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는 갱년기를 이길 수 있을까
엄마의 갱년기는 내 인생 최대의 화두다. 순식간에 다가왔다. 삶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 엄마의 삶에는 천천히 스며들었겠지만, 내 삶에서는 예고 없이 찾아와서는 빵 터져버렸다. 내가 빵! 터져버리니, 엄마도 빵! 터져버렸다.
어느 날, 엄마가 불안한 눈빛으로 응급실에 가자고 하셨다. 뒷골이 당기고 죽을 것 같이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고. 처음 보는 그 눈빛 때문에 불안한 나머지 엄마 앞에서 손을 벌벌 떨며 응급실로 달려갔다. 나는 공황장애를 극복해봤기 때문에 그 느낌을 안다. 죽음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그 느낌. 다행히 혈압은 정상이셨고 스트레스성 반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전히 날 불안하게 만든다.
여러 사건들이 있은 후에 엄마는 갱년기를 제어하려 한다. 주방에 놓인 건강기능식품들. 간혹 청심환도 드신다. 가족에게 위로를 받지 못하시니 그런 것들이 그나마의 위안이 되는 듯하다. 엄마의 마음은 따뜻한 난로 같다가도 불꽃같아지고, 감정은 이성적이었다가도 냉혹해진다. 말도 안 되는 변덕들을 스스로 인정해나가는 모습을 가까이 지켜보니, 솔직히 오래 사는 게 정말 좋은 건가 싶은 적도 많았다.
지금 엄마와 나의 인생 그래프는 어긋나 있다. 죽어서 여러 차례 지나갈 시험대 중 한 곳에서 '너 그때 왜 그랬니?'라고 물어본다면 '나도 진짜 죽을 만큼 힘들었어요. '라고 답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죽을 만큼 힘든 일은 존재하며, 인생 넓게 보면 지금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다. 지금의 시간은 썩 좋지 않다. 인생의 운을 가늠할 때 나쁜 일이 몰아서 왔는 지 판단하곤 한다. 건강, 직업, 경제적 문제, 가족, 인간관계, 사랑... 고구마 줄기처럼 한 번에 내 뒤통수를 때렸다.
희망 하나로 위로 올라갈 준비만 하고 있는 이 불명확한 지점에 서서, 어떻게 엄마의 갱년기를 위로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엄마를 위로할 여유가 없다. 엄마를 어떻게든 이겨보겠다고 오기만 부리는 것 같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또 충돌하고, 서로 더 아프게만 하고 있다.
연민 → 상처 → 후회 → 또 스트레스 → 안타까움 → 아!!!
무한 루트로 반복되는 감정의 고리들 때문에 내 마음의 근육은 느리게 자라는 것 같다. 엄마는 그런 딸이 안쓰러운지 언제나 그랬듯 나를 이해하신다. 엄마와 나 사이엔 '미안하다'란 말은 없었지만 지금은 흔한 말이 되어 버렸다. 엄마의 마음이 내 서툰 감정의 고리를 끊어줄 수 있을까. 아님, 내가 끊을 수 있을까...어렵다.
오늘은 엄마와 싸우지 않았다. 우연히 엄마 얼굴을 보다가 언제 생긴 지 모를 눈썹 위 주름을 발견하곤 잘 참아낸 것 같다.
아빠를 원망한다. 왜 아빠 같은 남자들은 여자의 갱년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왜 저렇게 퉁퉁거릴까. 남자들도 분명히 갱년기가 있을 텐데. 왜, 스스로의 갱년기도, 와이프의 갱년기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걸까. 다른 집 아빠들과 비교하다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저항심을 거둔다. 이렇게 또 생각만 하다 보면 가족에 대한 회의감만 들어 멈춘다.
"엄마, 난 많이 힘들지 않아. 그리고 엄마도 괜찮아질 거야"
"너도 나만큼 힘들었지? 엄마도 네 나이 때 그랬단다"
5년 후엔 이런 대화 나눌 수 있을까?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꿈꾸고 싶다.
"엄마의 웰에이징(Well-aging)과 나의 전성기"
10년 후엔 엄마와 나의 인생그래프가 어긋나지 않고 잘 맞을까? 엄마의 웰에이징을 응원하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돈을 좀 많이 벌어야겠다.
"아빠, 아빠의 삶도 고달팠지? 이제는 이해해"
20년 후엔 나도 아빠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겠지. 그때, 우리 가족이 너무 힘든 그때,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 버텨냈을 삶은 얼마나 여유가 없었을까 되뇌면서.
난 오늘도 세 가지 삶을 꿈꾸며 정신력을 무장한다. 외로운 모두의 인생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