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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Mar 04. 2023

뿌린 것보다 더 거둔다(고3 졸업식을 마치고)

  오늘은 고3 학생들 졸업식이었다. 담임 중 막내라는 명목으로 교사 대표로 편지를 낭독하고, 담임 축하 공연을 해야 해서 바짝 긴장이 되었다. 졸업식 전까지도 가사가 입에 붙지 않아 혹시 실수할까 봐 잠을 설쳤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부모님과 학생들이 다 같이 강당에 모여하는 졸업식. 그리고 매번 내가 가르친 학생들의 졸업식 때는 육아휴직이었던 터라 교직생활하며 처음으로 맞이하는 졸업식이었다.

  작년 일 년 동안 처음 고3 담임을 맡으며 나름대로 구멍이 되지 않으려고 성실히 노력하기는 했으나, 여러모로 기대를 내려놓고 뭐든 최소한으로만 하자는 태도로 일 년을 보냈다. 고3 국어 교과 두 과목을 가르치고 입시 공부를 해가며 어린 두 아이까지 육아하기에 뭐 하나 욕심을 내면 내가 부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평소 '뿌린 대로 거둔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오던 나라서 작년 일 년은 최소한으로 뿌렸으니 큰 실수 없이 일 년을 보낸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한 해라고 자평하던 바였다. 졸업식에서도 학생들이 뭐 내게 특별한 애정이 있을까 싶어 큰 기대가 없었다. 다만 맡겨진 편지 낭독이나 잘하고 축하 공연이나 실수 없이 마치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뜻밖의 감동을 참 많이 받았다. 반 아이들과 내 수업을 들은 다른 반 아이들이 빼곡한 편지를 써왔다. 수능 이후 얼굴을 못 본지가 벌써 몇 달인데도 제 마음을 표현하려고 졸업식까지 꽃과 편지를 들고 온 아이들. 편지에는 이런 말들이 있었다.

'선생님이 제 성적보다 제 꿈에 늘 관심 갖고 응원해 주셔서 참 감사했어요. 선생님 덕분에 성적에 흔들리지 않고 꿈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 반 학생이라 행운이었어요. 늘 친근하게 따듯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한 번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대학을 선생님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꼭 가고 싶다 생각하게 되었고 선생님 후배가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대치동에서 12년간 수업들은 저에게 선생님의 국어 수업은 다른 수업이 필요 없는 완벽한 수업이었어요. 정말 이 이상 더 준비할 수 없게 수업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정에서 힘든 시기였는데 일 년 내내 선생님이 잘해주셔서 힘든지 모르고 고3 수험생활 할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솔직히  아이들의 말을 듣고 편지를 읽으며 '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언제 다른 반 애들도 상담해 줬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수업 준비도 하는 데까지만 했는데...

아, 이건 뿌린 것보다 더 거둔 거구나

  이 아이들 마음밭이 곱고 풍요로워서 내가 흘린 작은 씨앗, 물방울, 햇빛도 아주 크게 받아들여 싹을 피우고 꽃을 피워낸 거구나. 교사에게 이런 기쁨과 보람이 있었지, 참.


  항상 교직 생활에 너덜너덜해져 있을 때마다 이런 아이들 때문에 또 힘이 빡 충전이 된다. 올해 고3 교과도 담임도 더 잘해보고 싶다. 올해는 또 어떤 기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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