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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아줌마 Sep 26. 2023

태극과 역易, 동아시아 존재론의 기초


동아시아인들이 바라본 인체


동아시아인들은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氣]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고대 동아시아의 철학자라서 에너지의 이치를 밝히는 학문 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학문 체계를 세우려면 먼저 기본이 되는 개념을 찾고, 그 개념을 특정한 기호로 표시해야 한다. 수학은 1, 2, 3,…, 언어는 ㄱ, ㄴ, ㄷ, a, b, c… 등의 기호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수학은 '수량'을 체계화하는 데 목표가 있었고, 문자는 소리를 체계화하는 데 목표가 있었다. 그렇다면 에너지의 원리는 어떻게 해야 체계화할 수 있을까? (에너지와 힘은 사실 다른 개념이지만, 여기서는 이야기 진행의 편의를 위해 같은 개념이라 보고 이야기를 진행하려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힘과 그 힘들이 빚어내는 시시각각의 변화 - 계절이 바뀌고, 사람의 마음이 변하고, 생명이 태어났다 늙어가는 변화…. 지금 우리의 목표는 이 모든 변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치를 찾아 거기에 기호를 달아주는 것이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이 변화들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는 무엇일까?


동아시아에서 이 질문에 처음 답한 사람은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 복희였다. 그는 황하에서 얻은 그림을 보고 이를 바탕으로 우주 변화의 원리를 체계화한 <역易>의 기초를 수립했다고 전해진다. 복희가 발견한 원리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음양오행' 철학으로 발전하였는데, 한국의 국기에 그려진 '태극'은 바로 그 철학을 상징하는 도상(圖像), 지금으로 말하면 인포그래피다.


음양오행 철학은 그 역사만 이야기해도 책이 될 만큼 흥미진진하지만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하고 우리는 태극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모든 변화하는 것들의 공통점


에너지는 가장 근원적인 차원에서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뿜어져 분출하는 에너지이고 다른 하나는 응축되어 모이는 에너지다. 이 중 발산하는 에너지를 동아시아에서는 '양(陽, 기호로는 '⼀')'이라 표현하고, 수렴하는 에너지를 '음(陰, 기호로는 '--')'이라 표현한다. 태극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바로 이 음양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붉은색은 양, 푸른색은 음을 상징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주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음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주에 양이나 음, 한 종류의 힘만 존재했다면 우주는 물론이고 그 안에 살아가는 우리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양만 존재했다면 모든 것은 흩어져 버렸을 것이고, 음만 존재했다면 수축되어 쪼그라들어 버렸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우주에는 상대가 되는 두 힘이 존재해서 서로를 제어하고 북돋워 주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 분수를 예로 들어 보자.





만약 분수로 물을 뿜었는데 돌아오지 않고 무한히 뻗어가 버린다면, 다시 말해 '양(陽)'이라는 한 방향의 힘만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분수를 유지하기 위해 무한한 에너지와 물이 필요할 것이고, 결국 분수를 작동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뿜어진 물은 되돌아온다. 물이 뿜어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에너지, 즉 중력이 존재해서 물을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한한 물로도 오래 분수를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음양이 존재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순환하게 됨을 의미한다. 분수의 예에서는 물을 되돌려주는 힘이 중력이었지만, 다른 현상에도 원리는 똑같이 작용한다. 원심력이 있는 곳에 구심력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회전운동이 가능하고, N극에서 발산된 자기력은 S극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자기장이 유지되며, 우주조차도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통해 에너지를 순환시킨다. 그러니 사실 음양은 모든 존재함의 기본 법칙이라 할 수 있다. 무언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지속이 필요하고, 지속을 위해서는 에너지 순환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지속된다는 의미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섬광을 일으키는 번개도 아주 잠깐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흩어져 버리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에너지가 순환계를 이루어 일정 시간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체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음양의 균형이 필요하다. 양이 과하면 흩어져 버릴 것이고, 음이 과하면 축소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니까 '태극'은 바로 이 존재의 기본 원리를 표현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태극은 곧잘 생명의 원리를 담은 도상으로도 일컬어진다.




노자 『도덕경』 6장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수렴의 힘은 사라지지 않으니

이를 현묘한 음의 작용이라 하고

이 현묘한 음의 문이 천지의 뿌리가 된다.

면면히 이어지며 존재하니, 작용하여도 다함이 없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태초로부터 가장 미세한 수준에서 가장 거시적인 수준까지 서로 당기고 미는 가운데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돌아가는 우주의 질서, 그 모든 질서가 단지 뻗어나가고 되돌아오는 음양의 단순한 이치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신비하지 않은가. 노자 6장은 바로 이러한 감탄을 담고 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데 집중하다가 잠시 집중을 거두면 머리로 쏠려있던 에너지가 천천히 아래로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 에너지 흐름에 마음을 실어 따라가 보면, 천천히 몸에 힘이 빠지면서 편안한 이완이 찾아온다. 애써 조종하는 것도 아닌데, 늘 나를 지키며 마음과 함께 움직이는 이 에너지의 작용을 느낄 때마다 새삼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노자는 아마도 이런 경이와 감탄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아름다운 구절이 대표적인 노자 번역서 두 권에는 아래와 같이 번역되어 있다.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러 미묘한 모성이라 한다.
암컷의 갈라진 틈,
이를 일러 천지의 근원이라 한다.
면면히 이어져 오면서 겨우 있는 것 같지만,
그 작용은 무궁무진하도다.


골짜기의 신묘함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아득한 암컷이라고 하고, 아득한 암컷이라는 문을 바로 천지의 근본이라고 하니,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것 같은데도 작용함에는 지침이 없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 번역을 보았을 때 나의 안타까움이 어떠했을지 느껴지시리라 믿는다. 서구 학문의 영향 아래 이성의 언어로 채색된 동아시아 사상은 이렇게 박제되어 빛을 잃어가고 있다.




물리학이 발달한 지금에 와서 보면, 음양의 이야기가 너무나 당연한 듯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이 철학이 체계화된 것은 짧게 잡아도 2,500년 전이다. 원자는 물론이고 기체도 알지 못하던 시절에 어떻게 현대 물리학으로도 부정되지 않을 철학을 수립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하지만 오늘 나눈 이야기는 음양오행의 시작일 뿐이다. 동아시아인들은 이 원리에 기초하여 자연 철학, 윤리학, 정치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발전시켰다. '0과 1'로 표현되는 디지털 신호가 두 기호만으로 모든 정보를 아우르듯이, 동아시아 철학도 '음과 양'이라는 기본 개념을 확장해 세상 만물의 이치를 설명해 나간다. 그리고 그 대상은 물질과 정신은 물론이고 인간과 신에 이르기까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우를 만큼 광범위하다. 우리의 전통 세계관이,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존재론이 참으로 깊고 현묘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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