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읽는 책 │ 밤을 걷는 밤
밤 산책 좋아하시나요?
저는 퇴근 후에 가끔 동네 밤 산책을 합니다.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매일 걷는 동네지만 퇴근 후 밤에 보는 동네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적당히 바쁘고 적당히 흘러간 하루, 별것 없던 하루, 오늘도 다른 날과 비슷한 하루.
하지만 시시한 하루에도 쉼표는 필요합니다.
밤 산책을 하는 이유기도 하지요.
오늘 밤에 읽을 책은 유희열 작가님의
<밤을 걷는 밤>입니다.
<밤을 걷는 밤>은 유희열 작가님과 밤 산책을 하는 콘셉트로
카카오 TV로 먼저 방영되었던 작품인데요,
유희열 작가님의 산책길 토크, 도시의 고즈넉한 밤 풍경 사진,
귀여운 일러스트가 조화롭게 구성해 책으로 탄생했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퇴근 후 밤 산책을 하는 것 같이
사랑스러운 기분을 선물하는 에세이인데요.
유희열 작가님은 밤 길을 걸으면서 "익숙한 동네도 밤에 걸으면 전엔 전혀 몰랐던 게 보인다"라고 얘기하면서, 그만의 날카롭고 따스한 관찰력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도시의 다정함을 꼼꼼히 알려줍니다.
이상하게 밤에 걸으면 걸을수록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릅니다.
고요히 밤을 걷는 것뿐인데
지난 시간들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기분도 듭니다.
잊고 있었지만 소중했던 기억, 그리운 기억, 아픈 기억.
기억들을 하나 둘 꺼내어 만져보고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나무 데크가 깔린 계단을 내려가며
옛 매니저 형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 잘 내려가자.
아, 사실은, ‘있어’ 보이려고 이렇게 표현했다.
“멋있게 추락하자.”
같은 길이어도 오르막을 걸을 때와
내리막을 걸을 때가 전혀 다르다.
오르막길에서는 두 발에 힘주고 숨이 차오르면
땀도 식혀가면서 쉬엄쉬엄 갈 수 있지만,
내리막길에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가 뒤에서 등을 툭툭 미는 것 같다.
밤길을 산책하다 보면
어쩌면 걷는 일은 살아가는 모습과
무척 닮았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집 앞의 호수 공원을 퇴근 후 자주 산책하는데요,
늦은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합니다.
천천히 이야기하며 걷는 사람도 있고
자전거를 타거나 러닝을 하는 사람,
혼자 멍하니 음악을 들으며 걷는 사람.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속도대로
산책을 하는 사람을 보며
제가 갖고 있는 속도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또 밤 산책에선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가로등에 비친 나뭇잎의 그림자라든지,
낮엔 보지 못했던 라일락의 꽃향기 같은 것.
세상이 낮보다는 조금 조용해지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그 간격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리곤 보지 못했던,
아니 잠시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꺼내죠.
좋아했던 사람과 걸었던 덕수궁 돌담길,
소나기를 흠뻑 맞고도 신나선 걷던 종로 길,
엄마랑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걸었던 공원까지.
걷다 보면 눈에 보이는 풍경 너머
아득하게 자리 잡은 기억들을 꺼내봅니다.
홀로 걷지만,
잊고 있던 지난날의 나와
우리의 안부를 걷는 기분도 듭니다.
다음엔 시간을 내어 책 속에서 소개된 걸었던 거리를 걸어볼까 합니다.
이전에는 그냥 이름만 아는 길이었다면 이젠 길 위에 쌓인 다른 누군가들을 상상하겠지요.
그리고 걷고 나면
제 기억도 다른 이들의 기억 위에
살포시, 쌓이겠지요.
어느 날 그 길을 마주하게 된다면
잊고 있었던 오늘의 안부를
다시 물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삶에 마침표 몇 개를 찍으면서
소소하고 다정하게 걸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이번 주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
밤에 읽는 책
마음이 쓸쓸한 어느 일요일 밤,
침대에 앉아 읽기 좋은 따듯한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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