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른 채 뉴질랜드에 이민을 왔습니다.

집, 넘볼 수 없는 것들의 향연

by 미쉘


자동 차고 문이 열리고 주차하자마자, 어머니는 처음이니 정식으로 정문을 통해 집에 들어가자고 하셨다. 공사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가는 정원이 눈을 사로잡았다. 이층 식 잔디밭, 계단들, 나무들이 이 집의 품격을 드러내 주었다. 어릴 적 우리 시골동네서 가장 부자였던 병원 원장님의 정원 보다 더 멋져 보였다. 내 허리 높이에 있는 인터폰을 누르자 청소기를 돌리고 계셨던 그의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인터폰이 왜 허리높이에 있는지 남편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 이 나라에는 인터폰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아서 기술자가 차마 얼굴높이에 달아야 카메라가 얼굴을 찍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다시 달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푹신한 카펫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거실 바닥 전체에 깔려 있었다. 마루 바닥이 아닌 카펫에 두발을 얻으며, 여기는 외국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새하얀 벽과 천장에는 모던한 등 들이 높은 곳에서부터 길게 내려와 공중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부엌의 대리석 바닥에 반사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깔끔한 부엌의 아일랜드는 디귿자모양의 고급 대리석 상판을 깔았다. 모든 식기와 전자기기들은 벽에 이미 설치되어 있거나 팬트리 안에 모두 숨겨져 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넓고 또 깨끗하게 정돈된 부엌은 처음이었다. 요리는 하지 않는 보여주기용 부엌과 같았다.


남편과 내가 쓸 방이라는 곳. 방문 오른쪽으로는 워크인 옷장이 널찍하게 있고, 왼쪽으로는 부부용 욕실이 있었다. 방 제일 높은 곳에 위치 한 동그란 창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밑으로는 통유리 창문이 방 한 켠의 벽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이제 막 공사에 들어간 다른 두 집과 멀리 농장의 양들과 그 뒤로 펼쳐진 낮은 산들이 멋진 경치를 뽐내고 있었다. ‘매일 이 풍경을 보는 건가…?’

다른 한쪽 벽면에는 고풍스러워 보이는 침대와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가구, 침대, 이부자리 모두 그의 부모님이 골라 정성스럽게 마련해 준 것이었다. 비싸 보였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세심하게 마음 쓰신 것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나와 그의 방이라는 곳에, 내 취향, 내 선택, 내 물건은 어디에도 자리할 곳이 없어 보였다. ‘ 신혼침구는 내가 고르고 싶었는데…’. 원한적은 없었지만, 이미 많은것을 받아버린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에 죄스런 마음이 들었다.


이층도 올라가 보아야 한다며,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안내하는 어머니를 따라갔다. 이렇게 복잡한 계단과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이층에는 방이 두 개 더 있었고. 욕실도 하나 더 있었다. 일층 것과 합치면 변기가 세 개 샤워장이 두 개다. 꼴랑 우리 둘이 살 텐데 변기 계수가 너무 많다는 생각 했다. 일층에 있는 손님용 화장실이라는 곳은 사람 한 명이 들어가면 돌아 설 공간이 없이 좁은 것이 참 우스웠다. 내 자취방의 화장실보다 더 작으니 말이다. ( 아 참 거기선 샤워를 했어야 했고, 세탁기도 넣어야 하긴 했다.) 그야말로 이건 인생 역전이었다. 로또를 맡으면 이런 급작스런 변화를 겪을까? 이런 것을 보고 결혼을 잘한 것이라고 하나? 비행기를 타기 전 친한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눈다며 모였던 자리, 친구들은 그 해 잘 나가던 아나운서 ‘노현정’ 이 ‘현대가’에 시집가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은 나도 철밥통 공무원 자리를 차지하자마자 그만두고, 부잣집에 시집을 가는 것에 다가, 모두의 꿈인( 내 꿈은 절대 절대 아니었다.) 이민을 가니 (좋은 나라로) 나는 ‘노현정’ 이랑 다를 바가 없다면서 치켜세웠던 것이 기억났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이 집을 보니 그 말이 조금은 맞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집들과 이 집은 하늘과 땅 차이였으니 말이다.


이제 집 자랑은 다했으니 옷을 갈아입고, 저녁식사를 할 차례라고 하셨다. 나보다 더 일찍 도착해 있었던 내 짐들이 있는 옷방으로 가서 주섬주섬 아무 옷이나 입었다. 피곤했지만 시어머니가 부엌에서 일을 하시니 얼른 나가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그러셨다. 부엌에서 작은 소리만 들려도 쫓아 나가야 하는 것이 며느리가 할 도리라고… 실제로 엄마는 그런 며느리이기도 했다. 숟가락이나 놓으면 된 다하시면서 서랍 속에서 숟가락을 찾으라 하셨다. 서랍에서 숟가락을?… 숟가락은 통에 거꾸로 꽂아 두거나, 플라스틱 숟가락통에 보관되는 것이 국 룰 아니었나? 널찍한 서랍을 여는 순간… 시어머니의 살림 클래스를 알 수 있었다. 용도와 크기에 따라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식기들…. 손도 댈 수 없이 깔끔했고, 빛이 날 정도로 반짝거렸다. 다른 서랍도 열어 보았다. 역시 냄비는 냄비서랍에, 양품은 양품서랍에, 양념들은 양념만 넣을 수 있는 서랍에….. 신혼살림이 아니라 대가족 살림이었다. 모두 새것은 아니고, 시어머님이 쓰던 식기들이라고 했지만, 모두 좋은 브랜드에 스크래치 하나 없이 귀하게 보관하신 것 같았다. 수납공간이 적어 혹은 늘 바빠서 아무렇게나 정리되어 있었던 엄마의 부엌이 생각났고, 수납장 이라고는 위아래로 딱 한 칸씩이 다였던 내 자취방 싱크대도 생각났다. 여기는 내가 손댈 수 없는 공간이었다. 시부모님은 3개월 동안 머물고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했지만, 살림을 보아하니 이곳에 함께 머무르실 모양 같았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주인이 본인집에 살겠다는데 무슨 불만이 있을까...난 이 살림들은 최대한 안 쓰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물건들을 그 자리에 그대로 넣을 수 있을지 없을지 , 있던 자리를 기억이 날지 안 날지, 어머님의 살림을 내가 망가트리지는 안을지 걱정이 앞섰다. 새로 나온 벽걸이 텔레비전과 스테레오 시스템, 가짜 나무가 들어 있는 가스식 벽난로, 고풍스러운 소파와 가구들, 남의 집에 전시된 넘볼 수 없는 그런 것들의 향연이었다.


늦은 저녁 엄마에게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했다. 엄마에게 걱정 말라며, 집도 살림도 다 준비가 되어있고 나는 그냥 잘 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엄마는 ‘ 세상에..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다 있네…’ 하시며, 시부모님에게 예의를 잘 지키라고 하셨다. ‘솔’ 톤으로 엄마를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얼굴전체를 감싸고, 눈만 빼 꼼이 나오는 그런 모자를 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뭔가 개운하지 않은 이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왜 이 상황이 좋지가 않을까? 내가 이상 한 걸 까? 자존심일까 아님 열등감일까? 철이 덜 든 걸까? 엄마는 내가 복이 많다고 하셨다. 해준 것도 없이 시집을 보냈는데 그렇게 좋은 집에 살게 되어 감사하다고 하셨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건데..... 엄마의 말이 옳다고 맞장구를 쳤음에도 찝찝한 이 기분은 없어지지 않았다. 집주인인 그의 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나면 난 이 집에서 나가서 자취방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 놓아도 되고, 나와 그의 동선에 맞춰 살림살이를 세팅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방 하나 거실하나의 그런 집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선택은 어디에도 없는 이 불편한 집은 아무리 좋아도 내가 살 집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말도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에서 선택을 하고 싶다는 나의 소망은 금새 사라져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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