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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책이름 Jan 28. 2021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의 노래들에 대하여

밤에 읽는 책 │미처 다 하지 못한


아주 어렸을 때부터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자랐습니다.


최신가요나 동요를 듣고 부르던 친구들과 달리 아빠의 플레이리스트를 따라 변진섭, 김광석, 김현식, 산울림, 이문세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차 뒷좌석에 앉아 흘러나오는 목소리들. 저는 수많은 노래들 중에서도, 김광석의 노래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어린 입으로 그의 목소리를 따라 의미도 잘 모르는 가사들을 옹알옹알 따라 부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고 쓸쓸해지는 기분이 싫지 않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남아있습니다.


날이 쌀쌀해지면 유난히 그의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침대에 가만히 앉아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반가운 마음 반, 신기한 마음 반으로 열어본 김광석의 에세이, <미처 다 하지 못한>입니다.




<미처 다 하지 못한>은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 그러니까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기 전 썼던 일기, 수첩 메모, 편지, 노랫말 등을 모은 책으로 저작권자인 유가족의 동의하에 그의 숨결이 최대한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구성한 책이라고 합니다.


67개의 육필 원고와 64곡의 미완의 노래가 담겨있는 책, 미처 다 하지 못한 그의 시간들이 담겨있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지릿합니다.


<미처 다 하지 못한>을 읽는데 그의 노래를 들었던 감정이 똑같이 떠오릅니다. 그의 목소리 뒤에 숨겨져 있는 때로는 아리고, 때로는 아름다운 순간들. 그가 남긴 글들을 읽고 나니,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썰물처럼 밀려오는 쓸쓸한 감정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습니다.


아직 손에 잡히지 않은 음악에 대한 꿈, 곤궁한 일상에 대한 걱정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무엇보다 '돈을 구하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아버지의 기록에선 누군가의 '신화'에 가린 한 생활인으로서 김광석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기억하게끔 합니다.




노래 뒤에 있던 그의 표정이 어렴풋이 보일 것 같은, 그의 기록들. 수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사랑한 곡 <사랑했지만>,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이등병의 편지>등 그가 이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들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그도 그저 사랑하고 사랑받고 노래를 하고픈 한 사람이었구나. 누군가가 기억하는 것만큼 화려하지 않은, 하지만 무대에선 누구보다 행복했지만 그만큼 쉼을 갈구했던 한 사람이었구나- 하고요.


책의 마지막 3부에는 그가 미처 부르지 못한 노래들, 60곡이 넘는 미완성곡의 음표와 가사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 지금 그가 우리 곁에 있었다면, 우리는 이 노래를 그의 목소리로 듣고 있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사랑한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마음 한편에 그의 목소리를 안고요. 그가 남겨 준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노랫말을 안고서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거리에서
그녀가 처음 울던 날
.
.


여전히 저는 김광석의 노래를 듣습니다. 아마 이 일은 제 남은 생 내내 이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곱씹을수록 쌉쌀하고, 돌아볼수록 아름다운 노랫말과 목소리. 우리가 그를 영영 사랑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곤 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김광석 말고,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을 엿볼 수 있던 책.


미처 다 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우리 마음에 영원히 남을 사람. 그리고 그의 기록들. 그를 여전히 뜨겁게 기억하는 이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이 가슴 뛴다
- 이병률(추천사)




오늘 밤엔 침대에 앉아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그가 이야기하는 자신을 초대받아 읽습니다. 그의 목소리와 함께 제가 살아온 삶도 뜨겁게 떠오릅니다. "꿈에서라도 볼 수 없는 세상을 노래로 본다"라는 그의 기록처럼, 우리가 그의 노래를 부르고 기억하는 것은, 그가 그곳에서 영원히 노래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의 노래에 대한 뒤늦은 대답처럼, 메아리 같은 대답처럼,

여전히 이곳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요.








밤에 읽는 책

마음이 쓸쓸한 어느 밤,

침대에 앉아 읽기 좋은 따듯한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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