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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책이름 Feb 04. 2021

차마 보내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밤에 읽는 책 │츠바키 문구점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쓴 게 언제였을까.
가만히 생각해 봐도 도통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알음알음 모아두었던 예쁜 편지지들과 스티커, 깔끔하게 잘 써지는 펜을 꺼냅니다. 그리곤 편지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무슨 이야기를 담을까, 나는 무슨 마음을 여기에 글씨로 쓰고 싶은가 생각합니다. 한 번에 쓰기엔 중간에 틀릴까 봐, 문장이 이상할 까봐, 끄적끄적 컴퓨터로 초안을 작성해봅니다.


'안녕, 친구야. 잘 지냈어?'


딱 한 줄을 써두고는 한참 아무 문장도 쓰지 못합니다. 분명하고 싶은 마음은 뭉게뭉게 크기만 한데,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니 인사밖에 쓰지 못하는 편지.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고민만 하다 밤이 훌쩍 다 가버렸습니다. 편지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생각하다가, 이럴 때 츠바키 문구점이 집 근처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츠바키 문구점은 오래전부터 대필을 가업으로 잇고있는 야메미야 집안이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가마쿠라에 터를 잡고 운영해온 소박한 문구점입니다. 문구점이라고 해도 요즘 유행하는 팬시보다는 HB부터 10B까지 연필을 갖춰놓고, 샤프펜슬은 절대 취급하지 않는 원칙을 고집하는 조금은 오래된 느린 문구점이죠.


이 문구점엔 특별한 점이 한 가지 있는데요,

바로 대필을 한다는 것.


주소 쓰기부터 메뉴판 쓰기, 그리고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기도 합니다. 글씨 쓰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마당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크게 자리 잡은 곳이죠.


츠바키 문구점을 운영하는 이는 20대 후반의 포포(아메미야 하토코). 할머니 뒤를 이어 십일 대 대필가로 다시 츠바키 문구점을 엽니다.



츠바키 문구점에는 자신만의 내밀한 이야기를 안고서 대필을 의뢰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이혼 소식을 알리기 위해 온 사람부터, 돈 빌려달라는 요청을 거절하는 편지를 쓰고 싶은 사람, 오래된 첫사랑에 그저 '나 잘 있으니, 너도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라고 편지를 보내러 온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편지를 향한 포포의 태도였습니다.


사연을 가지고 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도록 편지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구성합니다.


그들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기도록 편지를 쓰는 자세부터,

필체와 어투, 필기도구의 종류, 편지지와 편지 봉투의 지종,

그리고 우표 모양과 밀봉 방식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는 포포의 대필 과정을 읽다 보면 세상에 문구가 이렇게 다양했는지(!) 한 번 놀라고, 누군가의 사연을 이토록 세밀하게 이해하려고 하는 포포의 태도에 다시금 놀라게 됩니다. 뭉클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들은 왜 직접 편지를 쓰지 않고, 
츠바키 문구점을 찾아오는 걸까요?


직접 쓰는 편지만큼 진심을 잘 담은 것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포포는 어린 시절부터 엄한 할머니 밑에서 대필가가 되기 위한 혹독한 수련 과정을 밟다가, 다른 사람인 척 편지를 대신 써주는 것은 ‘사기’라고 생각하며 할머니에게 반항하는데요, 그런 포포의 질문에 할니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과자 선물을 들고 간다고 치자.
그럴 때 대부분은 자기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가게의 과자를 들고 가지?

개중에는 과자 만들기가 특기여서 직접 만든 것을 들고 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게에서 산 과자에는 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냐?"

선대가 물었지만, 나는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어도,
제과점에서 열심히 골라 산 과자에도 마음은 담겨 있어.

대필도 마찬가지야. 자기 마음을 술술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문제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 대필을 하는 거야.
그편이 더 마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네가 하는 말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좁아져.
옛날부터 쩍은 떡집에서,라고 하지 않니.

편지를 대필해 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대필업을 계속해나간다, 단지 그것뿐이야."

- 『츠바키 문구점』 p. 53~54





"자기 마음을 술술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문제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 대필을 하는 거야.

그편이 더 마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선대의 이야기를 읽으며 편지를 쓰지 못해 밤을 꼬박 새버린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죠. 사람은 모두 다르니까요.마음을 잘 표현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누군가가 대신 편지에 진심을 담습니다. 편지를 쓰는 펜까지 만년필로 쓸 것인지 유리 연필로 쓸 것인지 사소한 것 하나까지 함께 고민하면서요.


전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진심에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워 매만지고 정리하는 포포의 모습을 보며 마음의 전하는 일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더불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도무지 전해지지 않는 진심 때문에 서로 오해가 쌓일 때가 있고 상처를 받기도 하죠. 그래서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용기와 그 용기가 잘 전해질 수 있도록 쓰는 모든 시간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편지의 복잡한 규칙과 형식에 연연하다 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 딱딱한 편지가 되어서 어색하다.
요는 사람을 대할 때와 같아서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추어 대하면,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다는 것뿐.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 
- 『츠바키 문구점』 p. 116-117




잘 쓰지 못하더라도 진심을 잘 꾸미지 못하더라도 상대를 존중하고 생각하는 마음만 진실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포포만큼 좋은 문장을 쓸 순 없지만 고마웠다는 마음을 이 편지 속에 담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 이렇게 작은 진심들이 차곡차곡 모이면 우리의 삶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하면서요.


여러분에게도 편지를 주고 싶은 이가 있으신가요?

오늘은 그를 생각하며 편지 한 통을 써보면 어떨까요.


이번 주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






밤에 읽는 책

마음이 쓸쓸한 어느 밤,

침대에 앉아 읽기 좋은 따듯한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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