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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one Jul 19. 2022

6 |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


I. 증오와 복수의 감정


인생은 비극이다. 현생의 결과는 죽음이다. 죽음으로부터 저항하려 하지만 불가능하다. 과정도 마찬가지다. 절망과 노화, 질병이란 우리가 만든 것 아니다. 불의(In-justice)로 인한 피해, 정의롭게 살았지만 이유도 없이 닥친 고통, 속임수와 꾀임에 넘어간 결과를 마주한다. 이렇게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마음이 덜 할 것이다. 나의 잘못된 판단과 악의적 행동으로부터 고통이 찾아오기도 한다. 행동을 바꾼다면 비극을 덜어낼 수 있겠지만 인간의 통제력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그때마다 인생에 저주를 퍼붓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나아가, 이 세상이 창조된 설계의 동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왜 선량한 사람이 끔찍한 고통을 받아야하는 것일까? 이 세계는 원래 이렇게 잔악하고 살벌한 곳인가? 인간은 왜 고통속에 죽어가야만하는 것일까?



메피스토펠레스 : 소생은 항상 부정(不定)을 일삼는 정령. 생성하는 모든 것은 멸망하기 마련이니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닐는지. 그러니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 편이 낫겠지요. 당신들이 죄악이라느니, 파괴라느니, 요컨대 악이라 칭하는 모든 것이 제 원래의 본성이랍니다. | 『파우스트, Faust』 괴테(Goethe)



괴테는 증오의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증오가 인간의 파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인 것은 사실이다. 만약 당신이 종교가 있다면 창조자의 무관심과 부당한 처사에 절망하고 절규할 것이다. 에덴 동산으로부터의 추방 직후, 첫 사건이 바로 살인이었다. 단순한 살인이 아닌 형제 살해였다. 무고하고 선한 사람에게 극단적인 수심과 질투를 갖고 고의로 저지른 살인이었다. 고통과 분노는 이내 세상과 창조주를 향한다. 따라서 카인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상처를 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Bible, Genesis 4』 살인은 쉽게 일어난다. 우리는 왜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가? 정곡을 찌른 진실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삶의 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세상을 향해 분노하지 않는 길은 정말 없는 것인가?



II. 복수할 것인가? 변화할 것인가?



세계로부터 끔찍하고 잔인한 행위를 당하고도 용서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비겁한 선택이 아닐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과거를 딛고 선한 사람으로 마치 초인과 같이 살아간다. 임상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사례가 많다. 첫째, 어린 나이에 가족에게 버림받고 마약과 폭력에 빠졌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끊어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환경의 청년들에게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지원하는데 매진한다. 과거의 가족을 초대해 함께 축제를 즐기고 과거와 화해하고 단절하였다. 둘째, 실제로 어렸을 때 학대를 당한 사람의 대부분은 자녀를 학대하지 않았다. 즉, 조상의 죄악을 답습하지 않은 것이다. 간단한 산수로도 증명된다. 한 부모가 학대를 시작하고 그 죄를 답습하기 시작하면 세대가 내려갈수록 아동 학대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대가 내려갈수록 학대는 줄어들었으며, 학대를 방지하는 조치들이 강화되었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선이 악을 지배한다는 증거인 셈이다.


III.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위대한 정신은 현실을 탓하지 않는다. 삶을 혐오하지도 않고 신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지도 아래 사회를 조직하고 제국을 세웠다. 삶이 풍요로워지고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들뜬 채, 오만과 교만에 빠지고 타락하고 도덕적 의무를 망각한 채 약속을 져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댓가로 히브리 민족을 벌한다. 히브리인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말씀에 충실하며 다시 국가를 일으켜세운다. 전보다 더욱 진보하고 훌륭해진다. 이런 흐름을 반복하여 삶을 살아왔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타락의 씨앗을 눈치채지 못하고 무너져내린다. 유별난 책임감은 불평하고 원한과 복수심에 매몰되는 것보다는 낫다. 삶이 고통이라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고 그 자체로 비극이고 비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생각해볼 것이 있다.



IV. 삶을 깨끗이 정리하라.



이는 직장에서의 불성실한 모습, 지인과의 소통, 잘못된 습관, 옳지 않은 행동을 다시 정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것들이 있다면 당장 중단하라. 만약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면 문화와 전통을 무시하지 말라. 인생은 짧지만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지혜는 유익한 것이 내재되어 있다. 자본주의나 정치권을 탓하지 말라. 당신의 적들을 비난하지 말라. 겸손하라. 나약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입에도 올리지 말며 가정을 평화롭게 꾸릴 수 없으면서 함부로 세상을 평가하지 말라. 거짓으로 채우지 말라.



그렇게 하여도 피할 수 없는 비극이 존재할 것이지만 조금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향한 분노가 있더라도 점차 사라질 것이며 맑아진 정신은 삶의 좋은 면을 발견할 것이다. 강인한 정신이 남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세상의 모든 선함을 지키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세상은 더 이상 사악한 곳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부터 달라지려고 계속 노력한다면 인간의 삶에서 비극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타락한 지구에 영원한 천국을 세울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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