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말

황인숙, <말의 힘>

by 옥돌의 지혜

대체로 다들 그렇겠지만 나도 말에 민감하다.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쉽게 상처받기도 했다. 중학생 때부터 남에게 듣고서 아주 기분 좋은 말은 내 보물 노트에 따로 메모하기도 했었다. 그곳에 기록한 말들은 기록하지 않은 말들보다 더 오래오래 내 마음에 남아 떠올릴 때마다 나를 흐뭇하게 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도 조심히 뱉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하지만 말수도 많고 감정을 잘 감추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말실수가 잦다. 매일 밤마다 잠자리에 누워 오늘 뱉은 말들을 후회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말을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어느 정도냐면 다른 사람을 만나러 나가거나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제 입을 지켜주세요' 잠시 기도할 정도이다.


국문학도가 된 이후에는 더욱 말을 곱게 하려고 노력했고, 여고 교사가 된 이후에는 더욱 여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말하려고 신경써왔다. 그래서 살면서 '원래 말을 그렇게 하느냐'며 신기해하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누군가는 너무 가식적이라고 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딱 국어선생님스럽다고 여기기도 한다. 나는 내가 들었을 때 기분 좋았던 말들을 마음에 잘 담아두었다가 나도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말들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내가 느꼈던 그 좋은 기분을 그 사람도 느끼기를 바라면서. 대학을 졸업 직전까지 단 한번도 선생님이 되기를 꿈꾼 적이 없었는데도, 어려서부터 선생님들이 하는 말씀은 참 귀담아 들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해주신 칭찬을 이십 대 후반에 임용 공부를 하는 스터디플래너에 써놓고 공부하다 지칠 때마다 그 말을 돌아보며 힘을 내기도 했다.


나처럼 선생님 말이라면 뭐든 소중히 여기는 학생들이 있을까봐 나도 오래 마음에 남을 칭찬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많은 날 내 말로 학생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괴로워했다. 그때마다 교사인 친구가 '**야, 그 애가 만나는 선생님이 너 하나냐? 살면서 백 명도 넘는 선생님을 만나니까 너가 그 아이에게 절대적인 것처럼 생각하지마. 너 아니면 또 다른 선생님한테 좋은 영향 받을거야.'라며 위로해준 말을 떠올리며 애써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명백하게 내가 상처줬다고 생각하면 가능한 빨리 아이들에게 공개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사과하려고 한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특히 학생에게 상처주는 것이 두렵다. 내 말이 선생님의 말인 것이 늘 무겁게 느껴진다. 아무튼 이렇게 말의 '어'와 '아'의 다름에도 늘 신경쓰며 가능하면 '좋은 말'을 하고 살려는 나에게 읽을 때마다 기분 좋아지게 하는 시가 한 편 있다.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황인숙, <말의 힘>


이 시는 특히 낭독할 때 묘미가 있다. 학생들에게 수업 시작할 때 읽어준 뒤, 돌아가면서 좋아하는 말을 하나씩 말해보자고 한다. 좋아하는 단어들을 말하고 나면 다들 얼굴이 밝아져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우리는 또 오늘의 국어 수업을 시작한다.


오랜만에 시를 읽으며 나도 우연히 마주치면 반가운 좋아하는 말들을 적어본다. '맑다, 순수하다, 정직하다, 담백하다, 백석, 크림라떼, 연둣빛, 해사하다, 도서관, 모네, 산책, 옹알이, 미소, 초승달, 집, 포근하다, 정겹다, 기대, 선물, 여유, 편지, 엄마, 노래, 불빛, 설렘, 베이지, 여행'. 단어 하나하나 적으면서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다른 사람에게 들어 오랫동안 기분 좋았던 말들을 생각해본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람이야', '너 같은 사람이 교사가 되는 것이 나라의 미래를 위하는 일이다', '제가 12년간 만난 선생님 중 선생님이 제일 좋았어요', '너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우리 반장은 참 눈이 맑고 똘망똘망해', '너 같은 사람 처음봤어', '선생님이 저희 아이 담임이셨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교생선생님이 나중에 우리 학교 선생님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제 이상형이세요', '너랑 처음부터 친해지고 싶었어', '예뻐요', '엄청 복 많이 받으실 거예요', '나는 엄마를 닮고 싶어', 그리고 '사랑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자주 쓰는 좋아하는 말들도 떠올려본다. '너의 벗, 애정하는, 사랑하는, 멋지다, 특별하다, 고마워, 잘 어울린다, 너의 그런 점이 참 좋아, 할 수 있어, 괜찮아, 대단하다'.


이런 글 자주 써야겠다. 글을 쓰면서 내내 기분이 좋군. 우리 학생들과도 이런 치유되는 글쓰기 같이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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