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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아줌마 Sep 16. 2023

왜 뱃살은 늘 그대로일까 -1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생명의 신비


우리는 인체도 기계와 같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낡은 부분을 교체해 가며 수명을 연장하는 기계처럼 몸도 낡은 기관을 교체해 가며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뱃살이 늘어나는 이유는 복부 조직에 지방이 들러붙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살을 빼기 전까지는 그 지방들이 그대로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최근의 과학적 발견은 우리의 몸이 이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상식적 믿음과 달리, 우리의 몸은 단 한 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2021년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가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대-170cm-70kg 남성을 기준으로, 인체의 전체 세포는 짧으면 80일, 길어도 1년 반이면 완전히 새롭게 교체된다고 한다(인간의 몸은 약 3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하루에 3,300억 개씩 교체된다). 매 순간 분해되고 융합되는 미시세계처럼, 인체도 1초에 380만 개씩 세포가 교체되는 변화를 겪는다. 그러니 지금 내 몸을 이루는 재료 중 일 년 전과 같은 재료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길어야 일 년 정도면 모든 세포가 교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일 년 전의 나와 전혀 다른 나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곧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내 몸이 그렇게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면 왜 나는 늘 같은 모습이고, 나의 뱃살도 여전한가 하는 의문이다. 물론 우리는 조금씩 노화를 겪고 상처가 아무는 변화도 겪는다. 하지만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도 그는 곧 나를 알아볼 것이다. 그 오래고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나의 특징적인 속성들은 사라지지 않고 죽을 때까지 유지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왜 뱃살은 늘 그대로일까?


뱃살이 유지되는 것은 경험적으로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해 '왜?'라는 의문조차 갖지 않는다. 하지만 믿기지 않겠지만, 이 질문에 대해 아직 인류는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만약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생명의 비밀에 매우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 이 질문은 '생물과 무생물'의 근본적인 차이에 관한 질문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뱃살은 늘 그대로일까?



생물과 무생물을 가르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과학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특징은 '자기 생성력(autopoiesis)'이다. 유리잔과 생체조직을 비교해 보면 이 차이가 잘 드러난다.


유리잔이 깨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유리잔은 한번 깨지면 결코 이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없다. 스스로 붙는 일도 없을 뿐더러, 누군가 다시 붙이려 해도 똑같이 복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상처 입은 신체조직은 곧 복구되고, 전체 형태도 유지된다. 쉼 없이 물질을 분해하고 흩어놓으며 엔트로피(무질서도)를 증가시키는 매서운 물리법칙에 맞서서, 생명은 한사코 질서를 창조하며 그 비가역적 흐름을 거스른다. 1초에 380만 개씩 세포가 교체되는 와중에 뱃살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그 노력의 소산이다. 


그렇다면 생명은 어떻게 물질과 전혀 다른 이 특별한 속성을 갖게 되었을까? 어떻게 전형적인 물질에 불과한 화학적 분자들이 모여서 스스로를 발생시키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투하는 생명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을까? 수천 년간 수많은 사람이 풀고 싶어 했던 의문이 바로 이것이다. 생명은 어떻게 혼돈 속에서 한결같은 질서를 유지하는가? 생명력은 어디서 기원했을까? 라는 문제.


물론 어떤 분은 DNA에 답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DNA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문제는 인류가 아직 풀지 못한 또 다른 문제인 '배아 발생' 문제만 살펴봐도 곧 드러난다.




수정란은 잘 알려져 있듯이 수정 후 둘로, 넷으로, 다시 여덟으로… 분열하면서 발생 과정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4∼5일 후에는 배반포(배아를 둘러싸는 부분)를 형성하는데, 배반포 안에는 아직 분화하지 않은 세포들이 들어있다. 즉 구분할 수 없이 똑같이 생긴 10억 개의 세포들이 공 모양으로 덩어리져 있는데, 이 때의 세포를 배아줄기세포(ES cells)라 부른다(우리가 흔히 듣는 바로 그 '줄기세포'의 일종이다). 그런데 신비한 것은 발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 똑같은 세포들이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쪽이 머리로 발달하기 시작하면 다른 쪽은 다리로 발달한다. 마치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나는 뼈 할 테니까 너는 핏줄 해!' 하는 식으로 일사불란하게 조직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 물론 세포 안에는 애초에 무엇이 되겠다는 정보는 들어 있지 않다. 그저 위상적 정보(위치의 상태)에 따라 무엇이 되어야 할지를 아는 것처럼 행동할 뿐이다.


이런 특징은 특히 ES 세포를 성인의 몸에 이식했을 때 잘 드러난다. ES 세포는 성인의 몸에 이식하면, 그 이식된 환경에 따라 뼈가 되기도 하고 간이나 심장 등의 장기 세포가 되기도 한다(줄기세포가 치료용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ES 세포는 주변 환경에 따라 무엇이 될지를 결정한다. 심지어 어떤 세포들은 특정 장소에서 소멸을 택함으로써 형태 발생에 기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세포의 분화가 DNA뿐 아니라 주변 환경으로부터 입수한 정보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세포의 DNA 복제에서 시작해 더 복잡한 조직으로 발달해 가는 상향식 단계(bottom up)뿐 아니라, 각 세포에 목표 행동을 지시해 주는 하향식 단계(top down)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정보가 대체 어디에 어떻게 저장되어 있는지, 그리고 각 세포가 이 정보에 어떻게 접근하는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배아 발생'이 여전히 신비로 남아 있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20세기 말에는 곧 인간의 DNA 염기서열 지도가 해명되어서 질병을 극복하게 되리라는 장미빛 기대가 넘쳤었다. 하지만 그 지도가 이미 20년 전에 완성되었지만, 생명에 대한 이해는 더 깊어지지 않았다. 최근 『기계 속의 악마』라는 저서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탐구한 세계적인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의 말을 들어보자.


매머드급의 국제적인 노력이 이루어진 끝에 마침내 2003년에 최초로 완전한 인간 유전체 염기서열이 발표된 것은 일반적으로는 생물학, 구체적으로는 의학의 판도를 바꾸는 사건으로 찬사를 받았다. 이 획기적인 업적의 중요성을 낮춰보아서는 안 되겠지만, 유전체의 완전한 세부도를 손에 넣었어도 ‘생명을 설명하기’에는 한참 모자란다는 것이 금방 분명해졌다. […] 유전체 프로젝트가 제공한 단백질 ‘부품목록’은 ‘조립설명서’가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오늘날이라고 해도, 예지력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유전체 염기서열을 보고 그 생물의 실제 생김새가 어떠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지면 관계로 다 소개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기계 속의 악마』를 읽어보실 것은 권한다). 다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폴 데이비스는 생명의 비밀이 분자 수준의 '화학' 뿐 아니라 '정보' 측면까지 고려될 때 비로소 접근 가능해 질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오직 물질만으로 생명을 해명하려는 과학자들에게 이제 관심을 '정보'로 돌려 그 비밀을 밝힐 수 있는 새로운 물리학을 찾아야 할 때라고 촉구한다.


생명 이야기는 사실 이야기 두 가닥이 단단하게 짜여 있다. 한 가닥은 복잡한 화학 즉 풍부하고 정교한 반응 네트워크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한 가닥은 정보에 관한 것으로, 이 이야기 가닥은 단순히 유전자에 수동적으로 저장된 정보만이 아니라, 생물 전체의 구석구석을 흐르면서 생명 물질 속을 파고들어 고유한 질서를 부여하는 정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생명은 부단히 변화하는 두 패턴, 곧 화학 패턴과 정보 패턴의 혼합이다.


폴 데이비스의 말대로 "현재 우리가 아는 물리법칙에서 정보 법칙을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 생명 물질을 완전하게 설명해 내려면 분명 무언가 전적으로 더욱 심오한 것이 필요하다."



# 참고 도서 : 생물과 무생물 사이 /  동적평형 (후쿠오카 신이치 저 / 은행나무 간),  기계 속의 악마(폴 데이비스 / 바다출판사) /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제럴드 에델만 / 범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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