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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책이름 Jun 08. 2020

치즈와 부르주아를 싫어한 여자

오! 시몬


시몬이 싫어했던 다섯 가지
1. 치즈
2. 그녀의 빠른 생각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
3. 그녀의 빠른 말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
4. 부르주아
5. 늙어가는 것

(출처 : 『오! 시몬』)



시몬 드 보부아르의 삶을 풀어낸 평전 『오! 시몬』을 읽다가 시몬이 치즈를 싫어했다는 이 한 줄을 읽고나서 저는 소위 멘붕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치즈를 싫어할 수가 있어...?


시몬이 전쟁 중에 머리를 자주 감지 못해서 터번을 두르기 시작했다는 것도, 요리를 하지 않고 끼니는 카페나 식당에서 해결했다는 얘기에도 오, 그렇군. 하고 넘어갔지만 치즈를 싫어했다는 말에 왠지 배신당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누구보다 유명한 여성이지만, 언젠가부터 가장 많이 인용되지만 가장 적게 읽히는 작가가 되어버린 시몬 드 보부아르. 1940년대 파리를 찍은 흑백사진 속에 영원히 붙들려 어찌 된 일인지 21세기로 달려 나오지 못한 작가.


매번 시몬 드 보부아르를 읽어야지, 읽어야지 부채감만 가지고 있다가 운명처럼 강렬한 폰트의 오! 시몬을 발견해버렸는데요. (부제 : "보부아르, 멋지고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초상")


저도 모르게 이 표지와 마주한 후

"오! 시몬" 

하고 소리내서 말하고 말았네요.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사실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는 시몬.

실존주의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시몬 드 보부아르는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요?





파리 센강의 다리 중 하나의 이름이 시몬이라고 합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 인도교는 파리 12구와 13구를 연결하며 2006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는데요. 파리의 센 강 위에 건설된 37개의 다리 중 여성 유명인사의 이름을 딴 다리는 시몬 드 보부아르 다리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 인도교


『오! 시몬』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는데요.


유복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자랐지만 놀기 좋아하는 한량 같던 아버지 조르주와 모범적인 카톨릭 아내가 되고자 최선을 다하던 어머니 프랑수아즈, 보부아르와 가치관이 비슷했지만 평생 시몬의 동생으로 살수밖에 없었던 여동생 엘렌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전형적이라서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아버지의 소극적 태도가 놀라웠고 상처가 되었다. … 아버지는 나의 노력, 나의 발전에 관심을 갖고 다정하게 내가 공부하는 저자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심지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의를 내비치기도 했다. 

『오! 시몬』43p



시몬의 부모는 두 딸이 공부를 하는 것도, 직업을 갖는 것도 원치 않았지만 경제적으로 몰락한 보부아르 가문에서는 그렇다고 직업을 못 갖게 할 수도 없었다고 하는데요. 



시몬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사건이 터져 그녀를 구원해주리라 기대해봤자 소용없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다!

_『오! 시몬』49p



이렇게 모순적이고 억압적인 환경에서 어린 시몬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에는 몰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요. 어린 딸이 부모의 통제 아래 사랑받지만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소유물처럼 생각되던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고 어느 시대에도 주목받지 못했던 이야기가 아닌가요. 








그 이후 그녀의 삶은 얼핏 신화적으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시몬은 작가, 지식인, 정치 활동가, 사회 이론가로 활동하며 사르트르와 앙가주망적 실존주의를 확립하고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기도 했으며. 1970년대부터는 여성해방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임신중절과 피임 자유화, 노동 현장에서의 여성 노동자 권익 보호, 가정 폭력 근절 등을 위해 앞장섰습니다.



자신의 무관심이 타인에게 어떤 의미일지 걱정했고, 마침내 개인주의를 버렸다. 그 사실은 1939년 10월 8일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알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방임한 세대입니다. 

『오! 시몬』193p 




* 앙가주망, engagement

: 인간이 사회·정치 문제에 관계하고 참여하면서, 자유롭게 자기의 실존을 성취하는 일. 사르트르의 용어임. 사회 참여. 현실 참여. 자기 구속(自己拘束).  _ 정의 출처: Oxford Languages



나는 삶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어느 날 죽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기 싫다.
또 나는 무서울 정도로 욕심이 많다.
모든 것을 원해서 여자이고 싶다가도 남자이고 싶고
친구가 많기를 바라다가도 혼자이고 싶으며
일을 많이 하고 좋은 책도 쓰고 싶지만 여행하며 즐기고도 싶고
이기적이고 싶다가도 이기적이지 않기를 바라며…





치즈를 싫어했지만 삶을 너무나 사랑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

무서울 정도로 욕심이 많고 모든 것을 원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

그래서 이기적이고 싶다가도 이기적이지 않기를 바랐던 시몬 드 보부아르.

"오! 시몬" 


귀찮아. 하기 싫어. 이거 왜 해.무슨 의미가 있어. 대충 해. 를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지금의 나를 시몬이 본다면 실존주의로 호되게 혼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 시몬. 그대의 책을 읽고 오늘 나는 제 2의 성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를 소개하고 싶어서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시몬과 얼른 만나시길 바라며!

오! 시몬 하길 바라며!





. 내 자신의 삶을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직접 알려줌으로써 나는 나를 타인에게 실존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실존주의에 대해서 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인터뷰 영상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FRTl_9Cb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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