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수업] 개운한 퇴사의 심리학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후련했다.
찝찝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수십 번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항상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빠지면 팀이 힘들 텐데.'
'이 시기에 나가면 민폐 아닌가.'
'여기서 이만큼 해줬는데 나를 어떻게 볼까.'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나를 위해서 그만둔 거라서, 개운했다.
오래 상담을 하다 보면 이 장면을 종종 만난다.
퇴사뿐 아니다. 관계를 정리할 때, 부탁을 거절할 때, 오래 참아오던 것을 내려놓을 때.
어떤 사람은 결정 후에도 오래 괴로워하고, 어떤 사람은 놀라울 만큼 가볍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결정 앞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내가 이걸 그만두면 남은 사람들은 어떡하지.'
'이 사람이 서운해하면 어쩌지.'
'내가 여기서 빠지면 일이 안 돌아갈 텐데.'
전부 남 걱정이다.
정작 자기 몸이 망가지고 있는데, 자기 마음이 바닥나고 있는데, 먼저 떠오르는 건 남의 불편함이다.
이걸 책임감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르게 본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는 자기연민(Self-compassion)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다. 나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돌봄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태도다. 그런데 이 말을 남에게는 쉽게 하면서, 정작 자기에게는 절대 허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건강도, 정신력도, 시간도 전부 타인의 몫으로 내어준다.
자기를 소진시키면서까지 남을 배려하는 건, 배려가 아니다.
자기방임이다.
이 사람들은 대개 어릴 때부터 남의 감정을 살피며 자란 사람들이다. 눈치가 빠르고, 배려심이 깊고, 그래서 늘 피곤하다. 남의 불편은 참을 수 없지만, 자기 고통은 참을 수 있다고 믿는다
.
그래서 퇴사도 이직도 거절도 미룬다.
죄책감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서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책임감은 "내 역할을 다하겠다"는 마음이다.
죄책감은 "내가 나를 위한 선택을 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는 두려움이다.
책임감은 건강하다.
죄책감은 나를 가둔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자유를 '선택할 권리'이자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책임'으로 보았다. 나를 소진시키는 자리에 계속 남을지, 떠날지를 결정하는 것도 그 책임 중 하나다. 머무르는 것만이 책임이 아니다. 떠나는 것도 책임이다.
그런데 죄책감은 이 사실을 가린다. 내가 없으면 업무에 차질이 생길까 봐, 팀 분위기가 망가질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따뜻하지만, 그 따뜻함이 정작 나를 태우고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책임감이 아니다.
몸이 아픈데 출근하고, 마음이 떠났는데 자리를 지키고, 관계가 끝났는데 매달린다. 남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나쁜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워서다.
드라마 〈미생〉에서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은 패배자가 아니었다. 다른 삶을 선택하는 출발점에 선 사람들이었다. 회사가 나를 책임져 주지 않듯, 나도 내 인생을 회사에 전부 맡길 이유는 없다.
정말로 나를 위한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생각보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
내가 빠져도 팀은 돌아간다. 내가 떠나도 그 사람은 살아간다.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단단하다.
나를 위한 선택을 하고 나서 개운한 이유가 있다.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1순위에 놓았기 때문이다.
비행기 안전 안내에서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먼저 자기 마스크를 쓰고, 그다음에 옆 사람을 도우라고.
자기가 숨을 쉬어야 남도 도울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옆 사람 마스크부터 씌우려 한다.
그러다 쓰러진다.
나를 챙기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다.
내가 존재해야 관계도, 일도, 미래도 존재할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나를 진짜로 아끼는 사람은 내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네가 안 힘든 게 제일 중요해."
이 투박한 한마디 속에 답이 있다.
죄책감이 올라올 때, 한 번만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이건 책임감인가, 두려움인가.
내가 진짜 지키고 싶은 건 이 자리인가, 아니면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인가.
나를 위하는 선택이 타인에게는 잠시의 불편함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타인이 감당할 몫이다.
내가 감당할 유일한 몫은 내 마음이 다시 개운해지는 것, 그것뿐이다.
그리고 그 개운함은,
당신이 드디어 자기편이 되어준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