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른 채 뉴질랜드에 이민을 왔습니다.

유럽에서 찾지 못한 뉴질랜드라는 나라

by 미쉘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그는 시골 장모님께 거하게 차린 신랑상을 받았다. 거실 만한 상에 가득 차려진 신랑상은 한꺼번에 많이 먹지 못하는 새신랑에게 고역이었지만,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했다. 나와 그는 엄마가 마련해 주신 음식을 한 아름 안고 긴 시간 운전을 하여 그의 부모님 집으로 갔다.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잠시 후, 멀리 차 한 대가 도착해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시부모님과 시누이가 외출을 하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엄마가 보내준 음식 바구니를 받고 어머니는 깜짝 놀라셨다. 아무런 격식을 차리지 않은 본인의 집과 깍듯하게 격식을 차린 우리 집이 비교가 되셨던 모양이다.

“넌 미용실까지 다녀왔니? 너희 어머니도 참… 얼른 씻어라.” 새벽부터 미용실을 찾아 머리를 올린 지 몇 시간 만에 빛도 못 보고 시키는 대로 샤워를 했다. 유교적인 나의 집이 아닌 것을 절감했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시댁이 서운하면서도 진보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이 집의 자유로움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비단 이부자리를 보니 엄마말이 떠올랐다.

“시댁에 너희 앞으로 지어 놓은 비단 이부자리를 보내 놓았으니 그거 덮고 편하게 자라”.

시어머니는 우리들의 이부자리를 마련해 주시며 이불이 너무 무거워서 팔이 아프다고 하셨다. 난 엄마의 품에 들어간 것 마냥 이 집에서 처음으로 편안한 곳에 몸을 뉘었다. 각종 큰 행사를 치른 며칠 후 그와 그의 부모님이 뉴질랜드로 떠났다. 시부모님은 뉴질랜드에서 우리들의 신혼살림을 준비해 줘야 한다면서 비행기를 타셨다. 그렇게 까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독립적으로(좋은 말로) 컸던 나는, 나의 부모님과 영딴판인 시부모님의 케어가 조금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나는 올해 맡은 아이들을 졸업시킨 후 3월에 뉴질랜드로 가기로 했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뉴질랜드 출국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좁은 자취방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보며, 내가 저지른 일이 현실이 맞는지.. 또 한 번 확인했다. 한 해 동안 핸드백에 매일 가지고 다니던 다이어리의 맨 뒷장을 제치고 삼단으로 접혀 있는 세계지도를 펼쳤다. 뉴질랜드…. 뉴질랜드… 검지손가락으로 한나라 한나라 짚어가며 유럽대륙을 훑어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뉴질랜드라는 나라는 없었다. 뉴질랜드에 있는 그에게 마침 전화가 왔다. 세계지도에서 아무리 찾아도 뉴질랜드라는 나라는 없다고 했다. 그는 오른쪽 맨 끝을 보라고 했다. 오른쪽은 유럽대륙과 반대 방향인데 무슨 소리냐고 말하며, 눈은 이미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세계지도 맨 아래 끝에 뉴질랜드라는 나라가 덩그러니 끝없는 파란색 바다로 둘로 싸여 있었다.


world map where is New Zealand.jpeg

미디어에서 자주 나오던 그 옆 나라 호주가 아닌, , 유럽도 미국도 아닌 곳. 더 작은 섬나라. 아뿔싸…그동안 뉴질랜드라는 이름을 수십 번 수백 번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은 채, 유럽에 있는 어느 나라라고 당연히 생각했었다. 철저한 인생계획을 세우는 나로선, 사랑만 따라 눈먼 결혼을 하고, 휴직을 한 자신이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

적어도 앞으로 어디로 가서 살 것인지는 알고 결혼을 하고 휴직을 했어야 했다는 이성적인 생각이 그제야 들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라는 나라는 인구가 한국의 대구 인구 정도밖에 되지 않는, 땅은 넓으나 작은 나라였다. 국가 주요 산업이 축산업. 시골에서 자라나 서울 상경이 꿈이었다. 그 모든 화려한 문화적 혜택을 받고 살고 싶었던 상경의 꿈… 나의 힘으로 드디어 그 꿈을 이루어 서울 근교로 발령을 받은 지 2년… 다시 시골처럼 느껴지는 뉴질랜드라는 나라로 간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그러나 이미 비행기티켓은 손에 쥐어져 있었고,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나의 심장은 너무나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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