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015B음악을 들었다.
내 푸른 시절에 즐겨 듣던 015B
1990년에 활동을 시작해서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참 꾸준하구나 싶으니 그들에게 존경의 마음이 절로 인다.
(꾸준과는 담 쌓고 사는 내가
오늘까지 그림을 32일째 날마다 그리고 있으니
덩달아 나도 셀프 리스펙!^^)
객원 가수로 달마다 곡을 내고
그걸 모아서 일년에 한번씩 음반을 내고
참 탐구적인 그룹이지 싶다.
가요에 거의 문외한이지만
이 그룹이 나왔을 때 바로 맘에 들었다.
뭐랄까, 식상함에서 완전히 탈각한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정석원과 장호일, 두 사람은 이따금 티비에 출연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우리 집에서 티비가 퇴출된 지 20년이 되다보니
까마득한 옛날 얘기다.
환경청 전화번호가 노래 제목인 4210301
이 노래 덕에 빗발치는 전화로 결국 환경청이 전화번호를 바꿨다는 에피소드도 있는 노래.
가사엔 환경적인 내용도 나오는데
들을수록 괜찮은 곡이다.
오늘은 삼일절
태극기를 안 단 지 몇 년은 된 것 같다.
태극기를 달지 않기 시작한 건 광화문 광장에 언제나 소음과 함께 나부끼는 태극기를 본 무렵부터였지 아마
난 국수주의자도 아니고, 그러니 뭐 꼭 태극기를 달아야 하나, 하는 생각과
아이들이 어리다면야 교육적인 차원에서라도 달 텐데.. 스스로 변명을 세워놓고
내걸지 않은 지가 꽤 된다.
우크라 사태를 보면서
이번 삼일절이 각별하게 느껴지긴 한다.
그렇게들 피흘리며 독립을 원했던 조상들이었을 테니까...
오후가 되어서 국기를 달아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젠 태극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생각이 나질 않았다.
1919년 그 날 전국 일곱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는 게 31운동의 시작이었다.
나랄 팔아넘긴 자들이 있는가 하면
또 나랄 되찾으려는 의인들도 있었다.
세계일보에 장은수씨 칼럼이 마침 페북에 올라와 그걸 읽으며
새삼스러운 내용을 접하고 인사이트를 얻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우리는 늘 영웅만을 기억한다.
삼일절 역시 마찬가지..
흔히 33인이라 불리는 면면들, 그 가운데는 훗날 변절했던 이들도 있지만
언제나 삼일절과 33인을 관용구처럼 기억한다.
아니 기억하라.배웠다.
생각해보면 전국 일곱 지역에서 소리쳤을 그 함성의 집합체들
한명한명의 목소리는 왜 완전히 뭉개져 아우네 장터나 겨우 소환될 따름이어야 했을까?
권보르레 씨가 쓴 '3월 1일의 밤'에는
31절을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수많은 민초들을 기억해내고 있다.
당시 삼일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 숫자가 식민 권력의 통계만으로도 60~100만 명이라 한다.
실제론 훨씬 더 많았을 걸로 추정할 수 있겠지.
당시 인구가 1600만 명정도였다니 대략 3.7~6.2퍼센트가 이 운동에 참여했다는 거 아닌가?
대체 어떻게?
지난 촛불 때 참여했던 누적인구가 180만 명 정도였고
그 숫자 덕에 무혈혁명을 이루었다는 칭송까지 세계인들로부터 들었다.
그뿐인가
그 유명한 3.5%의 법칙을 입증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런데 많게는 배가 되는 숫자가 당시에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에 전국적으로 봉기를 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대체 이들은 어떻게 이런 결집을 했을까 싶다.
그 숫자가 어떻게 가능했던 숫자인지 잘 가늠이 안 되었다.
그러다 의문이 풀렸다..
칼럼을 쓴 장은수 씨와 그의 페북에서 댓글로 나눈 이야길 옮겨본다.
"전체의 3.7~6.2퍼센트가 참여.. 그 머릿수를 채웠을 무수한 무명씨를 생각하는 삼일절입니다. 덕분이에요. 촛불의 함성이 3.5%정도였다던데 그것만도 어마어마하다 생각했고 그게 발달된 인터넷 덕분이라 생각했는데 대체 저 시절 어떻게 저런 민중들을 추동할 수 있었을지(동학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알고 있긴합니다만) 다시 생각해도 심장이 뛰네요..."
"정말 놀라운 숫자죠... 인터넷은 입소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제 전체 입소문의 7% 정도에 불과하고요....^^;;; 동학도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자발적 대표와 자율적 참여가 무척 많았습니다."
"자율적 참여, 자발적 대표 이걸 어떻게 조직했는지 그 뒷배가 너무나 궁금합니다. 다음번엔 제 의문에 답을 해주시는 글을 써보시는 게 어떨지요?ㅎㅎ 뭐랄까 그 시절엔 커먼즈가 아직 많이 살아있던 시절이어서 그것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문득. 그러니 독립도 내 문제로 가져올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 그게 그냥 저절로 되었어요...^^;; 특별히 조직되지 않고요...ㅋㅋ 산발적으로.... 작게, 자주, 곳곳에서..... 조직은 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아니, 어떻게요? 세상에 그냥 저절로가...ㅎㅎㅎ 믿을 수 없는 세상이었네요!"
"저희는 운동에서 조직을 지나치게 과신해요.... 물론, 전투 환경에 들어가서 폭력/위력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려면 어느 정도 필요하죠... 또 대다수 농민 혁명이 그렇듯, 정권 파괴 후 새나라 건설하려면 주체가 있어야 하긴 합니다...
하지만 민중들은 훨씬 자율적, 자발적입니다... 꿈을 믿으면 알아서 합니다... 열렬히 참여했다가.... 그래서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져요...ㅜㅜ 하지만 그 흔적은 오랫동안 남아서 기어이 세상을 바꿉니다...
정당이나 조직은 중요하지만, 또 아무것도 아니에요... 민중의 꿈에서 멀어지면 한순간 물거품이죠..."
""음. . . 제가 사실 궁금했던 건 당시 민초들이 저렇듯 자발적인 행동을 추동할 수 있었던 바탕이 뭐였을까였어요. 이들에게 어떤 정신이? 그런 의문이었어요. 동학 이야길 꺼냈던 건 당시의 조직이랄 수 있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뭐가 있었던 걸까 궁금했던 거죠? 역시나 조직이었을까요?^^;;;
여튼 자발성, 자율성이 꿈을 믿는데서
결국 꿈 다시 말해 상상하는데서 비롯되었다는 말씀, 중요하단 생각을 다시 합니다. 제 결론도 늘 상상력이었는데요. 얘길 하면서도 2% 부족한 무언갈 느끼곤 했는데 (아마도 조직을 떠올린듯 싶네요, 쓰다보니 드는 생각)확신을 가져도 되겠다 싶어요. 증거가 있으니까요.^^"
"그냥 꿈입니다.... 장(場)이 열리면 분출하고, 장이 닫히면 복류하는.....^^"
장은수 씨의 마지막 말이 내게 쿵! 하고 와 닿았다.
아주 강렬하게...
환경 강의를 할 떄마다 내 결론은 언제나 상상력이었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좋은 삶을 우리 꿈꾸자했다.
그런데 그게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훨씬 전에 실재했다는 게
그야말로 "꿈"만 같았다.
올해 삼일절은 유난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꿈을 꾸자,
더 좋은 세상,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어떤 생명도 아프지 않은 그런 세상을 꿈 꾸자!
2022.3.1 봄비가 종일 내린 날
*앨범 재킷은 유화여야 표현 가능한 디자인
난 수채 색연필.. 해서 아주 새로운 그림이 되었다..고 애써 위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