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동아시아적 이해
우주 만물의 존재 이유와 원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유사 이래, 문명이 발생한 곳이라면 어디서나 이어져 왔다. 당연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동아시아에서도 이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1년이면 세포가 완전히 교체되는 와중에도 뱃살은 어떻게 한결같이 유지되는가'라는 의문에 동아시에서는 어떤 답을 가지고 있었을까. 오늘은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려 한다.
서구 문화는 상대적으로 '외물外物'에 관심이 많았다. 외(外)란 '나의 바깥'을 의미하고, 물(物)이란 '형체를 가진 물질'을 의미한다. 즉, 내 앞에 객체로 드러나 있는 사물의 원리를 궁금해 했다. 그래서 물질을 쪼개어 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원자에 닿았다. 그런데 원자가 쪼개지는 순간, 기존의 이해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세계가 나타났다. 지금 우리는 그 세계를 미시 세계라 부르고 그 세계를 탐구하는 물리학을 양자역학이라 부른다.
그런데 서양과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처음부터 '물질'이 아니라 '기氣와 역易'에 관심이 있었다. '기氣'는 지금으로 말하면 아원자 입자나 에너지라 부를 수 있는 미시 세계를 가리키고, '역易'은 '변화'를 의미한다. 아마 한 번쯤 들어봤을 주역(周易)은 '주나라의 역'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점이나 치는 '점서占書'로 취급되고 있지만, 사실 역(易)은 지금으로 말하면 '에너지 동역학'이라 해야 좋을 동아시아의 물리학을 담고 있다. 물체의 역학을 이해하면 물체의 운동을 예측할 수 있듯이 에너지 역학을 이해하면 에너지의 운동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역은 바로 이러한 관심 하에 이루어졌던 동아시아적 탐구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 변화'에 주안점을 두어 바라보면 '인간을 보는 눈'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이제 그 새로운 인간관을 만나보자.
동아시아 인간관을 가장 쉽게 전할 수 있는 비유는 아마도 자석일 것이다. 자석 주변에는 자력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역선(力線)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철가루를 뿌려 보면 곧 존재가 드러난다. 철가루들이 자력선을 따라 배치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인간관은 그 근본정신에 있어서 이와 유사한 것이었다. 자력을 이용해 작업하는 중국 예술가 링의 작품을 보자. 이 작품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철가루가 필요하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힘은 자력磁力이다. 자력의 배치가 달라지면 이 작품은 곧 형태가 달라질 것이다. 또, 자력이 사라지는 순간 철가루들은 다시 흩어져 낱낱의 철가루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형태를 보존하는 근원적인 힘은 철가루가 아니라 철가루를 통합하는 '자력'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동아시아의 인간관이 바로 이와 같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체가 아니라 그것을 응집하게 하는 기氣, 즉 에너지장이 생명의 본질이라 여긴 것이다.
생이 있는 사람이란 기가 응집한 것이다.
응집한 것이 생(이 있는 것)이고,
흩어지는 것이 죽음이다.
- 장자 「지북유편(知北遊篇)」
사실 이 언명은 현대물리학의 발견과도 일치한다. 우리가 지구 위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중력이라는 에너지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력이 사라지는 순간,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대 물리학도 양자장(量子場)으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고차원 세계' 개념도 그 노력의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다.
에너지를 중시했던 동양과 물질을 중시했던 서양의 '관점 차이'는 두 문명이 전혀 다른 길을 걷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동양과 서양의 해부도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서양의 해부도는 뼈, 장기 등 눈에 보이는 근골격계를 표현한다. 하지만 『동의보감』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신형장부도'는 서양의 해부도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척 봐도 이 그림은 인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동아시아에 해부학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이미 기원전 100년경에 편작이라는 의사가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외과술을 시행했다고 전한다. 동아시아에서 외과술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못 해서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외형만으로는 병의 근원을 다스릴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인체를 표현한 그림이 위와 같은 것도, 형해(몸과 뼈)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체내에 흐르는 에너지 흐름과 오장육부의 운행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선이 마치 자석의 자력선을 그려 놓은 듯하지 않은가? 동아시아인에게는 이렇듯 '물질'이 아니라 그 물질을 통합하는 '에너지장의 조화'가 중요했다. 인체 형태가 유지될 수 있는 것도 마치 자기력선처럼 형태의 정보를 저장하고 유지하는 에너지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믿었다.
하지만 분석적 사고에 익숙한 분들은 곧 이런 설명에 의구심이 드실 것이다. 신체의 형태를 유지하는 에너지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물론 우리는 아직 에너지장이 어떤 물리 과정을 통해 생명의 형태에 기여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형태 발생에 에너지장(특히 전기장)이 설계도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짐작게 하는 실험 결과들은 이미 수집되어 있다. 지난 글에 소개한 『기계 속의 악마』라는 책에 이런 사례들이 등장한다.
세포는 대부분 전하를 띠고 있다. 막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진 전위차는 40~80밀리볼트 정도로, 그 차이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세포막은 매우 얇아서 이만한 전압 차도 엄청난 전기장을 나타낸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전압 민감성 염료를 써서 그 전기장 패턴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터프츠대학교의 마이클 레빈은 이를 이용해 발생과정에 나타나는 전기적 패턴을 조사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몸의 많은 곳에 나타나는 여러 크기의 전압이 ‘선행 패턴pre-patterns' 구실을 함을 발견했다. 즉, 이 전기적 패턴이 유전자 발현을 이끄는 보이지 않는 비계(가설물) 구실을 하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레빈은 세포의 전위차를 조절해 발생 과정을 헝클어서, 다리와 눈이 더 달린 개구리라든가 꼬리가 있어야 할 곳에 머리가 달린 벌레 등 원하는 대로 괴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웠다. 그러나 훨씬 큰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터프츠대학교의 대니 애덤스가 고안해서 수행한 다른 실험에서는 현미경에 저속도 카메라를 장착해 발톱개구리의 배아가 발생하는 동안 전기적 패턴들이 바뀌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거기에 찍힌 모습은 굉장했다.
그 동영상은 전기 분극 파동 하나가 강화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 파동이 약 15분에 걸쳐 배아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다. 그런 다음 과분극화가 되거나 탈분극화가 된 구역과 지점들이 곳곳에서 나타나다가 배아가 구조를 재조직하면서 안쪽으로 접힌다. […] 뒤이은 유전자 발현과 얼굴 패턴화가 어떤 식으로 바뀌는지 추적한 연구자들은, 발생 과정의 훨씬 나중에-매우 놀랍게도 개구리가 되기 직전에-떠오르게 되어 있는 구조들을 그 전기 패턴들이 '미리 모양 잡는다pre-figure'는 결론을 내렸다.
전기적 선행 패턴화pre-patterning는 최종 3차원 꼴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해서인가 저장하여 배아의 먼 지역들이 서로 통신해서 큰 규모의 성장과 형태 빚기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형태발생을 인도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이런 실험들이 이어지면서 현재 생물학은 '형태발생 장場'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형성해 가고 있다. DNA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에너지장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나 '정보'라는 새로운 개념의 등장은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아직 완전하지 않으며, 걸어온 길 만큼이나 가야 할 길도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생명에 대해 다시 묻고, 다양한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몇백 년간 노력한 끝에 이제야 겨우 인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문 앞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 참고 도서 : 기氣, 흐르는 신체(이시다 히데미 / 열린책들), 기계 속의 악마(폴 데이비스 / 바다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