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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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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형 Mar 13. 2022

반가운 봄비다


비가 내렸다.

오후에 뒷산에 다녀왔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계곡물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소린지

오늘 비가 겨울에 마침표를 찍었다.


울진 산불도 이 비로 진화를 마무리 짓겠구나 싶었다.

누군가는 이 비를 봄비가 아닌 진화비라 했다.

숲에서 밤낮으로 사투를 벌였을 이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2019년부터 2020년을 걸쳐 6개월 가까이 불타던 호주 산불은 너무나 오래도록 기다리다 내린 비가

폭우가 되었다.

다행이도 오늘 비는 적절했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지만 얼마나 고마운지.

오후 다섯 시 넘어 산에 오르면

새소리가 숲에 가득하다.

주로 박새 소리가 들리고

중간에 청딱다구리 소리도 끼어 있다.

그 외 새소리를 나는 구분할 수 없으니...뭐.


계곡물이 돌돌 흐르니 목이 말랐던 동물들 충분히 목을 축였을 테고

새들은 목욕도 마쳐 개운하겠다 싶은 생각에

내 몸마저 개운하게 느껴졌다.

산천초목들, 해갈되니

이제 곧 잎눈 꽃눈 한껏 부풀어 오르겠구나 싶다.


자연의 이치는 비와 만물의 연결을 가르쳐준다.

비에서 비롯된 온 생명들

들숨 날숨이 느껴진 날이었다.


계곡물에 고맙다는 마음이 흠뻑 일었다.

세상에 고맙지 않은 게 어디있을까?

자연과 나는 결국 한 몸, 그러니 내게도 고마울 일이다.


고맙습니다.^^


오늘은 바다풍경을 그려봤다.

남의 그림을 보고 그린 그림!

이 그림은 일출을 그린 거지만

이 그림을 보며 바다 위에 달이 뜬 풍경이 떠올랐다.

작년 초에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한 교육연수원에 강의를 가느라

경포 바닷가 호텔에서 일박을 했다.

그날 밤 바다 위로 뜬 달이

수면 가득 윤슬을 리던 풍경이 떠올랐다.

바다 위로 떠오르는 달을 처음 본 건 3년 전 제주에서였다.

보통 바다는 낮에 가니 바다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볼 일이 그 전에 없었던 것 같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각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보전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질까?


동해안 호텔은 그후로 가지 않는다.

가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호텔 옥상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봤다.

1월, 한 겨울에...

수영장의 물은 뜨듯하게 덥혀져 김이 나는 것 같았다.

확인을 한 건 아니지만 그 추운 날 수영이 가능할 수 있을까?

그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에 대해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나

수영장을 만든 사람이나 완전히 무감하구나,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머문 호텔은 바닷가 바싹 가까이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 이전에 그곳은 솔밭이었을까?

모래 사장이었을까? 모래 언덕이었을까?

나로선 알 길이 없다.


보존을 강조하는 내 말과 내 행동의 부조화를 느끼고 부끄러웠다.


아름다운 달빛은 다른 곳에서 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가능하면 자연이 잘 보존된 곳이어야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겠다 싶었다.


202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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