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생명 - 2
생물 교과서의 영향으로 우리는 수정란만 있으면 인간이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의 수정란이 인간으로 잉태되는 과정에는 중요한 도약의 순간이 있다.
수정란은 잘 알려져 있듯이 수정 후 둘로, 넷으로, 다시 여덟으로… 분열하면서 발생 과정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4∼5일 후에는 배반포(배아를 둘러싸는 부분)를 형성하는데, 배반포 안에는 아직 분화하지 않은 세포들이 들어있다. 즉 구분할 수 없이 똑같이 생긴 10억 개의 세포들이 공 모양으로 덩어리져 있다. 이 때의 세포를 배아줄기세포(ES cells)라 부르는데, 우리가 흔히 듣는 바로 그 '줄기세포'의 일종이다.
그런데 신비한 것은 본격적으로 발생이 시작되면, 이 똑같이 생긴 세포들이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쪽이 머리로 발달하기 시작하면 다른 쪽은 다리로 발달한다. 마치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나는 뼈 할 테니까 너는 핏줄 해!' 하는 식으로 일사불란하게 조직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 물론 세포 안에 애초에 무엇이 되겠다는 정보는 들어 있지 않다. 그저 위치에 따라 무엇이 되어야 할지 아는 것처럼 행동할 뿐이다.
배아줄기세포(ES 세포)의 신비는 특히 성인의 몸에 이식했을 때 잘 드러난다. ES 세포는 성인에게 이식하면, 이식된 환경에 따라 뼈가 되기도 하고 간세포 등 장기 세포가 되기도 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DNA 안에 처음부터 무엇이 되겠다는 정보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따라 무엇이 될지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어떤 세포들은 특정 장소에서 소멸을 택함으로써 형태 발생에 기여하기도 할 정도이다.*
ES 세포에 대한 관찰은, 세포의 기능 분화가 DNA 뿐 아니라 주변에서 입수한 정보에도 영향을 받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수정란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DNA에서 시작해 복잡한 조직으로 발달하는 상향 단계 뿐 아니라, 각 세포에 무엇이 되라고 지시해 주는 하향 단계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지시'가 어디서 내려지는지, 그리고 각 세포가 이 정보에 어떻게 접근하는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배아 발생'이 여전히 신비로 남아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우리의 믿음과 달리, 수정란만으로는 생명의 비밀을 모두 풀 수 없는 셈이다. 세포 복제로 만들어진 세포 덩어리가 장기와 뇌라는 기관으로, 나아가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 인간으로 분화하기 위해서는 분명 어떤 도약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도약은 어디서 올까.
생명이 유래하는 곳, 정精
배아발생의 신비가 풀리지 않다 보니, 학자들도 비밀을 풀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살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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