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직장

by 미쉘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과 주변환경이 첫 직장과 비슷함을 금세 알아차렸다.

공간이 층별로 나누어져 있고, 낮은 계단이 공간을 나누고 있으며, 큰 나무들과 계단식 돌들로 위아래층이 구분되어 있는 숲과 같은 바깥환경.

또 그러고 보니 직장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 또한 첫 직장에서 만난 인연들이다.

나의 첫 직장이 나의 삶의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친것일까? 아니면 내 취향이 같았던가?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나는 학교과정의 하나였던 실습을 통해 쉽게 첫 직장을 구할 수 있었고, 수월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유치원은 경력이 오래된 원장님, 선생님들 또 오랫동안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학부모들이 득실대는 곳이었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난, 그중 어느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았던 머릿수로만 기억되는 보조교사의 위치였다.

유치원 보조교사의 첫 월급은 한 달 자취생활 버티기를 겨우 실현시켜줄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과 근무함으로써 뒤따라오는 혜택 같은 것들이 이유가 되어, 작은 월급을 더 깎아 내렸어도 근무하기로 했었다.


첫 사회생활을 하며 어른 놀이를 했다. 할머니 원장님은 고지식한 분으로 선생님들의 외모와 옷차림에 지적이 많았던 분이었다. 어른들처럼 정장이나, 차려입는 원피스 투피스 구두를 신고, 화장을 곱게 하고, 우아한 어른인 척 아이들과 생활해야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앞뒤 맞지 않는 운영방법이지만, 그 시절 먹히는 마케팅 전략이었는지, 유치원은 언제나 붐비는 아이들로 유명세를 탔다. 아이들과 생활하는 선생님은 편안한 옷차림으로 몸과 마음에 여유를 두어야 좋은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히 어필하지 못했었다.


어쩌면 내가 미래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첫 직장에서 만난, 오래되어 묵은지처럼 되어버린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선생님들은 그 영역에서 최고 권위자인 할머니 원장님께 휘둘리며 경력을 쌓고, 할머니에게 맞춰진 사람들이 되어갔었다.

할머니 원장님 마음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과 동시에 나의 어두운 미래를 보았다.

이직을 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던 곳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난 나의 결정은 정말 탁월했다.

그 후 꼬리표는 떨어지지 않았지만,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은 없었다.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첫 직장 출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엔 조금 다른 사회 초년생이 되어 보려고 한다. 마흔셋, 이 사회의 초년생이 이제 나의 타이틀이다.

이번엔 월급 주는 사람의 파워를 무서워하지 않고 대신 파트너십 마인드를 가지고 가겠다.

스스로의 신분을 존중하기 위해 알맞은 옷차림을 하고, 전문적인 의견을 융통성 있게 이야기할 줄 아는 직장인이 되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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