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한순간이라도독립적인 인간이었나
'독립'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됨'이라고 쓰여있다. 나에게는 이 말이 '다른 것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답게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음'으로 해석된다. 무엇으로부터의 독립하느냐에 따라 단어의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나는 '타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한다. 나 역시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내가 원하는 내 모습대로 살아가고 싶다. 내가 이토록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큰 것은 내가 그만큼 다른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내 부모님은 예의와 배려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는데, 학교도 다니기 이전인 어린 시절에 손님보다 숟가락을 먼저 들었다가 크게 혼이 났던 기억이 있을 정도다. 부모님의 엄격한 훈육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 성향이 더해져서 나는 긍정적으로는 남을 잘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부정적으로는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었다. 애써 나답게 살자고 다짐하지 않으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내 모습으로 살아가기 쉽다. 특히 교사를 직업으로 삼은 이후로는 더더욱 학생들과 학부모, 동료 교사와 사회로부터 '교사 다움'을 엄청 요구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가족이 아닌 타인들은 나와 평생 계속 보는 것이 아니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님이다.
얼마 전 엄마와 한바탕 대거리가 있었다. 집에서 엄마와 점심을 함께 먹으며 내 친구들 근황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그러게 너도 로스쿨을 갔어야 하는데..." 하셨다. 우리 엄마는 내가 교사가 되는 것을 늘 아쉽게 생각하셨다. 로스쿨에 가서 법조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셨다. 로스쿨은 아무나 가는 곳도 아니거니와 법조인은 그 분야에 아무 뜻이 없는 내가 애매하게 공부해서 될 직업도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가까운 친구들이 공부를 잘해서 행시나 사시를 합격하거나 로스쿨을 졸업해 법조인이 되어 잘 지내고 있다. 그렇게 시험 합격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대기업에 취업해 나보다 두세 배의 연봉을 받는다. 엄마 눈에는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으로 더 대접받고 부유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니 한 번씩 내가 교사인 게 새삼 아쉬운 것 같다.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날, 나는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이 직업을 선택하면 나 개인적으로는 행복과 보람이 있게 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동안 내 뒷바라지를 해오신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크게 호강시켜드리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지금 생각해도 이 얼마나 착한 딸인가. 저나 잘 살 것이지.) 그러나 내가 행복해야 부모님도 행복하다는 믿음을 갖고 교사의 길을 준비했다. 교사가 될 생각이 없을 때는 교사되기가 이렇게 힘든지, 교직생활에 이렇게 어려움이 많은지 미처 몰랐다. 나름대로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운이 좋게 교사가 되었다. 지금도 그 행운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교사 동기들은 그들이 교사인 것에 대해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남편도 엄청 자랑스러워한다고 종종 말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교사인 것에 대해 가족들이 아쉽게 생각하거나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늘 서운하고 속상하다. 그동안 엄마가 로스쿨 이야기를 한 번씩 꺼낼 때마다 엄마의 아쉬운 마음을 알기에 그냥 못 들은 척하고 흘려 넘겼다.
그런데 육아휴직으로 가뜩이나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 나에게 엄마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너 그러게 내가 로스쿨 가라고 했을 때 고민이라도 해봤으면 좀 좋니. 너는 왜 애가 꿈이 그렇게 소박해서 교사 따위에 만족하고 주저앉니. 이렇게 빨리 결혼하고 애 낳고 하지 않았으면 너도 네 친구들 못지않게 큰 일 했을 애인데." 한 번도 이렇게 직접적인 비교를 엄마 입으로 들은 적이 없었는데 너무 상처가 되었다.
순간 울컥한 나는 울먹거리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엄마 딸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나 되게 힘들게 교사도 간신히 되었어. 남들은 다 교사 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왜 엄마만 아직도 내가 부족하대. 왜 아쉽대. 엄마의 그런 과대평가 나 하나도 안 고마워. 지금 이미 교사 된 지 5년에 애 둘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하는 의도가 뭐예요. 나는 철든 이후로 한 번도 입 밖으로 내 부모 다른 부모랑 비교해본 적 없는데 엄마는 부모가 돼서 왜 자식한테 함부로 말해. 나는 비교할 줄 몰라서 아무 말도 안 하는 줄 아세요? 나도 다른 부모가 얼마나 자식들 지원 많이 하는지 비교해봐? 나 학자금 대출 빚 들고 결혼했어. 엄마가 나 로스쿨 다녔으면 한 학기 등록금이라도 보태줬을 사람이에요? 나는 내 자식이 나만큼만 잘 커주면 바랄 게 없어. 그런데 왜 엄마는 나한테 만족을 못하고 항상 아쉬운 자식 취급을 해? 엄마 그럴 때마다 나 너무 서운하고 속상해."
엄마와 대화를 마치고 혼자 방에 들어가 엉엉 울었다. 평생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려고 노력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지금 내 모습이 부모에게 아쉽게 느껴진다니 내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고 허탈했다. 그래서 나도 아픈 말로 엄마에게 상처를 줬다. 그 후유증이 며칠을 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아직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이 안 되었구나. 경제적인 독립뿐만 아니라 심리적 독립도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아직도 내가 이토록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하는구나. 지금 내 삶의 모습에 나 스스로 만족하면 그걸로 됐다. 나에 대해 부모님이 아쉬움을 느끼시면 그건 부모님이 감당해야 하는 부모님의 몫이다. 내가 정말 괜찮다면 부모님의 아쉬움도 '아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서운하네요'하며 건강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부모님의 생각과 기대로부터 나를 지키도록 노력해야겠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님께 상처 받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식은 평생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온전한 독립을 이룰 수 있도록 애쓰려 한다. 그래야 나도 독립한 한 사람으로서 내 자식들에게 건강한 부모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말이지 나는 나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