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오후 1시.
오늘도 같은 날은 반복이 되었다.
오전 10시가 되니 8시부터 시작된 휴가모드 대식구의 아침식사 시간이 끝이 났다.
점심 장을 보러 다녀오니 11시..
이제는 진짜 구직자로 신분을 바꿀시간인 것을 어머니가 드디어 눈치를 채셨다.
아이들을 모두 밖으로 빼주셨고, 잠시 유튜브 검색으로 면접 요령, 질문에 대한 답하는 요령등을 급하게 익혔다. 생각보다 준비할 것이 많아 당황스러웠다.
정장을 입어야 하나 했지만, 왠지 아시안의 편견 같아서 검은 바지에 베이지색 블라우스를 입고, 한 번도 신어 본 적 없었던 검은색 단화를 꺼내신고 (그래도 아시안인의 편견이 묻어나는 옷차림 같다.) 집을 나섰다.
준비가 소홀한 이 인터뷰가 좋은 결과를 낳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은 기대감에 영어로 말하기를 연습하고 또 연습해 본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데, 어디서 오는 자신감인지, 잘될 것만 같은 느낌은 김칫국물인 것인가...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회사를 한 시간 전에 도착하여 차를 세워두고 말하기 연습을 했다.
차 안은 정말 집중하기 좋은 곳이다.
면접을 보기로 한 회사는 장례식 서비스를 하는 회사이다. 정례식 서비스를 하는 회사에서 디자이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들은 뉴질랜드에서 제일 많은 브런치를 갖고 있는 대형회사로, 각종브랜드를 한 곳에 모아 한 브랜드로 만들 큰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그래서 이번에 여섯 명의 새 디자이너를 뽑는다고 했다.
여섯 명.. 그중에 내 가 안 뽑힐 확률은 낫지 않을까?
모던하고 널찍한 장례식장의 건물뒤 한 골목을 지나 위치한 디자인 사무실은 가정집을 개조하여 만들어 놓은 작은 사물실이었다. 회사 규모고 뭐고 디자인 사무실은 작고 초라했다. 디자이너 5명이 근무하고 있다는 이곳의 분위기는 딱 뉴질랜드스러워 보였다. 느리고 구식이다. 컴퓨터도 화려한 실버 IMac 이 아닌 시커먼 Window pc라니.. 디자인 회사는 다 애플 아닌가... 초라한 이곳의 분위기를 보고 나니 나 같은 초자도 붙을 것 같다. 3명의 면접관과 함께 시작된 면접은 동네 아줌마 수다 떨듯 편안 소파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꼰, 손에 든 몇 장의 종이와 나를 번갈아보며 진행되었다.
지난 시절, 한국에서 봤던 임용고시를 위한 포멀 한 면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이곳을 또 깔아 내려 보기 시작하니, 자신감은 올라갔고, 질문에 대한 답과,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은 자동 반사되듯 주저리주저리 나왔다.
30 ~40 분정도의 면접이 끝났고, 아주 편안한 면접을 자신감 있게 본 구직자는 이제 직장 구하는 일은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장례식 관련일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디자이너로써 일을 보았을 때 프로젝트마다 다른 클라이언트의 스토리를 구상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면접을 보고 나니 온몸에 긴장에 풀려 힘이 없었다. 집안 식구들이 면접 보고 온 구직자를 보고 기대에 찬 듯 질문을 해대었지만, 간결한 대답으로 말을 아꼈다.
다음 주 중에 대답을 준다고 하니 비교적 빠른 일처리다. 당연히 그 사람은 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일은 주말도 번갈아 나가야 하고, 공휴일에도 불려 가갈 수 있는 온 콜에다가, 돈도 작고, 사무실도 구리고, 장례식 관련일이니 젊은 디자이너들이 선호하지 않을 것 같은 일자리 이기 때문이다. 내가 적임자다. 나는 이 지역에서 일자리 급한, 생활이 빠듯한 아줌마로, 디자인 관련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할 것이고, 주말 근무든 공휴일 근무든 디자인 관련일을 회사에서 시작만 할 수 있다면 어디라도 좋다. 정말이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일하기엔 마음에 걸리는 일이 몇 가지 있다. 일을 잡는 것에만 급급해.. 얼마를 받기를 원하냐는 질문에 미니멈이면 충분하다고 나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발언이 마음에 걸린다. 친구 Ann이 절대 첫 직장을 미니멈으로 시작하지 마라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그것이 니 몸값으로 정해진다라고 했으니... 만약 오퍼를 받는 다면 내가 불렀던 페이 보다 조금 더 줄 수 있는지 협상을 해보아야 할까? 내가 하고 싶었던 디지털 디자인보다는 프린트 디자인이 주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페이를 협상해야 할까? 협상은 영어로 어떻게 해야 문화에 맞고 부드럽게 넘어갈까? 주말, 공휴일, 온콜 출근도 정말 괜찮을까? 그런 생활은 나와 남편이 살고자 했던 이민 생활이 아니지 않나? 주말을 함께 가족과 보내기 위해 이곳에 사는 것 아니었나?
각종 김칫국물 웹툰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다 일주일이 지났다.
한국 가족들이 떠났고, 이번주는 오퍼 이메일을 받는 주 다.
한국 가족들이 떠난 날..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헤어지는 것에 익숙한 나와 남편 그리고 13살 딸에 비해 아직 경험이 많이 부족한 10살 아들은 비행기가 한국으로 뜰 때까지 사촌과 페이스톡을 했다.
집안이 텅 빈 듯 하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목요일인데도 이메일이 오지 않는다.
뉴질랜드 답게 금요일에 올 것이 분명하지만, 이메일이 늦는다는 뜻은 좋은 신호는 아니라는 예감이 든다.
늦어지는 이메일을 기다리며, 가정주부 구직자는 성장을 하고 있었다.
협상을 하지 말아야겠어. 첫 직장을 주는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겠어. 어떤 일이든 하는 것이 처음엔 중요하니 계산하지 말아야겠어.
더러운 변기통도 손 타올로 정성스럽게 닦으니 반짝이는 도자기 같았던 것처럼 작은 일도 귀하게 여기고, 눈앞에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정성스럽게 처리해야겠어.
한 끼 한 끼 깊게 생각하고, 장을 보고 음식을 정성스레 준비하니 모두가 행복했고 나도 행복했던 것처럼 거들먹거리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겠어.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손해 보더라도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겠어. 내가 소홀히 대했던 가정주부로서의 삶처럼 이일을 대하지 말아야겠어. 지금 당장은 그 소중함을 보지 못할 뿐, 소홀히 대할 일은 없어.
아이들은 많이 컸고, 엄마의 빈자리는 빈자리가 아니라 배움의 자리로 채워질 거야. 나는 열심히 했고, 잘했고, 아이들은 그 결과를 보게 될 거야. 가족에게 나의 빈자리가 느껴진다면 그건 주말이나 공휴일에 내가 일을 나가기 때문이 아닐 거야. 집중과 관심의 문제일 거야.
이번에 잘되지 않아도, 직업을 구해보는 모든 과정을 거쳐 보았어. 면접도 보았고, 이메일로 여러 차례 소통을 하며 분위기도 파악되었으니 이건, 앞으로 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거야.
성장과정에 마침표는 No offer였다.
실망했지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준비가 아주 많이 부족했고, 겸손하지 못했다.
다음에 좀 더 잘할 수 있겠지?
이 작은 시골마을에 디자인 일이 또 나올까?
아무 일이나 일단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걱정은 그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