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장미와 가시>
내가 둘째를 가졌다고 알렸을 때 양가 부모님을 비롯해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은 모두 걱정했다. 다들 당연히 내가 원해서 가진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생겼으리라 짐작했다. 내가 너무나 원해서 둘째를 가졌다고 말하자 다들 의아해했다. 첫째 때 임신부터 육아까지 아주 힘들어하지 않았냐고, 어떻게 그걸 다시 할 생각을 했느냐고. 맞다. 나는 첫째를 갖자마자 임신성 갑상선 항진증으로 매일 열 번도 넘게 토를 했고, 손발이 떨려 서있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게다가 뱃속의 태아가 다운증후군 고위험군 판정을 받아 눈물로 기도하는 시간도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나의 심한 체력 저하와 우울감으로 간신히 육아휴직을 마쳤다. 그런 내가 첫째가 두 돌이 지나자 둘째 욕심이 생겼다. 돌이 지난 첫째를 보며 느끼는 기쁨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충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나도 이렇게 행복한데 둘은 얼마나 더 행복할까 싶었다. 이런저런 계산과 걱정은 저 멀리 미뤄두고, 그저 더 행복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무조건적인 믿음만 갖고 둘째를 가졌다. 다행히 둘째의 임신과 육아는 첫째 때보다는 훨씬 정상적이고 수월했다. 하지만 임신과 신생아 육아 기간이 코로나 팬데믹에 걸치면서 또 다른 불안감과 여러 제한적인 상황들을 만나야 했다. '아,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여전히 쉽지는 않는구나'하고 매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돌아가도 두 아이를 낳을 것 같다. 이 모든 고생을 또 반복한다고 할지라도 이 기쁨을 좇고 싶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왜 두 아이를 낳아서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할까 버거운 마음이 들 때마다 떠오르는 시가 한 편 있다.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었어
가시투성이의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라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이 잊을 수가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요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 하였네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김승희, <장미와 가시>
이 시는 내가 임용고시 준비를 할 때 스터디 플래너에 적어두고 많은 힘을 얻었던 시다. 교사가 된 후 고3 학생들에게 읽어주면 수업이 끝나고 찾아와 시의 제목을 되묻는 학생들도 있었다. 당시에는 공부하는 힘듦을 견딜 때 위로가 되는 시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을 키우며 이 시가 자주 떠오른다. 삶에서 무언가를 얻고자 고통을 견뎠을 때, 그 고통이 클수록 얻는 것의 기쁨 또한 컸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이토록 힘든 것을 보니 도대체 이 아이들이 주는 보람이 얼마나 크려고 이럴까 싶다. 두 사람을 나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온전히 쏟아부으며 키워내고 있다. 삶의 어떤 것도 다 도로 물릴 수 있었으나 아이들은 그럴 수 없다. 내가 맡은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크게 책임감을 요구한다. 내가 두 아이의 세계가 된다. 두렵고도 설레는 일이다. 삶은,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어쩌면 가시뿐일 수도, 결국은 장미일 수도, 또는 장미와 가시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내가 선택하고 내게 주어졌으니 정말 잘 감당해보려고 한다.
워킹맘으로 아이 둘을 키우며 3년 넘는 육아휴직을 해보니, 여자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사회적으로 참 여러 의미가 있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한다. 아이를 낳았으면 최소한 어릴 때라도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육아휴직을 오래 하면 관리자도 동료들도 반기지 않는다. 휴직 후 돌아오면 학부모들 사이에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교사는 실력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들린다. 아이를 낳는 것은 물론 개인의 선택이자 행복이지만, 나는 솔직히 사회에게 좀 서운하다. 결혼했더니 언제 아이 갖냐고 그렇게 참견이더니, 아이를 낳으니 또 언제 일하냐고 다그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나는 살면서 그 어느 시기보다 더 나의 모든 것을 쏟아가며 내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사회는 나를 그동안 멈춰있거나 오히려 퇴보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나의 오해 또는 자격지심일까.
나는 행복이 일과 가정의 균형에서 온다고 믿는다. 학교에서 교사인 나도 소중하지만 가정에서 아내, 엄마, 딸, 며느리인 나도 참 소중하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 못지않게 가정에서 내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것도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나 스스로 자꾸 그 마음을 되새기지 않으면 교사로서의 나의 노력만이 인정받는 것 같아 자꾸 일에 몸과 마음이 치우친다. 안 될 일이다. 내 두 아이에게 엄마는 나 하나다. 다시 한번 시구절을 떠올린다.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라고'. 나는 좋은 교사이자 좋은 엄마가 될 것이다. 엄마의 마음으로 애틋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내 아이들과의 적절한 거리를 지키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내 삶에 활짝 핀 장미꽃을 볼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열심히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