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원형 Oct 14. 2021

내 안에 깃든 자연, 자연 안에 깃든 나


바로 귓가에서 들리듯 하는 새소리에 잠이 깬다. 잠시 이곳이 어딜까 어리둥절했지만 놀랍지는 않다. 부연 빛이 스며드는 커튼을 걷으니 밖은 아침 해가 황금빛으로 찬란하다. 간밤에 내린 비로 바깥 공기는 온통 말갛고, 싱그럽게 가득하다. 뜨거운 한낮과는 달리 기분 좋게 서늘한 온도를 몸이 반긴다. 눈을 들어 만나는 풍경은 온통 짙푸른 초록이다. 돌돌거리며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저쪽 숲 너머로 경쾌하게 건너온다. 그저 행복하다. 그렇지만 왜 행복한지 딱히 설명할 길 없는 그런 행복감이다. 


어느 여름날, 숲 속에서 맞이했던 그 기억을 떠올리는 지금도 난 행복하다.우리와 대자연의 관계는 원초적이다. 대자연이 일깨우는 감정은 이미 우리 기억엔 잊혀져간 선사 시대에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니 흐릿하고 아득할 수밖에. 그렇지만 그 유년과 같은 시절의 이미 흐려진 기억일망정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는 기억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 흔적의 하나가 숲을 찾는 행위가 아닐까. 숲, 그곳은 내 고향이고 당신의 고향이다. 우리가 숲을 찾는 까닭은 그러니까 고향을 찾는 것과 같은 마음일 거다. 지친 마음에 위안을 얻고자 하는 그 마음.     


도시가 발달하면서 우리의 삶이 숲에서 점차 멀어지자 사람들은 숲을 자기 주변으로 끌어들였다. 그게 정원이고, 꽃밭이고 화분일 거다. 전망 좋은 집이라면 으레 녹지가 보이는 곳을 필수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전망은 온전히 잔디밭이거나 나무로 꽉꽉 찬 숲보다는 이왕이면 사바나처럼 풀밭에 더러더러 나무가 있는 풍경이라고 한다. 사바나 숲에 살던 기억이 여전히 우리 유전자 속에 남아있어 그런 풍경을 만날 때면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과 편안함을 느끼는 걸까? 내 몸 속에 있는 자연이 실재한 자연을 만났을 때 반응하는 것, 그 화학반응이 행복, 평온의 결과물을 생성하는 걸까?

정원은 고사하고 손바닥만 한 꽃밭조차 갖기 힘든 도시인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숲이다. 평지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산은 곧 숲을 의미한다. 서울은 세계 어느 대도시와 비교해도 으뜸가게 산이 많은 도시 가운데 하나다. 휴일이면 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 웬만한 산마다 있는 둘레길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심리학자들은 녹지와 사바나 같은 자연환경의 한 장면만 봐도 사람들에게 내재된 분노나 두려움이 줄어들고, 평온한 느낌으로 충만해진다는 보고서를 내 놓기도 했다. 수술환자 가운데 나무를 내다볼 수 있었던 환자의 회복율이 그렇지 못한 환자보다 빨랐다거나, 죄수들 가운데 가까운 곳에 전원이 보이는 감방 안에 사는 죄수의 유병률이 낮게 나왔다는 등의 보고는 심리학자들의 설명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그러니 사람들이 산을 찾고 그곳에서 평화의 기운을 얻어가는 일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그런데  숲에 들고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무한한 평온을 얻고 행복감을 맛보는데, 과연 그곳에 상주하는 여타의 생물들은 어떨까 하는 대목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동물들에게 낮은 휴식의 시간이다. 그런데 사람이 숲에 드는 시간은 주로 낮 시간이다. 그러니 편하게 쉴 시간을 보장 받기가 쉽지 않을 거다. 신기한 생물이 보이면 일단 내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도 숲에 사는 생물들에게는 괴로움이다. 누구나 하나씩 갖고 다니는 휴대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곤충을 비롯한 동물들에게 해가 된다는 보고가 종종 나온다. 왁자하게 떠들며 지나치는 산행이 무심코 연못에 던진 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짐작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언제나 생각의 중심에는 ‘사람’만 있기에.

사람들이 자연환경에서 평온한 느낌으로 충만해질 수 있는 건 그 안에 함께 살아가는 생물들과의 교감을 간접적으로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숲이란 곳은 총체적인 생물들의 연대 없이 유지될 수 없는 곳이니까.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 중에는 다른 생물과 오랜 세월을 친하게 살아온 흔적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감각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날 우리는 다른 생물과 더불어 살아오던 그 기억을 애써 잊고 있는 듯하다. 다른 생물과의 친밀감을 더 이상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려 인간 이외의 생물들을 극한의 지경으로 내몰고 있는 형상이다. 그리고 그런 극한의 지경이 결국은 인간에게 되돌아올 거라는 경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외면하는 중이다.       


숲이 있던 자리를 밀어내고 들어선 도시, 이 도시를 공유하며 살고 있는 생물들의 삶은 어떠할까? 북촌길을 걷다 만났던 장면이 떠오른다. 양쪽으로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그 가운데에는 차 한 대가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있다. 내가 그곳을 걷다가 한 떼의 참새가 포르륵 날아오르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귀여워 움직임을 좇아봤더니 예닐곱 마리쯤 되는 참새 떼가 근처 나뭇가지에 올라앉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이내 정물이 되어 그들을 관찰했다. 주변의 움직임이 사라지자 한 마리가 내려왔고 곧이어 한 떼의 참새들이 따라 내려왔다. 그들이 내려온 곳에는 과자 두어 개가 있었다. 그걸 부리로 쪼아 먹다가 갑자기 포르르 또 날아오른다. 저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새 떼는 날아오르고 사람들이 지나가고 다시 조용해지자 참새 떼는 내려오고 반대쪽에서 차 한 대가 다가오자 또 참새 떼는 날아올랐다. 고 작은 과자를 쪼아 먹느라 날아오르고 내려앉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던지. 중간에 몇 마리가 부리로 과자를 물고 가려는 듯 했지만 너무 다급했던지 떨어뜨리고 그냥 날아오를 때가 몇 번 있었다. 끊임없이 천적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살아야하는 그들에게 도시에서의 천적은 인간과 자동차로 늘었다. 원래 생태계라는 곳이 먹고 먹히는 곳이라지만, 예상치 못한 천적이 늘었으니 도시에서 그들의 삶은 고달프다.

하긴 도시에서 새들에게 천적이 된 건 사람, 자동차 말고도 또 있다. 빌딩이다. 빌딩 유리창에 비친 나무나 하늘을 실제로 착각하고 날다가 부딪혀 죽는 새들의 숫자가 만만치 않다. 특히 산지 가까이에 있는 유리창의 경우 숲이 반사되어 이런 사고는 더욱 빈번하다. 이런 조류충돌사고는 인간에 의해 새들이 죽는 원인인 서식지 감소 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버드세이버’라고 해서 독수리 등 맹금류 모양의 검정 스티커를 빌딩 창문에 붙이는 운동이 잠깐 유행한 적도 있지만 그건 거의 효과가 없는 걸로 밝혀졌고, 최근에는 유리창에 점을 찍어 조류충돌을 예방하는 일이 알려지고 실행에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도시란 공간은 사람이 중심에 있다. 사람 이외의 생물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기란 참 어렵다. 도시는 본래부터 도시가 아니었다. 도시 이전에 그곳은 많은 생물들의 공동 터전이었다. 다양한 생물가운데 하나인 인간이 어느 날부터 슬그머니 사는 곳을 넓혀 급기야 도시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줄어든 서식지대신 들어선 도시로 인해 자꾸 떠밀리듯 쫓겨나거나 희생되어 사라지는 생물들이 늘 수밖에 없다.      

봄 소식이 이르게 전해지는 경칩 즈음이면 땅 속에서 겨울잠 자던 개구리들이 깨어나 짝짓기를 위해 계곡으로 이동하는 시기다. 밤에 주로 이동을 하는데 이즈음이면 로드킬 당한 개구리 사체가 엄청나다. 그들이 계곡으로 다니는 이동을 무시한 채 도로가 난 까닭이다. 그곳으로 내가 지나다니지 않았으니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잊고 있다 생각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내재된 자연, 그 자연의 기억을 새로 끄집어 내야한다. 하나 안에 일체가 살아 숨 쉬고 일체 안에 또한 하나가 살아 숨 쉬는 진리는 생물들과 서로 그물처럼 얽힌 관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이 살 수 있는 곳이어야 나도 살 수 있다는 진리를 중중무진 법계에서 일중일체다중일이라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이미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으니까. 진리가 내 생활 속에서 실현될 때 비로소 진리는 생명을 얻는 게 아닐까. ‘나만’이 아니라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가치가 가장 귀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우리와 대자연의 관계, 얼마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관계이던가.




매거진의 이전글 라벨이 말하지 않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