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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Nov 24. 2021

다들 나한테 왜 이래 정말

사람들이 내게 선을 넘는 날

  어제 학교에서 내 업무에 실수가 있었다. 하필 전교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드러나는 실수였다.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그리고 우울한 나를 보며 한 번 더 우울해졌다. '나는 왜 항상 이렇게 완벽하지 못하고 꼭 하나의 실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에서 '큰 업무 하면서 작은 실수 하나쯤 있을 수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나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할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가벼운 일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고 싶은데 작은 일에도 늘 온 무게를 실어 나를 자책했다. 그게 나인데. 작은 기쁨에도 크게 기뻐하고 작은 슬픔에도 크게 슬퍼하는 사람. 변함없는 나의 어떤 모습을 이제 받아들이고 '그래, 내 성격이 이런 부분은 좀 불편하지만 덕분에 이런 좋은 점이 있잖아'하고 균형 잡힌 생각과 마음을 유지하고 싶은데 자꾸만 나의 부정적인 면에 매몰되는 게 속상하다. 이십 대의 나는 같은 상황도 훨씬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은데 요즘의 나는 모든 것을 애써 부정적으로 보려는 사람같이 느껴진다. 투덜투덜. 복직해서 두 아이를 키우는 현재 상황이 버겁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점점 더 나의 부정적인 태도가 굳어져가는 것 같아 짜증도 난다. 아무튼 어제는 온갖 어두운 생각이 나를 뒤덮은 날이었다.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학교 업무가 잘 안 맞는 거 사람 같아. 실수도 잦고. 오늘 처음으로 온라인 수업에 동영상을 올렸는데 다른 선생님이 만든 화려한 영상에 비해 내 영상이 너무 초라하더라. 내 수업 영상을 보니 내 말이 때때로 너무 빠르고 비염 때문에 코맹맹이 소리도 심하더라고. 나는 교사 관두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나는 교사 아니면 잘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거 같아."

  그리고 오늘 또 출근을 했다. 그래도 한숨 푹 자고 나니 어제의 감정은 희미해지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어제 한 업무적 실수는 수습했고, 온라인 수업 영상도 개선해서 다시 올렸다. 그렇게 학교에서 하루를 보내며 교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내 부장님이 웬 박스를 들고 찾아오셨다. 

"부장님, 이게 뭐예요? 제거예요?"

"응 맞아, 전에 옥돌샘이 지나가는 말로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이 무섭다고 했잖아. 옥돌샘이 이번 겨울은 따듯하게 보냈으면 좋겠어서 내가 핫팩 한 박스 주문했어. 샘은 뭐든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나눠주니까 이건 절대 나눠주지 말고 혼자만 쓰면 좋겠어요."

".... 부장님, 저 감동받았어요."

세상에. 어제의 실수로 자책하고 있을 나를 이런 방식으로 위로하시다니. 이런 선배도 있다니. 이렇게 선을 넘어 감동을 주는 사람이 있구나.

그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곧이어 교무실로 학생들이 찾아왔다.

"응? 너네 오늘 온라인 수업인데 학교에 왜 왔어?" 내가 물었다.

"선생님, 저 선생님이 학교에 오신 이후로 국어수업이 재밌어졌어요. 실제로 이번 학기에 국어 성적도 올랐고요. 선생님께 전부터 감사한 마음 표현하고 싶었어서 오늘 편지를 써왔어요."

"야, 정말 나한테 왜 이래. 너무 고마워. 선생님이 학교 오자마자 어려운 내용 가르쳐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힘이 된다."

  집에 오자마자 퇴근한 남편을 붙들고 자랑을 했다. 

"여보, 내가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 

잔뜩 신이 나서 쫑알대는 나를 보고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 어제만 해도 교사 잘 안 맞는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말이야. 이 마약 같은 가시나들(학생들)이 꼭 이렇게 한 번씩 사람한테 감동을 줘서 또 버티게 한다니까. 이뻐 죽겠어."

  오늘은 둘째가 열이 38도 넘게 올라 하원하자마자 병원에 다녀왔다. 열이 나서 보채는 둘째의 짜증을 받아주며 어르고 달래다 진이 빠졌다. 역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다 괜찮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위로하시는 것 같다.'봐라, 이렇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렇게 네가 사랑받고 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 같다. 사람 사이에 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적당히'를 스스로 강조하는 내게 한 번씩 훅 선을 넘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이런 사이 아닌데 내가 생각한 선을 훨씬 넘어 사랑과 감동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이렇게 때때로 선을 넘는 용기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또 한 번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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