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에너지'라는 말이 일상에 파고들었다.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받는다거나 빼앗긴다거나, 누구는 에너지가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최근에는 누구나 '에너지'라는 말을 쓰는 것 같다. 그런데 대체 우리가 에너지라 부르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호기심을 풀기 위해 우리는 지난 글에서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2의 의미를 알아보았다. 일반적으로 물질과 에너지를 전혀 다른 실체로 여기지만, 알고 보면 에너지가 응집된 것이 물질일 뿐, 둘이 서로 다른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 그 글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를 알고 나면 곧 '그러면 에너지는 또 뭐야?'라는 의문이 인다. 빛이나 전기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에너지가 어떻게 견고한 물질세계를 구성할 수 있다는 걸까? 오늘은 이 의문을 해결해 보자.
약 백 년에 걸친 탐구 끝에 양자역학은 우주가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호수에 이는 물결이나 소리를 전해주는 공기의 진동처럼 우주 전체가 진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네 앞산이 죽을 때까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모든 물체가 견고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시세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우주가 진동하고, 그로 인해 중첩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시선을 미시세계로 옮겨보면, 곧바로 견고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기적처럼 느껴질 것이다.
우리가 빈 공간이라 여기는 곳도 사실은 비어있지 않다. 그 공간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돌 수 있을 만큼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는 광자로 가득 차 있고, 그 광자들이 충돌하여 에너지가 높아지면 순식간에 전자와 반전자 쌍이 생성된다. 아원자 입자들은 공기 분자를 진동시켜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대기 중에는 물질로부터 떨어져 나온 무수한 화학 분자들도 떠다닌다. 만약 이 풍경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매 순간 폭죽이 터지는 공간에 들어선 것처럼 어안이 벙벙해질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잠시도 멈춤이 없는 말 그대로 역동力動, 그 자체인 공간이다. 그러니 이쯤 되면 그 토대 위에 존재하는 내 몸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적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 기적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을까?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 우주에 근원적인 4가지 힘이 존재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즉, 강력·중력·전자기력·약력 등 4가지 힘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물리학도라면 당연히 4가지 힘을 모두 알아야겠지만, 우리는 비전공자로서 '에너지'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정도이니, 이 중 '전기장'에 대해서만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말 그대로 무無인 빈 공간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공간에는 아무런 힘도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든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그런데 이 공간에 (+) 전하를 지닌 입자 하나가 놓이면 공간의 특성이 완전히 달라진다.
전기적으로 중성을 띤 입자들은 여전히 이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겠지만, 전기력을 띤 입자들은 이제 이 공간의 영향력을 느끼게 된다. 즉, (-) 전하를 띤 입자는 끌어당기는 힘을, (+) 전하를 띤 입자는 밀어내는 힘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렇듯 어떤 힘이 영향을 미치는 공간을 물리학에서는 그 힘이 갖는 '에너지장(場, field)'이라 명명한다. (+) 입자 하나가 놓임으로써 우리가 상상했던 공간은 '전기장'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입자들은 전기적 속성을 갖게 될까?
안타깝게도 인류는 아직 그 답을 모른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자연에는 전기 현상을 일으키는 물리적 성질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이 두 종류의 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거기에 (+) 전하와 (-) 전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을 뿐이다. 어찌 되었든 자연에는 전기적 성질이 존재하고 덕분에 물질계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원자는 (+) 전하와 (-) 전하가 균형을 이루어 일정한 규모의 배타적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물론 전기력뿐 아니라 다양한 힘이 원자에 작용하지만 어쨌든 그 힘들이 균형을 이루어 서로를 구속하기 때문에 원자가 존재할 수 있다. 2012년 힉스 입자가 발견됨으로써 최종 검증된 '원자 표준 모형'도 핵심은 '원자를 이루는 재료'가 아니라 '원자가 유지될 수 있는 다양한 힘의 균형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다. 우주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우주가 각기 다른 재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전자기력이나 중력'과 같은 본질적인 힘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우주의 기본 재료를 다양한 모습으로 구성해 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우리가 처음에 던졌던 질문의 답을 정리해 보자. 우주에는 몇 가지 기본적인 힘이 존재하고, 그 힘 때문에 공간의 입자들은 진동하게 된다. 그런데 이 중 전자가 직선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전자기파'라 부르고 에너지로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이 원자핵 주변에 갇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에너지가 아니라 물질 입자로 인식하게 된다. 이렇듯 물질과 에너지는 그 존재 상태가 다를 뿐, 본질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 물질은 응집된 에너지 덩어리를 부르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런데 만약 균형을 이루어 원자 안에 갇혀 있던 에너지가 어떤 이유로 균형을 잃어 분출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곧바로 전자기파가 되어서 원자 밖으로 분출될 것이고, 아인슈타인이 정식화한 대로 E=mc2만큼의 에너지를 분출하게 될 것이다. 발견 당시에는 놀랍고 신비한 일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오히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당연하게 느껴진다(물론 원자 모형이 그림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물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견고하지 않다. 또 에너지와의 상호작용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빈번하다. 고정된 실체를 부정했던, 불교의 '공空' 사상이 물리적으로도 와닿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