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다친 게 통쾌한 엄마,
내가 나쁜 엄마인 걸까?

일하러 가는 게 제일 좋아.

by 미쉘

매일 아침, 낮, 밤. 딸아이와의 티격태격이 내 하루 기분을 좌우한다.

사춘기 시절, 이성적으로 감정을 조절해 온 나는, 왕성한 호르몬에 휘둘리며 금세 무너져버리는 딸아이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은 자랑스럽게 "다 겪어봤다"라고 말하며 그냥 넘기라고 하지만, 어쩌면 나 역시 지금은 갱년기 호르몬의 장난에 휘둘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특히 엄마만 콕 집어 타깃 삼는 딸아이의 ‘못된 행동’은 매일같이 내 인내심의 끝을 시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을 만큼 참고, 이해할 만큼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가장 힘든 건 아침이다.
굿모닝 인사를 하려고 살며시 방문을 열고 웃으며 다가가는 엄마 얼굴 앞에, 문을 ‘쾅’ 닫아버리는 딸.
그 한순간에 내 기분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더는 노력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진다. 결국 잔소리가 쏟아지고, 서로 하루의 시작을 엇갈리게 맞는다.

밥은 대충 알아서 먹고, 도시락도 과자 몇 조각 던져 넣고는 인사도 없이 쌩 나가버리는 딸아이.
그렇게 혼자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그래, 아주 독립적인 아이구나’ 생각하기로 한다.
나야 좋지, 싶다가도 어느새 건강 걱정이 앞선다. 건강한 음식을 싸줘도 가져가지 않고, 결국 도시락엔 과자랑 과일 한 조각. 그래도 그거라도 먹으니 다행이려나.


오늘 아침은 특히 추웠다.
도로는 꽁꽁 얼었고, 평소 같았으면 딸아이가 “차로 데려다줘” 했을 텐데 오늘은 말이 없다.

나는 뒷모습에 대고 “차 태워줄까?” 했지만, 딸은 들은 척도 않고 그저 낯선 사람처럼 가버렸다.
길이 많이 미끄러워 걱정이 됐지만, ‘이것도 독립의 한 과정이겠지’ 싶어 마음속으로 “잘 가”를 외쳤다.

아들을 학교 근처에 내려주며, 아직도 엄마를 보며 웃고 또 웃는 아이의 미소에 내 기분도 풀어진다.

회사로 가는 길은 딸아이가 걸어가는 길과 같다.
괜히 마음이 쓰여 살짝 확인하고 싶었다. 도로에 얼음이 많아 차를 길가에 세우고 창문을 내려 물었다.

“차 탈래? 데려다줄까?”
그냥 지나쳐야 마땅한데, 또다시 딸에게 ‘당하러’ 가는 나다.

그런데 웬일인지, 딸은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조수석에 살짝 올라탔다.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엄마, 나 미끄러져서 다쳤어.”

“정말? 많이 다쳤어? 한번 보자... 그러게, 오늘같이 미끄러운 날은 그냥 차 타고 가지.”

무릎엔 피가 제법 났다. 꽤 심하게 넘어진 듯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까진 상처였다.

속으로는 “샘통이다” 싶으면서도, 겉으로는 호들갑스럽게 걱정하는 내 모습이 참 처량했다.
하지만 딸아이는 내 걱정에 상황을 설명하며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래, 넌 아직도 어린 아이다’ 싶었다.


차가 멈추자, 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말도 없이 가버렸다.
‘잘 가라는 말 한마디는 못하니?’


주차를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얼마나 통쾌한지 알아?”
“너무 고소해서 짜릿해. 그렇게 엄마한테 못되게 굴더니 벌을 제대로 받았어. 샘통이지.”

남편과 나는 전화기 너머로 한바탕 웃었다.
딸아이가 다친 게 안타깝기보단, 누군가가 그 행동의 대가를 돌려준 것 같아 고소하다는 이 기묘한 감정.

내가 너무 나쁜 엄마인 걸까?

이제 딸을 보지 않아도 되는 회사 생활시간이 시작됐다.
그래서 나는 출근하는 시간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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