구조들이 있는데, 오늘은 이를 살펴봄으로써 존재 구조에 한 발 다가가는 작업을 해 보려 한다.
그런데 작업을 시도하기 전에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다. 바로 '언어'다. 서양 철학은 존재 구조를 명확히 밝히지 못해 언어를 매우 혼란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는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써 왔던 표현으로 설명을 이어가려 한다.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일상에서도 사용하는 용어들이라서 몇 가지만 익히면 곧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육체와 영'이 아니라 '정신(精神)'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 보자.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우리는 '정精과 신神'이라는 두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의학 경전인 『황제내경』에서는 이와 더불어 '혼'과 '백'이라는 또 다른 개념을 소개한다.
신을 추종해 오가는 것을 혼이라 하고
隨神往來者謂之魂
정과 나란히 출입하는 에너지를 백이라 합니다
並精而出入者謂之魄*
즉, 신(=영靈)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혼魂이라는 기관이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와 나란히 출입하는 에너지 기관이 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도식에 포함하면, 우리의 존재 모형은 이제 아래와 같이 세분된다.
정, 백 같은 개념이 한자가 낯선 세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혼백', '정신' 등의 개념이 아직 쓰이고 있으니, 이해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관용어처럼 쓰이는 이 말들 안에, 실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답이 모두 들어있다.
먼저 신(神)은 이전 글에서 소개했듯이, 내 존재의 토대가 되는 근원, 즉 본래의 '나'이자, 흔히 영혼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혼은 신(神)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정신 기관, 즉 지금까지 우리가 의식이나 마음으로 표현해 온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앞에서 '의식으로 에너지를 움직일 수 있음'을 간단한 실험을 통해 알아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존재 구조 안에 육체 뿐 아니라 에너지를 저장하고 운용하는 영역도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백(魄)이다. 백은 물질적 몸의 형태를 잡고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 뿐 아니라, 외부 에너지 변화를 의식에 전해주는 매질의 역할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정(精)은 눈에 보이는 물질 구조를 의미한다(정精과 육체는 사실 다른 개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시 다룬다).
위에서 간략히 요약했듯이, 인간은 정, 백, 혼, 신이라는 네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존재를 이루는 네 구조는 어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땅과 자기장처럼 차례로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구의 구조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장이 있어서 전자가 존재할 수 있고, 전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원자가 이루어지고, 원자가 결합하여 분자가 되듯이, 우리 존재의 각 층도 그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작용한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말을 듣고 사과를 떠올리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흔히 눈과 뇌만 있으면 '사과'를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과를 떠올릴 때 우리가 그저 '말'만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사과의 색깔과 형태는 물론이고, 사과와 연관된 추억까지 동시에 떠오른다. 그렇다면 사과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사과'라는 소리 뿐 아니라 사과를 이루는 색의 고유 진동, 향의 고유 진동, 형태에 대한 정보가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감각된 정보와 저장된 정보를 비교해 순간적으로 그것이 '사과'임을 판단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보는 어디에 저장되어 있을까?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필요한 모든 색에 대한 정보, 모든 소리에 대한 정보, 모든 촉감에 대한 정보가 과연 '뇌'라는 좁은 용량 안에 다 담길 수 있을까?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 '저것이 사과구나'라는 한 가지 판단을 위해서도 엄청난 양의 정보를 엄청난 속도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 존재의 두 차원에 관하여
실제로 AI는 인간 아기도 할 수 있는 작업을 해내기 위해 엄청난 계산을 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챗GPT-4에 질문 하나를 입력해도, 문제에 따라서는 10W LED 전구를 3분간 켤 수 있는 전력이 소모된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반도체라는 물질 기반의 정보 처리로는 한계가 있어서 현재 정보 산업계는 더 적은 에너지로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 한 번에 많은 정보 상태를 조작할 수 있는 양자를 이용하지 않으면 정보량은 물론이고, 그에 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할 점은 양자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발견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자연에 양자가 존재했기 때문에 양자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미 일종의 양자 정보망을 장착하고 있지 말라는 법이 없다. 실제로 인간이 약간의 음식 섭취만으로 AI를 능가하는 추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보면, 매우 신비한 일이다.
공부에 관심이 있는 분은 아시겠지만, 근대와 현대를 구분 짓는 20세기의 최고 발견은 '양자역학과 무의식의 존재'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또 다른 구조와 차원에 접근할 수 있는 문을 연 것과 같다. 물론 아직 물리학자들은 그 발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학생이 '양자역학의 의미'를 물으면 '닥치고 계산이나 해!(Shut up and calculate!)'라는 답이 돌아온다는 우스개가 퍼져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눈에 보이는 거시계를 구성하는 분자의 세계와 달리, 원자 이하의 세계로 내려가면 매우 이상한 세계가 펼쳐진다. 그래서 그 이상한 법칙을 양자역학으로 정식화한 물리학자들도 왜 우리 세계의 토대에 그런 이상한 세계가 존재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한다. 하지만 그 세계는 이상한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정신의 세계이다.
20세기가 시작되자마자 아인슈타인은 4차원 계에서는 이동의 속도가 빨라지면 시간이 지연되고 공간이 축소된다는 놀라운 발견을 이루었다. 하지만 아직도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세계를 감각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4차원 물리계를 해석하면서 여전히 3차원적 경험과 관념을 대입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의식이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아원자 구조물이라 가정하면, 이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것이 없는 이야기다. 실제로 우리는 깊이 집중할 때(정신 에너지를 높였을 때) 시간이 느려지고 공간이 축소되는 느낌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그런 현상이 가능한 이유도 실은 우리 의식이 4차원계를 바탕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 마음도 물리적이며, 우리 존재는 3차원과 4차원이라는 두 차원에 걸쳐 중첩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앞에서 간략히 살펴 보았듯이, 우리는 정, 백, 혼, 신의 네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중 '정과 백'은 3차원계에, 혼과 영은 4차원계에 머문다. 그리고 양자계가 어디 먼 곳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바탕에 존재하듯이 그 세계도 우리의 삶 안에 있다.
그래서 우리의 도가 전통에서는 때가 이르러 인간이 이승을 떠나야 할 때가 오면 신神과 혼魂이 백과 정을 남겨두고 저승으로 날아오른다고 여겼다(혼비魂飛). 그러면 혼이 남기고 떠난 백과 정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흩어지게 된다(백산魄散). 즉, 혼비백산하게 되는 것인데, 우리가 죽음을 '하늘로 돌아간다'고 표현해 온 것도 이런 사상적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테일러 박사의 경험은 뇌의 기능이 정지하면 의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계로 진입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곳에서는 공간적 경계가 사라져 존재가 광대하게 확장됨을 증언한다. 실은 그 곳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 사는 세계이다. 어디 멀리 천국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가 매일 살아내고 있는 세계의 이면이자,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계다.
우리는 앞에서 '색이나 향' 같은 의식의 감각질이 뇌로는 설명되지 않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할 때, '뇌' 뿐 아니라 '의식'이 함께 작동하고 있을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니 그 세계는 어디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상 안에 있다. 우리 존재의 네 층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작용하며 우리의 경험을 만들어 간다.
※ 짧은 요약
인간은 두 차원에 걸쳐 있는 네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정신 기관의 작용 덕분에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 인용 자료
『황제내경』, 영추 본신편(번역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