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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아줌마 Jul 06. 2023

우뇌만으로 세상을 본다면?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 Taylor) 박사는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뇌 신경해부학자였다. 그녀는 뇌세포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해서 뇌의 마이크로 회로 지도를 그리는 일에 참여하고 있었다. 만약 뇌 기능 이상을 직접 경험한다면, 자신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누구보다 잘 관찰하고 설명할 수 있을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뜻하지 않은 뇌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우뇌만으로 세상을 본다면?



1996년 12월 10일, 그녀는 여느 때처럼 CD 재생기가 작동되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그런데 다른 날과 달리, 왼쪽 안구 뒤에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별일 아니라 여기며 러닝머신에 올랐지만, 곧 뇌와 몸이 분리된 듯한 희한한 감각도 밀어 닥쳤다. 마치 자신이 행동의 참여자가 아니라 관찰자가 된 듯했다. 그 상태에서 바라보자, 난간을 부여잡은 손가락이 마치 원시 동물의 발톱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가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운동을 포기하고 욕실로 향했을 때였다. 근육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균형을 잡기가 몹시 힘들었다. 겨우 욕실에 도착해서 물을 틀었을 때는 수도꼭지의 물소리가 깜짝 놀랄 만큼 크게 느껴졌다. 그제야 그녀는 문제가 생겼음을 감지했다.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녀는 자신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했으며, 좌뇌의 한 지점에서 발생한 출혈이 서서히 다른 부위로 확대되면서 좌뇌의 기능을 하나하나 손상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처음 뇌출혈이 발생한 부위는 근육의 협응과 평형 능력, 청력을 처리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구조 요청을 시도했을 때는 이미 출혈 부위가 언어 중추로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좌뇌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을 때, 그녀는 우뇌만으로 세상을 감각하는 매우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물론 뇌량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외의 부분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또, 정보 처리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각 반구는 다른 것에 관해 생각하고 다른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우반구는 현재 순간에 대한 정보를 처리한다. 모든 것이 "바로 여기, 지금"에 관한 것이다. 우반구는 현재 이 순간이 어떻게 보이는가, 현재의 냄새는 어떻고, 맛은 어떤가. 느낌은 어떻고, 소리는 어떤가에 관한 엄청난 정보들을 동시에 처리한다.


반면에 좌뇌는 아주 다르다. 좌뇌는 직선적이고 체계적으로 생각한다. 또, 과거 혹은 미래에 대한 정보를 처리한다. 우뇌가 받아들인 광범위한 현재에서  정보를 취한 후, 그 정보를 범주화하고 조직화하여 우리가 과거에 배운 것들과 연관시키거나 미래의 가능성에 투영한다.


좌뇌는 언어로 생각한다. 우리의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지속적인 수다쟁이다. "이봐, 바나나 사는 거 잊지 마. 아침에 먹어야 해."라고 말하는 작은 음성이다. 언제 빨래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계산하는 지성(calculating intelligence)'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 작은 음성은 '나'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곳이다. 그리고 뇌출혈이 있던 날 아침에, 테일러 박사가 잃어버린 것이 이 모든 좌뇌의 기능이었다.


그녀가 TED 강연에서 밝힌 체험담을 직접 들어 보자.


 

샤워실로 들어서려고 할 때, 실제로 내 몸 속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어요. 작은 음성이 "자, 근육 너, 수축해야 해. 근육 너, 긴장을 풀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그런 다음, 저는 균형을 잃었고 벽에 부딪쳤습니다. 그리고 내 팔을 내려다보며, 내가 더 이상 내 몸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었어요. 내 팔의 원자들과 분자들이 벽의 원자들과 분자들에 섞여 버렸거든요. 내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에너지뿐이었어요. 그리고 그 순간, 뇌 수다쟁이가, 좌뇌의 수다쟁이가 완전히 침묵해 버렸어요. 리모컨을 가진 사람이 음소거 단추를 눌러버린 것처럼요.


완전한 침묵. 처음에는 조용한 상태에 있는 저를 깨닫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즉시 저를 둘러싼 에너지의 장려함에 사로잡혔어요. 더 이상 내 몸의 경계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가 거대하고 광대한 것 같이 느껴졌어요. 모든 에너지가 하나로 느껴졌고, 그렇게 아름다왔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을 외부 세계와 연결해 주는 뇌 수다쟁이와 완전히 연결이 끊어진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이 공간에 내가 있고, 내 일, 내 일과 관련된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져 버리는 것. 저는 몸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어요. 저는 평화로움을 느꼈습니다. 37년 동안의 감정적인 짐들을 모두 내려놓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보세요! 오! 저는 행복감을 느꼈어요. 행복감. 아름다왔어요. […]


그날 오후에 잠에서 깨었을 때, 저는 제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표면 의식이 항복하는 순간, 저는 제 삶에 작별을 고했거든요. 제 마음은 이제 정반대인 현실의 두 면 사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감각 시스템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은 순전한 고통처럼 느껴졌어요. 빛은 번개불처럼 뇌를 태웠고, 소리는 너무 시끄럽고 혼란스러워서 배경음과 목소리를 구분해 들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도망치고 싶었어요. 공중에 있어서 제 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가 거대하고 광대하게 느껴졌어요. 호리병에서 막 자유의 몸이 된 요정 지니처럼 제 영혼은 거대한 고래처럼 자유롭게 솟구쳐 올랐고, 고요한 행복감의 바다를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있었죠. 열반. 저는 열반을 발견했어요. 제가 이렇게 생각한 기억이 나요. 나 자신의 광대함을 다시 이 조그만 몸 안으로 구겨 넣을 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저는 깨달았어요.


"나는 아직도 살아있다! 아직도 살아있고, 열반을 발견했다. 내가 열반을 발견했고 아직도 살아있다면,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열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아름답고, 평화롭고, 인정 많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계의 그림을 그렸어요. 언제든지 이 공간으로 올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의도적으로 좌뇌 대신 우뇌 쪽으로 가기를 선택하면 이 평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저는 이 경험이 얼마나 막대한 선물이 될 것인지 깨달았고, 이것이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얼마큼의 통찰이 될지 깨달았어요. 그것이 저의 회복에 동기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누구로 존재하고 어떻게 존재할지 선택할 힘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저는 저의 오른쪽 뇌의 의식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널리 전할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테일러 박사의 저서 『긍정의 뇌』(My stroke of insight)와 TED 강연의 내용을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 TED 링크 : https://www.ted.com/talks/jill_bolte_taylor_my_stroke_of_insight/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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