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더하는 공간 이야기 1.
우리 집에는 ‘엄마 사무실’이라고 불리는 방이 있다. 세 방 중에서 가장 좁고 어둡다. 그곳에는 많은 책과 자료, 교구 등이 가득 차 있다. 채 정리되지 못한 자료들은 박스에 담긴 채 한쪽 벽면에 위태롭게 쌓여 있다. 다른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책상은 눈치 없이 커서 문틀을 넘어서까지 삐죽 튀어나와 있다. 그래서 ‘엄마 사무실’은 문을 닫을 수 없다.
‘엄마 사무실’은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다. 상담과 강의를 생업으로 삼기 시작하고 일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집에서 업무를 보다 보면 쌓여있는 빨래, 먼지 쌓인 거실 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멋들어진 사무실을 알아보다가, 작은 원룸을 알아보았다. 이내 반지하 창고도 후보지에 올랐다. 함께 부동산을 헤매던 신랑은 점점 지쳐가고, 마냥 신이 나던 딸내미도 인제 그만 아무 데나 정하란다. 보증금에 임대료, 관리비까지 계산하다 보면 결국 제자리걸음이었다. 고심 끝에 방 하나를 사무실로 사용하기로 했다. 안 그래도 좁은 집이 더 좁아졌다. 귀여운 딸내미는 불평 한마디 없이 ‘엄마 사무실’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친구들에게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단단히 이른다.
사무실이 집에 있으니 외부 일정이 없으면 특별히 출근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식구들이 분주하게 집을 나서고 나면 눈곱도 제대로 떼지 않고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웬만하면 나오지 않는다. 출근이 없지만, 퇴근도 없다. 외부 일정을 마치고도 가방을 든 채로 사무실로 들어간다. 아내가 필요할 때, 엄마가 필요할 때만 잠깐 사무실 밖을 나가 일을 보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온다. 가족들은 내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아등바등하는 모습 때문인지 별다른 불평이 없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더 사무실에서 분주히 보낸다.
가끔은 사무실 들어가는 것이 싫을 때가 있다. 늘어져서 쉬고 싶다고도 생각하고, 오늘은 마음먹고 집안 대청소나 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진다. 어디 가서 월급을 받으면 이거보다 못할까 하는 생각도 한다. 불안정한 수입으로 가족에게 부담을 준다는 것이 괴롭다. 하지만 골방 같은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강의 요청도 제법 많아지고, 개인 상담을 의뢰해 오는 건수도 늘어간다. 그러한 성장을 가족들이 기뻐해 주는 것이 참 감사하다. 새벽 4~5시 즈음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깬 딸이 불이 켜진 ‘엄마 사무실’에 찾아와 눈 비비며 ‘엄마 파이팅’할 때, 목이 말라 깬 남편이 아직 안 자냐며 몸 상한다는 걱정의 말을 건넬 때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낀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스스로 격려하게 된다.
문이 닫히지 않는 사무실은 가족들의 사랑을 먹고 오늘도 꿈을 향해 불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