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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one Jul 19. 2022

기적이 보이지 않는 이유

『The Existence of God』 Richard Swinburne


영국에 '캠브리지'라는 촌구석의 마을이 있다. 마을에는 사과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밑에서 한 젊은이가 졸고 있었다. 이를 본 신이 그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나무에 숨결을 불어 넣어 사과 하나를 젊은이 머리로 떨어뜨렸다. 그런데 난데없이 머리에 혹이 생긴 이 젊은이는 쳐다보라는 하늘은 쳐다보지 않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정신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실패였다.



신은 다시 한번 시도하기로 했다. 시간을 왕복할 수 있는 신은 미래에서 범한 실패를 기억하고, 이번엔 1700년 전으로 돌아가 유대 지방의 한 처녀를 선택했다. 기적으로 아기가 생긴 것이다. 그때부터 인간들은 신이 있음을 확실하게 믿게 되었다.



이것은 종교철학가 리차드 스윈번(Richard Swinburne)교수의 기적에 관한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웃자고 만들어 본 이야기다.



스윈번 교수의 이론을 요점만 정리하자면 신이 자기의 존재를 보이고 싶어 할 때,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자연 현상을 사용할 수 없다. 그게 신의 의지인지, 자연의 법칙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신이 존재하고 자신의 존재나 의지를 보이고자 한다면 반드시 잠시 자연법을 멈추고 그 틈으로 자신의 흔적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게 우리가 보통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신이 존재한다면서 왜 지금은 동정녀 마리아 사건 같은 기적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없는가? 답은 기적은 자주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기적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며 자연법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적은 정말 드물게만 일어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있을 동안 기적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 수도 있다.



결국 신이 있다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기적은 신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가르킨다. 따라서 만일 동정녀 마리아 같은 기적의 스토리가 전해진다면, 두 개의 가능성 밖에 없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자연법만이 세계를 움직이고 그 얘기는 거짓인 것이다. 또는 신은 존재하며 그가 잠시 자연법을 정지시켰고, 그 얘기는 참인 것이다. 논리적으로 어느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의 주변에 기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기적은 없으며 따라서 신은 없다라고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연법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시스템의 존재를 들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이 두 시스템은 완전히 독립된 두 개의 다른 논리 체계다. 형이상학과 귀납적 추론/과학적 경험은 별 개의 인식 체계다. 그리고 스피노자를 포함한 수 많은 철학자와 신학자 그리고 과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자연법은 신이 세계에 심어놓은 질서라고 보는 입장까지 가면 자연법의 존재는 오히려 신의 존재를 가르키는 간접적인 지표마저 되어버린다.



다시 올라가자면, 졸다가 머리에 혹을 달게 된 젊은이는 아이작 뉴튼(Isaac Newton)이고, 그가 쓴 것은 그 유명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책이다. 그 '전설에 지나지 않는' 사과 나무는 여전히 캠브리지 대학 캠퍼스 안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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