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할 줄 아는 사람,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by 옥돌의 지혜

금요일 저녁에 오랫동안 기다려온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을 보았다. 만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극장에서 보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극장에 가는 것도 온 가족이 다 같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여의찮아 우리 네 식구끼리 거실에 앉아 티브이로 보게 되었다. 그동안 이제 다섯 살이 된 첫째 딸 봄이와 만화 영화 한 편을 끝까지 본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본 <토이스토리3>인데, 그것도 봄이가 후반부에 나오는 악역이 무섭다며 꺼달라고 해서 결국 끝까지 보지 못했다. 이번 영화는 과연 끝까지 볼 수 있을 것인가 걱정하며 <소울> 관람을 시작했다. 이미 극장에서 워낙 호평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기대되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소울>은 처음으로 우리 네 식구가 (그렇다, 8개월 가을이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거실에서 놀았다) 함께 끝까지 본 만화 영화가 되었다.


<소울>을 보며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이 들었지만, 특히 내 마음에 크게 와 닿은 것은 '감동하는 힘'이었다. 떨어진 꽃잎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와아' 하고 감탄할 줄 아는 능력. 우리 아이들이 꼭 그렇게 소소한 아름다움에도 지나치지 않고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중학생 때 학교 전체에서 EQ검사를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시험 성적은 우수하지 않았지만 감수성 검사에서 손에 꼽히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어린 나는 뭔가 내가 감수성이 높다는 것이 참 좋은 일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잘 웃고 잘 우는 스스로가 제법 괜찮게 느껴졌다.


대학에서 국문학도가 된 이후에 소설과 시를 본격적으로 읽으면서 세상 모든 아름다움과 슬픔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얼마 전 서재에서 대학생 때 시집에 적은 메모를 우연히 읽었는데 '정말 내가 이런 말을 적었다고?' 스스로 흠칫 놀랄 정도로 섬세한 이십 대를 보냈구나 싶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니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보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을 더 대우해준다고 느껴졌다.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어도 눈물 글썽하기보다는 담담하게 이겨내는 모습이 프로페셔널하게 여겨졌다. 직장 생활도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라 여기며 감성적으로 지내는 것이 아마추어처럼 보였다. 학교에서 만나는 동료 교사와 학생들에게 최대한 거리를 지키며 최소한의 할 일만 해내는 것이 상처 받지 않고 오랫동안 교직생활을 할 수 있는 팁이라고들 말했다. 그렇게 나는 단단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적당히 시니컬한 태도를 습득해온 것 같다.


영화를 본 다음 날 토요일, 친구와 함께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를 다녀왔다. 아이 둘을 남편에게 맡기고 친한 친구랑 커피 한 잔 마시러 나갈 수만 있다 해도 너무나 신나는 일인데, 세상에, 무려 '덕수궁'에서의 '미술과 문학전'이라니! 얼마나 좋을까 전날부터 마음이 설렜다. 그리고 나는 전시회를 보다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곳의 그림과 문학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전시관의 분위기는 내가 사랑하는 감성을 지녔고, 오래도록 함께 해온 친구와 이런 아름다운 것에 대해 나눌 수 있음이 감사하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내가 눈물이 터진 순간은 이 시 앞에 섰을 때였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똑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꼬 들려오는 탓이다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백석의 이 시 하나로 하루가 좋았던 날들이 있었다. 매일같이 문학을 읽고 눈물을 글썽이며 스스로 눈물이 메마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더 이상 시집을 즐겨 읽지도 않고, 뉴스를 보고도 지겨워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전시회에서 김환기의 그림과 백석의 시들이 특히 좋았다.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과 글을 보면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전시회는 화가들과 문학인들이 서로 어우러져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았던 기록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 시화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생 때 교과서에 실린 시들은 늘 따듯한 그림을 배경으로 했다. 그게 어린 내 눈에 너무 예뻐서 학년이 올라갈 때면 교과서를 버리지 않고 시화를 오려 따로 내 보물 파일에 모았었다. 그 파일에는 예쁜 엽서, 스티커, 교과서에서 오린 시화 등이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름답고 감성적인 것을 늘 동경해왔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그림을 보다 보니 스무 살에 모네 그림에 빠져 일 년간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에 가려고 프랑스로 여행 간 기억이 떠올랐다. 잘 알아보지 않고 떠난 바람에 지베르니가 문을 닫아 결국 보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파리에서 오르세와 오랑주리 등 미술관을 다니며 실컷 모네 그림을 보고 행복해했었다.


얼마 전 엄마와 대화 중 내 이십 대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이야기하다가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대학 도서관에 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었던 때를 떠올렸다. 고3 때는 입시 공부 때문에 읽고 싶은 책도 참아야 했는데, 새 도서관의 창가에 앉아 읽고 싶었던 책들을 원 없이 읽을 때의 그 기쁨과 충만함이 늘 마음에 있다. 지난 5년간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어쩔 수 없는 제약들로 나 하고픈 것들과 참 많이 멀어졌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만큼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갈급함과 애틋함이 더욱 커졌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는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찬양 가사 중에 '나의 평생에 단 한 가지 소원 주의 아름다우심 보며 사랑 노래하는 것'이란 노랫말이 있다. 인간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욕망도 많다. 내 마음에 드는 집도 갖고 싶고, 교사로서 인정도 받고 싶고, 아이들도 보란 듯이 키워내고 싶고, 언젠가 책도 쓰고 싶고, 강의도 하고 싶다. 그러나 그 모든 목표들을 이루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단 한 가지,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이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살아가고 싶다. 나와 다른 사람의 슬픔에 어린아이처럼 눈물 흘릴 줄 아는 말랑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내 아이들도 부디 그렇게 키우고 싶다. 세상에서 기대하는 비범하고 냉철한 위인보다는 평범하더라도 따듯하고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엄마로서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주었다며 자족할 것 같다. 글을 쓰는 이 순간, 냉장고에 붙어있는 모네의 그림엽서를 본다. 그리고 행복이 멀리 있지 않구나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