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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책이름 Jun 01. 2020

빛나는 재능보다는 '살아남기'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중요한 건,
빛나는 재능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게
‘살아남기’라는 것이다.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패배를 맛있게 씹어 삼키는 자가 일류다 
(팬텀싱어 8회 김이나 심사평 中) 


지난 주말 팬텀싱어에서 탈락했다 부활한 팀의 공연이 끝나고

 김이나 작사가가 "패배를 맛있게 씹어 삼키는 자가 일류다" 라는 심사평을 남겼는데요.


작사가로서 뿐만 아니라 인생 내공도 대단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긴 단단한 내면과 인생의 다양한 경험이 있었기에

훌륭한 가사들을 쓸 수 있었겠지만요.


최근에 출간된 그녀의 두 번째 책 『보통의 언어들』 속에서도

인생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에 대해

그런 내공이 잘 드러나 있어서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가 여러 번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볼품없는 순간들이 오면


회사를 다니든, 프리랜서든 한 일을 계속 하다보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회의감도 들고 다른 사람과 비교도 하게 되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 마련인데요.


재능도 없는 것 같고 이 일을 계속 하는 게 맞나 싶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가 많죠.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192p

내 지난날들엔 비굴하고 비참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모르긴 몰라도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시선도 많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빛나는 재능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게 ‘살아남기’라는 것이다. 금 밖으로 나가면 게임이 끝나는 동그라미 안에서 변두리로 밀려나 휘청거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올 것이다. 그때 볼품없이 두 팔을 휘저어가며 다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 그 멋없는 순간 스스로 겸연쩍어 선 밖으로 나가떨어진다면 잠깐은 폼날지언정 더이상 플레이어가 될 순없다. 

기억하자. 오래 살아남는 시간 속에 잠깐씩 비참하고 볼품 없는 순간들은 추한 것이 아니란 걸. 아무도 영원히 근사한 채로 버텨낼 수는 없단 걸.



결국 근사한 채로 있고 싶어서 금 밖으로 밀려나기 싫어서

지레 먼저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금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애 쓰는 것보다는 먼저 금 밖으로 나가버리는 편이 쉬우니까.

결국 '끝까지 버티는 자가 승자'라는 말은

비참하고 볼품없는 순간들을 견뎌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마모되는 순간들이 오면


일을 하다 보면 괴로운 순간보다 더 힘든 건 

모든 게 싫증이 나고 재미없어지는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싫증을 잘 내는 성격입니다.

제 성격이 이러니 한달에 한 번씩 새로운 보직으로, 새로운 업무를 주세요. 

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월급루팡처럼 출퇴근 도장만 찍을 수도 없고.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127p

무언가에, 또 누군가에게 싫증이 잘 난다면 그건 아마도 ‘싫증이 잘 나는 성향’이라서가 아니라 잘 마모될 수밖에 없는 부분만 골라서 좋아하는 성향 탓일 수 있다. 싫증이 주는 죄책감이나 불쾌감이 없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것이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결, 태도,에너지 같은 것을 찾아내어 그게 내 사랑의 진원지임을 인정한다면, 반복되는 패턴에 지루해지는 현상은 줄어들 수도 있다. 내 피부가 아닌, 마음 깊은 곳까지 다가와 툭 건드리는 것들을 구분해내는 것은 나름의 훈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단순히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라서, 라고만 생각해왔지

그런 것들이 마모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좋아하는 것들의 공통점을 찾아서 좀 더 큰 원을 그리는 연습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왠지 백 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연습이지 않을까요)







지금 내가 너무 멋이 없어서. 재미가 없어서

매순간 인생을 리셋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 때마다, 아득해지곤 했는데

이 책을 읽고 김이나 작사가의 너무 붕 뜨지도 않고 너무 가라않지도 않은 글에

조금 차분하게 격려를 받은 기분입니다.

(역시 '김이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일단 멋없는 나도, 볼품없는 나도 견뎌내보려고 합니다.

내일도 출근을 함으로써.










기억하자. 오래 살아남는 시간 속에 잠깐씩 비참하고 볼품 없는 순간들은 추한 것이 아니란 걸. 아무도 영원히 근사한 채로 버텨낼 수는 없단 걸.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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