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남을 밟고 올라서야 우월함을 느낀다」
내 좌우명이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남을 밟아야 한다. 어느 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는 노령의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꼬깃한 흰 봉투를 꺼내더니, 구세군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냄비에 돈을 넣었다. 나는 그 할머니의 행동을 보고, 어째서 저런 생산성도 없이 멍청한 일을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조롱했다. 그리고 그 날의 일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양 떠들어 댔다. 그리고 웃었다. 친구들도 따라 웃었다. 나의 세계는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웃는 것이 당연시 되는 세상이다. 내 삶의 반 이상이 그래왔고, 앞으로 있을 60년 이상의 내 남은 삶도 그럴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한 구석에 언젠가부터 나약한 모습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나이 탓 이라고 하기에는 어렸을 적부터 독하게 살기위해 날 지워 내려했던 노력들이 떠오른다. 나는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친구들과 친구들의 부모님과 함께 놀이공원에 놀러갔었다. 우리는 모든 근심걱정 ㅡ근심이라 해봤자, 매일 쓰는 일기 정도였다ㅡ을 뒤로하고, 누구보다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해는 저물고, 어른들도 슬슬 지쳐 갈 무렵 먼발치에서 부메랑을 메고 팔고 있는 행상을 보았다. 나와 친구들은 어머니들을 졸라, 각자가 원하는 부메랑을 사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부메랑을 날리다 부러지는 일이 생겼다. 그 친구는 실망한 채로 부메랑 앞에서 한 참을 서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친구가 안쓰러운 나머지, 내 부메랑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환한 미소로 내게 감사인사를 대신했다. 아마 내가 살면서 가장 가슴이 따듯해지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우리는 해가 기울고, 폐장 방송이 나오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 까지는 아주 좋았다. 모두 같은 봉고차를 타고 웃고 떠들며, 오늘의 추억을 되짚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집으로 들어 온 순간 발생했다. 내가 집에 도착하고, 간단히 세면세족을 한 뒤, 자기위해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어머니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내게 ‘지 것도 못 챙겨 먹는 너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라고 말씀을 주셨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 어머님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말도 못하는 놈이라며’ 나를 한껏 비난 하셨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울고 말았다.
(다음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