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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더하기 Jun 17. 2020

담백한 첫 문장 같은 사람

첫인상 이야기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두 달여 지난 5월 즈음 담임선생님에게 대차게 따귀를 맞았다. 숙제하지 않은 친구들이 한 명, 한 명 꿀밤을 맞다가 내 차례에 이르러 갑자기 일어난 일이다. 한쪽 뺨을 맞았을 뿐이었는데 코피가 났다. 부모님이 알게 되고 친척들이 항의했다. 궁지에 몰린 선생님이 내게 전화해 사과하시며 일단락이 되었다. 차후 듣게 된 선생님의 항변은 이랬다. 선생님은 내가 마음에 쏙 들어 눈여겨보고 있었단다. 선생님께 잘 보이려 애써 노력한 결과이다. 애쓰는 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선생님은 이런 나에게 실망감이 너무 컸다는 것이다. 지금도 실망했다는 이유로 얼굴을 때린 것에는 분이 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꾸며진 나의 모습을 보여줄수록 실망감이 커진다는 것은 그때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얼마 전 교육생으로서 만났던 강사님은 강의의 시작부터 친근한 말투로 교육생들을 사로잡았다. 단박에 유능한 강사임이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소탈한 웃음과 겸손한 태도로 모두를 팬으로 만들었다. 저런 강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강사님께 받은 연락처를 저장하자 연결된 앱을 통해 그분의 근황을 볼 수 있었다. 잦은 해외 봉사와 기부활동, 신실한 종교 생활까지. 강사뿐 아니라 사람으로서 매력적인 면모를 보게 되었다. 이후 강사님을 사석에서 뵙게 되었다. 강사로서의 조언을 해 주시는 것으로 알고 간 자리에서 오히려 강사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열변을 들었다. 시종일관 금전적인 이야기만 하시던 그분은 결국 네트워크 마케팅(다단계 판매)을 권유하셨다. 처음 보았던 소탈한 모습 때문에 충격이었다. 교육장에서 만난 것이 전부 임에도 그 사람의 전체를 아는 양 굴었다는 것에 씁쓸했다.


 인천에서 부천으로 이사하면서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되었다. 다행히도 이사한 아파트 아랫집 딸과 같은 유치원에 한 반이었다. 딸이 빨리 적응하고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아랫집 엄마와 친하게 지내며 집에도 자주 초대했다. 하지만 가끔 얼굴을 보게 되는 아랫집 아빠는 늘 뚱하여 나도 조심스러웠다. 수사관으로 일하고 있어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조심한다고 한다. 나도 무리하지 않고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했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가까워지더니 이제는 함께 해외여행도 가는 사이가 되었다. 누구의 아빠라고 부르던 호칭도 형부로 바뀌었다. 남편과 가끔 그분의 이야기를 나누며 정말 사람 진국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시작만 요란한 글에 실망하기도 하고,  문장이 어렵거나 평이해도 좋은 글을 많이 접한다는 작가 이은의 글을 읽으며 사람 역시 그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기 위해  모습을 아무리 꾸며대어도  것이 아니면 오래갈  없다. 상대의 실망은 커지기 마련이다. 오히려 만나느니만 못한 인간도 있다. 누구에게나 주제를 환기하는 담백한  문장 같은 모습으로 다가가는 사람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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