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내가 모든 등장인물인 그런소설1>
내가 처음 '남녀차별'에 대해 생각했던 때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고등학생 때 논술학원에서 토론하던 중이었다. 평소 학원에서 잘 어울리던 남학생이 토론을 가장한 논쟁 발언 끝에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남자가 여자보다 우위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저런 발상은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구세대 사고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와 동갑내기인 고등학생이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니 정말 의아하고 놀라웠다. 나는 여고를 졸업해 남녀공학 대학을 갔다. 여고생 때 우리는 모두 우리가 남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사회에 나가 동등한 기회를 얻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대학을 가자 그 남학생의 말대로 정말 남자 선배들이 대학 문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새내기 엠티나 선후배가 어울리는 자리들은 주로 남자 선배들이 이끄는 술자리가 대부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바로 윗 학번에 여권에 관심이 큰 여자 선배들이 있어서 남자 선배들과의 갈등을 감수하고 여후배들을 보호하려 애썼다. 예를 들어 엠티에 남녀 방이 따로 예약되었는지 꼭 확인하려 했고, 술자리에서 억지로 술을 마시지 않도록 분위기를 깨더라도 도와주었다. 물론 그런 여자 선배들에게 순순히 동참하는 좋은 남자 선배들도 있었지만, 여자 선배들의 그런 태도를 못마땅히 여기는 남자 선배들도 있었다. 새내기 때 보고 느낀 바가 있어 내가 2학년 선배가 되었을 때는 술 대신 차를 마시는 새내기 학교를 동기와 함께 만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새내기들이 이곳에 지원해서 함께 활동했다. 그러나 대학생활 가운데 느낀 남자 중심 문화는 대학을 졸업해 나와 만난 사회에 비하면 약과였다.
막상 취업 시장에 나가자 남녀에 대한 온도차가 너무나 컸다. 내 동기들은 대체로 여자 동기들이 학점이나 스펙이 상대적으로 뛰어났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 남자 동기들이 더 나은 기업들에 취업을 했다. 많은 사립학교에서도 남교사를 선호한다고 들었다. 내가 최종면접에 남교사와 단 둘이 남았다고 했을 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면 이번에는 어려울 거라며 결과도 발표 전에 위로부터 했다. 하지만 취업 때 느꼈던 남녀차별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더했다.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가정에서 기대되는 아내와 남편의 역할, 엄마와 아빠로서의 역할, 며느리와 사위의 역할은 달랐고 시댁과 친정의 태도는 차이 났으며 그 모든 차별은 나 한 사람만 감수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우리 부모님 세대와 비교하면 세상 정말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살지만, 살아갈수록 우리 사회 문화 속에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잔재하는 남녀 차별을 더욱 실감한다.
교사가 된 후 사회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미투 운동은 남녀차별 그 자체보다는 그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중점이라고 느껴졌다. 누군가의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에 나 역시 잊고 지냈던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유치원생 때 집에 가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불러 쳐다보니 으슥한 골목길에서 바지를 내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깜짝 놀라 발에 불이 나게 집에 뛰어들어가 엄마에게 말했고, 놀란 엄마가 신발을 들고 뛰쳐나가 그 사람을 잡으려 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 때 지하철에서 서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누가 나를 스윽 감싸더니 귓속말을 했다. '가만히 있으면 죽이진 않을게'. 그때 한참 뉴스에 묻지 마 살인이 일어날 때였다. 당찬 여중생이던 나는 성추행 뉴스를 볼 때마다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면 발을 꽉 밟고 '사람 살려'를 외친 뒤 경찰에 신고하리라 늘 다짐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일을 겪으니 온몸에 소름이 돋고 몸이 돌처럼 굳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순간적으로 그 사람을 밀치고 열차 끝까지 이동해 피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상황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집 근처 지하철 역에 내렸을 때는 다리가 풀려 걸을 수가 없어 한 시간을 주저앉아 있었다. 그날 엄마는 내게 처음으로 핸드폰을 사주었다.
그 후 성인이 되어서도 대중교통이나 술자리에서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하는 일들을 몇 번 겪었다. 몰카가 등장하고 공중화장실에서 여성 혐오 범죄들이 발생한 뒤로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그러나 어느새 나는 '여성은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받아들이는 한 성인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으며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나마 결혼을 하고 많은 활동을 남편과 함께 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생겼다. 대학생 때 동성친구와 갔던 유럽여행보다 남편과 간 유럽여행이 훨씬 안전하게 느껴졌다. 한 번은 내가 공중화장실 가는 것을 꺼리자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묻는 그 자체'가 의아해서 그간 내가 본 뉴스들을 설명해줬더니 자기는 한 번도 그런 뉴스 본 적 없고 공중화장실이 꺼려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면서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다른 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그런데 이제 나는 그냥 더 이상 여학생이 아닌 여학생들을 가르치는 여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냥 딸이 아닌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앞으로 내 학생들과 내 딸이 살아갈 세상에는 어른으로서 나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고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얼마나 당차고 똑똑한지 모른다. 이 아이들은 교사, 과학자, 댄서, 심지어 대통령도 꿈꾼다. 그 꿈을 말하는 가운데 전혀 머뭇거림이 없다. 되지 못하리라는 한치의 의심도 없다. 세상이 본인이 여자라는 이유로 발목을 잡을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않는다. 하물며 다섯 살짜리 우리 딸아이는 오죽할까. 이제 막 아빠와 남동생은 남자라는 것, 엄마와 본인은 여자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어린이들도 성교육을 빨리 하는 추세라서 엄마들이 추천하는 성교육 책을 사서 읽어준다. 책에서는 놀이터에서 친절한 아저씨가 도와주는 척 엉덩이를 만지면 "안돼요! 싫어요!"를 외치고 도망가 어른에게 알리라고 한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오빠가 옷 속에 손을 넣으려고 하면 "안돼! 싫어!"를 외치고 자리를 피하라고 한다. 그리고 꼭 엄마와 선생님께 말씀드려 나쁜 기억을 빨래 할머니에게 맡겨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한다. 책 속에 나오는 예시들이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읽어주면서도 불쾌하다. 그러면서도 딸을 키우면서 앞으로 얼마나 조심스러울까 벌써 걱정이 된다. 최근에 활동적인 딸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보낼까 고민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태권도 학원에 보내면 여자애 혼자 건물 안에 있는 공용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흠칫 놀라며 마음에서 태권도 학원을 접었다. 아직 집 주소도 외울 줄 모르는 어린아이를 나도 혼자 가기 무서워하는 공중화장실에 혼자 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딸과 아들을 키우니 둘이 서로 다른 성별이지만 각자 얼마나 어여쁘고 귀한지 모르겠다. 내 딸도 아들도 행복하고 안전한 세상이면 좋겠다. 세상의 반이 남자, 반이 여자라고 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해서 인류가 존속되어왔다. 엄마와 딸, 누나와 여동생, 그리고 아내와 내 여자 지인들이 안전해야 아빠와 아들,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남편과 남자 지인들도 안심할 수 있다. 서로의 안전이 곧 서로의 행복이다. 나의 이 당차고 순수한 여제자들과 딸이 사회적 차별을 인지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뜻과 역량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나는 힘쓸 것이다. 내 딸이 여고생이 되었을 때는 정말로 남녀차별이라는 단어가 교과서에 나오는 구시대적인 발상이 되도록 공부하고 실천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하여 남자와 여자를 떠나 그저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온전히 존중하는 그런 상식적이고도 이상적인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 언젠가 화자의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깊이 공감한 시가 있어 나눈다.
나는 내가 모든 학생인 그런 학교를 세울 수 있지. 쉰 살의 나와 예순 살의 내가 고무줄 양끝을 잡고, 열 살의 내가 고무줄 뛰기 하는 그런 학교. 이를테면 말이야. 지금의 내가 기저귀 찬 나에게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세요 말을 가르칠 수도 있고, 여중생인 나에게 생리대를 바르게 착용하는 법도 가르칠 수 있을거야. 어쩌면 열 살인 내가 예순 살인 나에게 인생이란 하고 근엄하게 가르칠 수 있을지도 몰라. 또, 이를테면 말이야, 나는 또 내가 모두 등장인물인 그런 소설도 지을 수 있지. 실연당하고 미친 듯이 농약을 구해온 열아홉 살 나와 네가 싫어 그랬다고 우리집 담을 도끼로 부수던 남자를 바라보는 스무 살의 내가 함께 나오는 그런 소설도 지을 수 있을 거야. 이런 소설은 어때? 열 살의 나와 예순 살의 나에게 겸상으로 우리 엄마가 밥상 차려주는 그런 소설. 결혼 전의 내가 공원에 앉은 지금 나의 뺨을 때리고, 일흔 살의 내가 뺨맞은 나를 위로해주는 그런 소설 말이야.
(중략)
한밤 내내 나는 나에게서 불을 쬐고 앉아 있었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에게 안겨 젖 빠는
가장 어린 나에게서 오오래 불을 쬐었다
일흔 살 먹은 나의 껍질뿐인 젖무덤을 더듬기도 했다
보름달 아래 겨울 가출이 아주 따뜻했다
식어가는 화로 하나 껴안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