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교사가 본 문과와 이과
유재석과 조세호가 mc를 보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방송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가 참 따듯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본래 프로그램은 두 mc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일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미니 퀴즈를 통해 상금을 주는 방식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불가피하게 컨셉을 정해 특정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본래 프로그램의 방식도 좋아했지만, 솔직히 코로나 이후 바뀐 방식이 훨씬 더 흥미롭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튼 오늘 우연히 본 재방은 '문과vs이과'라는 주제로 특정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내용이었는데, 과거에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가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찐문과다. 어려서부터 국어나 사회는 적당히 노력해도 점수가 잘 나왔고, 수학이나 과학은 두 세 배의 노력을 들여도 평균 이상의 점수를 내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매일 다섯 시간씩 자습을 할 때도 두 시간은 국어, 영어, 사탐을 몰아 공부하고 세 시간은 수학만 공부했는데도 결국 수능 때 제일 아쉬운 점수가 수학이었으니 나는 문이과 중 문과에 치우친 재능을 가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살면서 내 문과 성향을 이과 성향의 사람들과 비교해볼 일이 거의 없었다. 중학생 때 친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예체능을 했고, 고등학생 때는 문이과로 반을 나누다 보니 친한 친구들이 다 문과였다. 대학을 문과대로 진학한 이후로는 더더욱 삶의 주변인들이 문과생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러다 문이과 차이에 충격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바로 대학 방학 때 지방에서 합숙하며 교육봉사를 할 때였다. 그 봉사활동은 한 기업에서 주관하는 것이었는데, 서울의 몇 개의 대학과 카이스트, 포항공대 학생들 중 장학생을 선발해서 기업에서는 학생들의 등록금을 지원하고 대학생들은 교육에서 소외된 지역에서 방학을 보내며 지역 학생들을 멘토링 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었다. 운이 좋아 제일 친한 국문과 친구랑 함께 내려갈 수 있었는데 그 때 함께 합숙했던 이공계 학생들과 서로 엄청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봉사활동을 마치고 다 같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달밤이 참 아름다웠다. 내가 국문과 친구에게 "달이 물 머금은 듯 참 아름답다. 그치?"라고 말하자, 찰떡같이 알아 들은 내 친구가 "응. 마치 수채화 같아."라고 답을 했는데 옆에 있던 공대 남자애가 "누나들이 보고 있는 저 달은 지금 현재 달의 모습이 아니에요. 이미 과거의 달이에요. 그리고 무슨 달을 보고 그런 표현을 해요? 어우 닭살."이라고 하는데 서로 황당했던 기억이. 또 한 번은 주말에 뭘 배달시켜 먹을지 고르려는데 내가 각 음식들의 장단점을 나열해 적으며 고민하자, 이공계 애들이 무슨 알고리즘을 짜서 돌려 결정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국문과 친구와 나는 같은 방을 쓰면서 잠자기 전에 서로 좋아하는 시들을 번갈아가며 낭독해주고 자곤 했는데 그 모습이 신기하다며 다른 방을 쓰던 이과 여자 친구들이 구경 왔던 기억도 난다. 나중에 서로 헤어지기 전에 하고 싶은 말들을 주고받을 때도 이공계 남자애 중 하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나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누나들 감성 진짜 컨셉 아닌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라고 물어 빵 터졌던 기억도 난다.
교사로서 고등학생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문이과 성향이 정말 뚜렷해서 신기한 경우가 있다. 요즘 교육과정이 문이과 반을 나누지 못하고 한 반에 문이과가 모두 있다 보니 담임을 하며 두 성향의 아이들을 같이 만나게 된다. 여고생들은 상담을 하다보면 끝도 없이 길어지거나 정작 중요한 주제는 놓치고 하소연만 하다 상담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담임인 내가 꼭 알아야하거나 학생에게 궁금한 사실 몇 가지를 적어오게 하고 시간을 정해 적어온 것들에 대해 먼저 상담하고 남은 시간을 자유 주제로 추가로 대화한다. 그런데 대체로 이과 아이들은 적어온 것에 대해서만 보고하듯 딱 말하고 시간이 남아도 “더 할 말이 없는데요. 가 봐도 되죠?”하고 일어난다. 반면 문과 아이들을 적어온 것들만 말하는데도 주어진 시간을 다 쓰고 아직 할 말이 더 많이 남아서 추가 면담을 요청하는 일이 많다. 두 아이들 성향이 너무 달라서 가끔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각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이 있는 것 같다.
처음 대학에 진학할 때는 더 이상 지긋지긋한 수학과 과학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 신이 났다. 그런데 요즘 사회가 융합을 강조하다보니 당장 내 교과에서부터 이공계 지식에 대한 글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점점 수능 국어 지문의 난이도를 비문학으로 조정하면서 요즘은 학생들을 가르치기 전에 동료 수학 선생님이나 과학 선생님에게 질문하고서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지문들도 있다. 국어교사로 살면 찐문과 성향대로 편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수업계(수업시간표에 관한 업무)나 성적계(성적에 관한 업무) 일도 국어과 교사라고 피해갈 수 없으니 어느 정도의 수학머리는 길러야하는 것 같다.
세상은 문이과를 비롯해 다양한 능력과 성향의 사람들 덕분에 다채로운 것 같다. 모두가 같은 성향이 아니기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런 노력이 있기에 모두들 더 깊어지는 것 같다. 100%문과인 내가 노력해서 99%문과에 1%이과인 사람이 된다면 조금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까? 문득 나의 두 아이들은 어떤 성향의 아이들일지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