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으로 나는 얼마큼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남편이 용돈으로 하던 주식 종목이 대박 났다며 명품 가방 하나를 사주겠다고 했다.
"갑자기 웬 명품가방?"
의아하다는 듯 되묻기는 했지만 속으론 이게 웬 떡이냐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니, 당신 아이들 낳느라 고생도 했고, 올해 복직도 할 테니까."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 내 친구가 출산하고 난 뒤 친구 남편이 산후조리를 도와주신 장모님께 명품 가방을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또 며칠 전에는 친정엄마가 올말에 남동생 결혼식 할 때쯤 올케랑 내게 좋은 가방 하나씩 사주고 싶단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남편 마음에 내심 여윳돈이 생기면 아내인 내게 가장 먼저 명품 가방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 보다. 생활비로 산다면야 당연히 거절할 것을 남편 용돈으로 사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 기회를 놓칠 새라 다음 날부터 명품가방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평소에 백화점 브랜드에서 가방을 사기는 했지만 50만 원 이상의 가방을 산 적은 없었다. 명품에 큰 관심이 없다 보니 친구들이 좋은 가방을 든다고 할 때도 아 비싼가 보다 생각만 했지 대략 얼마 정도의 가격인지 알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결혼할 때 엄마가 가방 하나는 꼭 해주고 싶다며 아웃렛에 데려가 사준 백만 원짜리 페라가모 가방 하나가 있긴 한데 그 자리에서 급히 사느라 빨간 토트백을 샀더니 평소 잘 안 들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30대 명품백', '인기 명품백' 등의 키워드를 매일같이 검색하고 백화점에 두 번 방문해 실물들을 보며 깨달은 바가 있다. 세상에는 루이뷔통 외에도 정말 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있으며, 친구들이 평소 들고 다니던 가방들의 대부분이 명품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명품 가방은 확실히 고급지고 예뻐 보였다. 하나를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예쁜 가방이 너무 많았다. 마지막까지 구찌 홀스백 스몰과 루이뷔통 네오노에를 고민했다. 구찌 가방은 작은 크로스백이라 당장 아이들 등하원이나 나들이를 다닐 때 기저귀 가방과 함께 같이 잘 들 것 같았다. 루이뷔통 가방은 제법 크고 모양이 적당해서 직장에 출퇴근할 때 잘 들게 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당장 더 잘 들 것 같은 구찌 가방을 샀다. 기우와 달리 명품관 직원은 매우 친근하게 구매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한동안 신나게 가방을 메고 다니고 친구들에게도 실컷 자랑을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비교 끝에 사지 않은 다른 가방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렸다. 매일 인터넷으로 그 가방을 구경하고, 미국에 사는 남동생에게 미국 가격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리고 가방을 구경하려고 줄을 설 때 내 앞에 서있던 여자가 매고 있었던 디올 미차(디올 트윌리를 미차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매일 생각이 났다. 와, 이런 강렬한 그리움은 남편이랑 연애할 때 이후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뭔가 비정상적인 열망이라고 느껴졌다.
이 무시무시한 욕망을 털어내려고 내가 제일 먼저 실행한 것은 재테크 책을 찾아 읽는 것이었다. 지금 명품 200만 원짜리 구매를 참고 투자하면 10년 뒤 2000만 원이 된단다. 그다음으로는 미니멀리즘 카페에 들렀다. 명품도 5년만 지나면 유행과 취향에서 멀어진단다. 그래, 내 옷장에 있는 저 많은 가방들도 한때 내가 강렬히 원하던 것들이었지만 지금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지 않나. 끝으로 남편에게 선포했다. "여보, 나 우리 집 장만할 때까지 더 이상의 명품은 없어! 알겠지? 나 잘 말려야 해!" 남편은 귀엽다는 듯(?) 웃으며 "당신 꼭 집 사겠네~ 파이팅!"이라고 말했다.
첫 명품 가방을 가져보니 또 다른 명품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명품 브랜드들을 알고 나니 길을 걷다가도 사람들이 든 명품들만 눈에 보인다. 아마 나중에 집을 사면 더 좋은 동네와 넓은 평수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겠지. 아, 이 욕망 덩어리여. 이상은 나누는 삶에 있으나 현실은 하나라도 더 소유하고 싶어 몸부림치는 내 모습이 씁쓸하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