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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쉘 Apr 10. 2023

노아를 통해 이민자의 삶을 되돌아 봅니다.

파친코 독후 -노아

노아는 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아무리 조센징이라도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어 나간다면,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자신 그 자체로 인정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하며 살아가는 건강한 청년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확신을 했습니다.


자신의 노력에도 불고하고,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더러운 출생의 피는 아녔을 것입니다.

노아는 야쿠자의 피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논한 후,

모든 것을 놓아 버립니다.

노아는 과연 야쿠자인 아버지의 피와, 일본인 여자 친구의 편견을 참지 못했던 것인가? 정말 그런 것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아는 자신의 처지에 도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공부하면 인정을 받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면 누구도 얕보지 않고, 노력하면 최고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노아는 사실 버텨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정직했고, 자신은 소중했으니까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일로 도망치게 된 것은 어쩌면 핑계였을지 모릅니다.

노아는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착한 아들, 촉망받는 한국인, 살아남은 자의 과제, 보이지 않는 희망을 갖고 일본에 사는 한국인,

그 사실로부터  탈출하고 싶었습니다.


8년을 일본인으로 살아왔던 노아. 누구도 자신의 배경과 정체를 모른 체 그저 그렇게 평범한 한 일본인의 가장으로 살아오던 노아, 아무도 진짜의 자신을 모른 체 ,자신 그 자체로 받아주고 대해 주길 바랬던 노아.

노아는 완벽한 일본인이었지만,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뒤로한 채 이어나가는 인생은 자식이 넷이어도, 잘 나가는 파친코의 훌륭한 매니저 자리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평생 두 번, 어머니의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노아는 다시 만난 어머지에게 따뜻했습니다.

어머니와 다시 돌아갈 것을 약속한 날 그대로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습니다.


노아의 모습에서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아의 모습에서 내 모습 또한 보았습니다.

자신이 드러난 것에 대한 두려움,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이기적인 자신의 모습에 실망해 버렸던 것일까요?  자신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 후 뒷 일을 감 당 할 수 없었을까요?

진짜인 자신의 모습으로,  한국인의 모습으로는 자신의 가족을 똑 같이 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도 그렇게 비취지지 않을 것을 알았겠지요.

살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해합니다.


노아는 그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사랑하고 싶었고,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이민자의 삶이 그러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오랜 전 일제강점기의 이야기이지만 2022년 지금도 많은 것들이 겹칩니다.

직업의 선택도, 사회 문화생활의 혜택도, 사람들의 편견도, 주류의 높은 벽도 겹칩니다.

아시안인이라 열심히 살 것이고, 피아노를 칠 것이고,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의대로 진학할 것이라는 편견.

이민사회이지만 그러한 편견이 아이들의 목을 조르고, 정체성을 흔든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자신으로 인정받을 때, 인간은 희열을 느낍니다.

어떤 인종이 아닌 누구의 피가 섞인 사람이 아닌 오롯이 나로서 인정받을 때 말입니다.


모두가 다름을 받아들일 날이 올까요?


개인적으로는 올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내 자체가 원인이기 때문에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아니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아처럼 도망쳐야 벗어나 버릴 수 있는 걸까요?

노아가 현실을 직시하고 좀 더 냉정했다면 노아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요?


이책을 읽으며, 이민을 후회 했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과연 이것이 옮은 일인지 의심이 듭니다.

정체성의 혼란은 누구나 어디에서나 겪을 수 있는 과제입니다만, 이민으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을 덩달아 남겨주는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앞서 듭니다.

우리 아이들은 2세이니 다를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지 않다 생각합니다.

뛰어 넘을 수 없는 한계는 어제도 오늘도 겪었으니까요.

언어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화의 문제도 아닙니다.

너 자체가 문제인것이죠.


인종차별없이 여러 친구들과 잘섞여서 잘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하지만 ,언제 이 문제로 집으로 와 울고있을지 몰라 두렵습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딱히 없는것도 두렵습니다.


어떤 친구들과 놀아도 한국친구들이랑 노는게 제일 재밌다고 합니다.  한국 친구들이 집에오면 엄마가 편해 보인다고 말합니다. 사실입니다. 우리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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