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떨고 있니...? (feat.교원평가)

평가하는 사람에서 평가받는 사람으로

by 옥돌의 지혜

방 정리를 하다가 작년 교원평가를 인쇄해둔 종이를 발견했다. 그냥 정리할까 하다가 '용기를 내서' 읽기 시작했고, 읽는 내내 부정적인 평가가 있을까 '마음을 졸였다'. 분명 작년 말에 이미 읽었던 평가이고, 부정적인 피드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아이들의 나에 대한 평가를 다시 읽는 것이 '두려웠다'. 읽다보니 수십 개의 과분한 아이들의 칭찬들과 단 한 개의 부정적인 피드백이 있었다. 최고의 칭찬에는 '12년간 만난 선생님들 중 제일 좋았다, 내 생의 롤모델이다, 귀여움과 카리스마를 겸비했다' 등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고 내가 꽤 괜찮은 교사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말들이 있었다. 그리고 단 하나의 부정적인 피드백은 '가끔 우리반 한 아이와 너무 수다 떠는 것 같아 불편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정확히 어떤 반의 누구를 가리켜 하는 말인지 스스로 인지할 수 있었다. 고3 수업 초반에 자꾸 한 아이와 잡담에 휘말려서 스스로 자제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 교원평가를 읽고서 '아 역시 난 참교사야' 스스로 흐뭇해하며 다음 복직 때 용기를 내는 하나의 근거로 여기면 좋으련만,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나는 왜 교원평가를 '용기 내서 읽고, 마음을 졸이며 읽으며, 두려워할까.'하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매년 11월에 이루어지는 교원평가 결과를 바로 확인하지 못하고 겨울방학에 들어가서야 확인한다. 학생들의 평가를 받아들일 시간 없이 바로 다음 날 아이들의 얼굴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교직 첫해에 동료 선생님이 교원평가를 읽고 우는 걸 본 이후 더욱 그렇다.

이십 대에 수많은 과외활동과 교육봉사를 했고, 기간제 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 십 년 가까운 시간동안 나는 늘 내가 좋은 (예비) 교사라고 생각했다. 나만큼 실력 있고, 나만큼 학생에 대한 애정이 있으며, 나만큼 성실한 교사는 드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 빨리 전임 교사가 되고 싶었고,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일찍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전임교사가 되고 보니 우리 학교에서 내가 제일 못난 사람 같았다. 대부분의 선배 교사들은 나보다 학벌도 좋고, 경력도 많고, 입담도 뛰어나고, 지식도 정확했다. 무엇보다 나보다 더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했다.(이 부분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첫 담임을 맡은 반 반장에게 떡볶이를 사주며 이야기를 나누던 날, 반장 아이가 "선생님도 열심히 노력하시면 옆자리 선생님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되실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을 때, 정확히 내 아킬레스건이 건드려진 기분이었다. 내 옆자리 선생님은 경력이 많고 실력 있는 기간제 선생님이셨다. 학교에서 경력 많고 실력 있는 기간제 선생님들을 제치고 왜 내가 전임교사가 되었는지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과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학교에서의 시간들을 전만큼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기를 낳고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갔을 때는 나도 나름의 깡이 생기기도 했고, 이제 더 이상 신임교사가 아닌 나에게 학교도 전처럼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첫해보다 더 담담하게 교직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휴직기간 동안 초보 엄마로 지내며 낮아진 나의 자존감이 늘 나를 120점이라고 해주는 학생들을 통해 많이 채워졌다. 교사인 내가 제일 나답고 유능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전에는 내가 120점짜리라서 학생들이 나를 120점으로 봐준다고 생각했다면, 복직한 나는 70점짜리인데 자꾸 120점으로 포장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언제 들통날지 모르는 나의 실체(또는 실력)를 감추느라 급급했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해 수업을 준비하고 교단 앞에서 당당한 척 했지만 사실 늘 위축되어 있었다. 임용시험을 막 끝내고 신임교사로 일할 때만큼 지식이 꽉 차있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 하원을 하려면 무작정 야근하며 공부하고 업무를 할 수는 없었다. 열심히 하되 균형을 유지해야했다.


다음 복직 때에는 조금 더 미리, 조금 더 충분히 실력을 채우고 싶다. 우선은 국어지식부터 채워야지.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는 바빠서 고민에 그쳤던 많은 것들을 진지하게 알아보고 준비해봐야겠다. 머리로는 교사도 경력이 쌓이면서 실력도 느는 거라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벽한 교사는 없다고,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에 의연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허둥대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롭고 때때로 자괴감을 느낀다. 전에 국문과 문법 전공 교수님께서 본인도 띄어쓰기 실수를 하신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 때 내가 느낀 것은 '뭐야 생각보다 실력 없으시네'가 아니라 '얼마나 자기 실력에 자신 있으면 나 같은 사람도 모르는 것이 있으니 너네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였다. 국어를 평생 공부한다고 한들 다양한 교직 경험을 평생 쌓는다고 한들 학교 현장에서 당황하지 않는 교사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정말이지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을 정도의 실력과 태도는 갖추고 싶다.


교사에 대한 세상의 기대가 과도하다고 느낀다. 그 가운데 나를 보호하면서도 스스로 만족스러운 교직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숙제라고 생각한다. 부디 감사하게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는 그 날까지, 좋은 인연들에 기대어 잘 감당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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