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훼방꾼 황제님께
마르쿠스 님
따뜻하고 안락한 이불속이 너무 좋습니다.
저는 이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을 누리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 같습니다. 잠자는 시간이 저에게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눈을 떴지만 몸은 침대에서 꼼짝도 하기 싫으니 말입니다.
마르쿠스 님처럼 황제로서 우주를 위해 해야 할 그런 많은 일들이 저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편안한 이불 아래에서 좀 더 쉬면 어떨까요?
휴식이 중요하지만 한계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즐거움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모르겠어요. 그것을 넘어섰는지 아직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오늘은 좀 쉬면 안 되나요?
저는 지난 일주일을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공부와 일 부모노릇까지 하며 치열하게 살았거든요. 그래서 늦잠이 필요하고, 게으르고 싶습니다. 지금은 아침 10시입니다. 한계를 넘어간 것인가요?
마르쿠스 님의 말이 자꾸 맴돌아 아주 불편한 이불 아래가 되어버렸어요. 저의 작지만 큰 행복을 불편하게 만드신 마르쿠스 님 제가 주제도 모르고 마르쿠스 님처럼 크고 위대한 사람을 따라 하려고 하고 있는 것 이겠죠?
그런데 왜 크고 위대하신 분이 ‘이불아래 작은 행복’과 같은 너무나도 하찮고 본능적인 것에 대해 논하셔서 저처럼 우주먼지와 같은 작디작은 평범한 인간의 행복에 소금물을 뿌리시나요. 마르쿠스 님 때문에 마음이 아주 불편합니다. 이불속을 나가고 싶지 않아요. 진짜입니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5권 1.
“날이 밝았는데도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을 때는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 일을 위해 태어났고, 그 일을 위해 세상에 왔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불평하고 못마땅해하는 것인가. 나는 침상에서 이불을 덮어쓰고서 따뜻한 온기를 즐기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으냐.”
“하지만 침상에서 이렇게 빈둥거리는 것이 좋은데 어쩌란 말인가.”
“너의 그 말은 너가 쾌락과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말이냐. 요컨대 내게 묻고 싶은 것은 너가 태어난 것은 누리기 위해서인가 행하기 위해서인가 하는 것이다. 작은 들풀 하나, 공중의 작은 새, 개미, 거미, 꿀벌 같은 천하의 모든 미물들도 각자에게 맡겨진 소임을 수행하면서, 우주의 질서에 기여하기 위해 각자의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이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그런데도 너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를 거부하고, 자연과 본성이 네게 명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 달려가지 않겠다는 것이냐.”
“하지만 얼마간의 휴식도 꼭 필요한 법이다.”
“나도 그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은 먹고 마시는 것에 한계를 정해 놓았듯이 휴식에도 한계를 정해 놓았다. 그런데 너는 그 한계를 이미 넘어섰고, 네게 필요한 정도를 넘어섰다. 반면에 네가 해야 할 일들에서는 너의 능력을 다 발휘해서 하지 않았고 여전히 미흡하다. 문제는 네가 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만일 네 자신을 사랑했다면, 분명히 너는 너의 본성과 그 본성의 의지도 사랑했을 것이다 - <명상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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