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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더하기 Nov 14. 2019

잔소리하지 말 걸

남편의 눈으로 본 나의 자서전


  아내와 오랜만에 데이트했다. 무엇을 할까 고민 없이 그동안 별러왔던 영화를 보았다. 보헤미안 랩소디. 대학 시절부터 퀸의 노래를 즐겨듣던 아내는 영화에 흠뻑 빠졌다. 나도 덩달아 영화에 빠져들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우리는 영화의 여운을 이야기했다. 자연스럽게 집안은 퀸의 노래로 가득 찼다.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를 듣는 나에게 아내는 삐쭉 웃으며 말한다.

 “언제는 악마의 노래라고 듣지 말라고 하더니!”

 ‘내가 언제?’라고 답하려던 순간 그 말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교회 집사님과 부모님 사이에서 쑥덕쑥덕 이야기가 오가더니 소개팅을 하란다. 집사님의 조카인데, 간호과에 재학 중인 참한 여대생이라고. 말이 소개팅이지 맞선자리나 다름없다. 이제 군대에서 제대한 복학생은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몇 차례 거절했지만, 집사님은 집요했다. 추석 명절을 보내기 위해 부모님 댁에 머물다 꼼짝없이 잡혔다. 그렇게 만난 여대생은 그다지 참해 보이진 않았다. 너풀거리는 보라색 블라우스에 나팔 청바지, 보라색 구두 그리고 당당한 표정. 자신도 이모의 끈질긴 설득으로 이 자리에 왔노라 당돌히 말하면서도 연신 입술에 무엇을 바른다. 자신이 입술이 건조해서라며 부연설명을 하는 모습이 왠지 밉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교제를 시작하던 때, 참하지 않은 여대생은 자신의 친구와 같이 만나도 되는지 물었다. 아직 우리의 만남도 어색한데, 그녀의 친구까지 함께하는 자리는 살짝 긴장된다. 그런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만나자마자 노래방을 가잔다. 익숙한 듯 노래방 사장님께 특실을 달라고 한다. 특실에 들어선 그녀는 친구와 함께 테이블을 밀어 벽에 붙인다. 넓은 무대를 만들고 잔뜩 흥을 장전하더니 탬버린을 들고 나에게 다가온다. 엉거주춤 소파에 걸쳐진 나에게 탬버린을 쥐여 주며 그럼 한번 놀아보자고 잔뜩 신이나 말한다. 두 여자가 펼치는 광란의 무대에 로봇처럼 탬버린으로 박자를 맞춘다. 너는 왜 감상만 하냐는 핀잔에 어렵게 예약한 곡은 슬픈 발라드. 그녀들은 억지웃음으로 손뼉을 치며 가수라고 칭찬하더니 다시 나에게 노래를 권하진 않았다.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성격. 하루하루가 흥으로 가득 찬 그녀는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어깨를 들썩인다. 싫은 것은 하지 않고 좋은 것은 무섭도록 집착하는 그녀. 싫은 사람 앞에서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그녀가 일하던 커피숍에서는 그날 꽂힌 한 곡이 무한반복 될 때가 많다. 오늘의 선곡이 궁금해서 출근 도장을 찍는 손님도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와 다른 사람.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 왜 저럴까 싶을 때도 많았다. 가까워질수록 나의 잔소리는 늘어간다. 귀가 시간이 너무 늦는다, 남자친구들만 있는 술자리는 피해야 하지 않냐, 싫은 사람도 만날 줄 알아야 한다, 좀 무던하게 살아라. 그때 내가 했던 잔소리 중 하나. 악마의 노래이니 듣지 말아라. 장난스럽게 했던 말이지만, 아내가 된 그녀는 지금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      


  치매 병동의 간호사가 된 그녀는 고달픈 삼 교대 근무로 노래방에 다닐 여유가 없다. 할머니들과 가끔 병실에서 ‘찔레꽃’이나 ‘섬마을 선생님’을 부른다고 했다. 자녀의 면회가 뜸해 풀이 죽은 할머니도 자신과 ‘노란샤쓰의 사나이’를 한바탕 부르고 나면 다시 생기가 돈다며 자랑한다. 서열 관계가 엄한 간호사 세계에서 환자와 보호자의 불평과 요구에 치이고 나면 정작 본인은 풀이 죽어 있던 그녀. 삼 교대를 하면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으며 악착같이 버티더니, 그렇게 염원하던 심리상담사가 되었다.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고, 흥겨운 곳만 찾던 그녀는 없다. 오히려 더 힘든 사람을 만나고, 더 어려운 곳으로 간다. 좋아하는 공부도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방법만 찾아 한다. 안쓰러운 마음에 넉넉히 벌어다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면 아내는 오히려 내 어깨를 툭툭 친다. 금방 셔터맨을 만들어준다며 힘내자 한다.      


  이제는 노래방에 가면 아내보다 내가 더 신나게 논다. 퀸의 노래도 내가 더 실감 나게 따라부른다. 불편한 자리에 가게 될 때도 아내는 ‘뭐 어쩌겠어’라며 먼저 나선다. 가끔은 모난 돌처럼 이리저리 통통 튀며 구르던 그때의 그녀가 그립다. 문득 이리저리 깎이고 다듬어져 둥글둥글해진 아내를 느낄 때 미안해진다. 어차피 싫은 사람도 만나고 좋아하지 않는 일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인생, 그나마 어릴 때 마음대로 하라고 할 걸. 잔소리하지 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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