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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형 Feb 25. 2022

춤추는 까마귀




우체국에 가서 책을 보내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왼쪽 발가락이 모두 잘린 비둘기를 만났다.

이 비둘기는 지난 주에도 봤던 그 비둘기인 듯 했다.

그날 날도 무척 추웠는데 한쪽 발을 살짝 절면서 걸어가길래 살펴봤더니 그랬다.

해서 주머니에 마침 호두가 있어 그거 반쪽을 던져주었더니

반갑게 달려와 먹고 갔던

그래서 기억이 났다.

발가락이 잘린 새들이 도시에 워낙 있다보니

같은 새인지 확신할 순 없는데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 가까이에 빵집이 있어

빵을 하나 사가지고 다시 그 자리로 가니 아직 있다.

빵을 잘라 던져주니 허겁지겁 먹는다.

씹지도 않고 먹네 하고 생각하다가

새들은 이빨이 없다는 게 생각났다.

목이 마르지 않을까 싶은데 마땅히 물을 구할 수도 없고

안타깝게 좀 지켜봤다.

그때 까마귀 소리가 들려 올려다보니 전깃줄 위에 까마귀가 한 마리 앉아있다.

어쩌면 저 녀석이 빵을 노리는 건 아닐까 싶고

까마귀가 오면 비둘기는 맥도 못 추고 빵을 뺐겨버릴 것 같았다.

빵 한쪽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하고 서 있으면서

까마귀를 올려다봤다.


까마귀가 갑자기 춤을 춘다.

발가락으로는 전깃줄을 움켜쥐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입으로는 두 종류의 소리를 낸다.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며 소리도 몸의 움직임에 딱 맞춰서 내는거라.

내 눈을 의심하며

스맛폰을 꺼내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 1분 가까이 영상을 찍는 중에 다섯 번쯤 춤을 추면서 소리까지 냈다.

소리는 아마도 까마귀가 부르는 노래가 아닐까 싶다.

(이런 행동은 까마귀가 구애행동을 하거나 구애행동을 연습할 때 하는 모습인 것 같다고.. 

주변에 까마귀가 없었던 걸로 봐서 아마도 연습 중이었던 듯..)


마치 약주 거나하게 걸친 아저씨가

흘러간 유행가를 부르는 듯한 그런 모습..

너무 웃겨 한참을 까마귀를 쳐다보는데

그곳은 버스정거장이라 버스들이 쉴새 없이 정차하고 떠나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내려다본다.

그러니 까마귀는 인간의 모든 활동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거다.

어쩌면 주정꾼을 보다가 배운 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만큼

어떤 인간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 사이 비둘기는 빵 하나를 다 먹고

두 번째 빵을 던져줬다.

까마귀 먹으라고 올려놓을 곳을 찾다가 그냥 왔다.

까마귀는 부러 챙겨주지 않아도 잘 찾아먹으니


아파트 근처로 오는데 오목눈이 소리가 요란하다

떼로 다니는 오목눈이가 휙휙 지나가더니 우리 라인 입구 왼쪽에 있는 단풍나무로 몰려간다.

아주 가까이에서 오목눈이를 보게 된 거다.

나무 줄기에 붙어서 뭔가를 먹는 눈친데

한차례 수선스레 나무줄기에 달라 붙어있다

건너편 나무로 간 사이에 

가까이 가서 나무를 살피니

지난 번 가지치기하며  잘라낸 줄기로

단풍나무 수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싹 가문 이 즈음

마침 물관을 타고 수액이 오르기 시작하니

새들에겐 또 요긴한 생명수가 된다.

오래 전 나무 줄기를 새들이 부리로 긁어서는

흘러나오는 수액을 먹는 장면을 관찰한 적이 있다.


겨울에 눈이 잘 내리질 않으니 새들이 물을 찾느라

숲 바닥의 낙엽도 뒤지며

얼음을 찾아 쪼아먹기도 한다고..


어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러시아 시민들은 반전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고

체포되기도 한다.

연대하는 마음이 그나마 세상을 지탱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경기 침체에 코로나에 국지적이기 하나 전쟁까지

그리고 광범위한 기후 재난까지...

세상은 혼돈 속으로 자꾸 들어가는 것 같은데

새들은 그런 점에서 인간보다 나은 걸까?


*니꼴라가 엄마 생일 선물로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가는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환한 꽃다발을 받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니꼴라는 잠시 후 친구들과 티격태격하느라

이 풍성한 꽃다발은 지나가는 자동차에 던져지고

차를 쫓아가다 결국 시들해진 장미 꽃 한송이를 들고 간다.


푸틴의 야욕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러시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리는 우크라이나

친러 부패세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안간힘으로 선출된 젤렌스키

오렌지혁명과 존엄혁명으로

정치혁명을 이루려 부던히도 노력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

나토 가입을 명문화하느라 러시아 침공의 명분을 줬으나

(그렇다고 러시아의 침공이 정당하는 얘긴 절대 아님)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은 손익계산서 따져가며

전쟁통에 낄 이유를 몾(안)찾고 있다.

이 와중에 러시아 시민들은 반전시위를 벌이다 천 여 명이 잡혀갔다고

그래도 양심이 살아있어 고맙고

어린이 병원에 중증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가들은 이 전쟁통에 어찌 될지...

게다가 체르노빌까지 점령하고 직원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데

1986년 체르노빌 사고로 피해를 입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은

이 사태를 어찌 관망할지

참 안개속이다. 

전쟁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인할 수 없다.

선제타격? 경제력으로 우위이니 선제타격해서 선점하겠다는 것처럼 멍청한 생각이 또 있을까?

전쟁은 벌이는 순간 이겨도 피로스의 승리다..


그 까마귀는 우크라이나에 전쟁난 소식은 들었을까?

너무 영리해서 어디까지 까마귀가 우리를 알고 있을지

이제 그게 슬슬 궁금해진다.

니꼴라가 들고가는 저 꽃다발은

오늘 춤추고 노래한 까마귀에게 바쳐야할 것만 같은데...





202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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