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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형 Mar 12. 2022

귀소하는 뱁새 떼


어어어 하다보면 하루를 그냥 집에 셀프 감금하는 일이 잦아서

오늘은 작정하고 4시반에 알람을 맞춰뒀다.

일을 하다 알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무조건 멈추고

산책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3시부터 한달에 한번 줌으로 모여 공부하고 나누는 모임이 있는데

그걸 깜빡 잊고 있다가 3시 훌쩍 넘어 알게되었고

25분쯤 지각합류를 해서

태국의 공동체 이야기며 전북 장수로 귀농한 멤버의 이야기를 들었다.

태국은 아속 공동체를 비롯해서 워낙 공동체가 잘 조직된 나라다.

불교국가답게 사찰을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다보니

신실한 불자들의 공동체는 저런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6,7년쯤 접한 적이 있다.


가난하지만 소박한 삶을 사는 이들

오늘 발표를 들으며 기억 저편에 있던 것들이 하나씩 재현되었다.

장수로 귀농한 이는 도시에 살며

박사과정까지 마친 사람으로

삶을어떻게 살 건가에 관한 고민을 깊이 하고 있었다.

지구에 잠시 왔다가는 동안 최소한의 부담만 지우고 가는 이들의 삶은 아름답다.

그런데 이미 탄소에 중독이 된 우리가 그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직 모임은 끝나지 않았지만 더 미루면 해가 떨어질 것 같아

이어폰을 꽂고 산책을 나섰다.

이렇게라도 걷지 않으면 정말 운동부족이 될 지경이라 의식적으로 걸었다.

집을 나서자마자 딱다구리의 드러밍 소리 우렁차다.

이어폰이 무색하다.

아무리 올려다봐도 도무지 어디에 있는지 녀석이 보이질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데로 소리로 만나면 될 일이다.

노력해도 못 찾는 걸 알고 나서 스스로 합리화하는 거다.

내친 걸음 산으로 향했다.

숨이 턱턱 차오르는 비탈진 길을 택해서 걸었다.

그래야 다리에 근육이 유지되니까.

허벅지가 제법 단단했는데

조금만 운동을 게을리하면 금세 풀어지는 것 같다.


땀도 삐질삐질 흘리면서

그렇게 걸어서 어디쯤 올라갔다 오면 상쾌하다.

오르는 동안의 고통이 없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상쾌함이다.

스스로 고통 속으로 잠시 내던지고 얻은 상쾌함이다.

내려오다 참나무 가지로 날아드는 노랑턱멧새를 봤다.

휙 날아들더니 참나무 가지에 앉는다.

쌍안경으로 한참이나 조우했다.

그 근처에서 늘 이녀석들을 본다.

그러니까 그 둘레는 나름 노랑턱멧새의 움벨트인 거다.


아파트로 들어서는데 붉은머리오목눈이 소리가 아파트 가득했다.

나무에서 나무로 몰려다니다 가지에서 진딧물인지 무엇인지 먹다가

또 포로록 몰려다닌다.

쌍안경으로 욘석들을 좇으며 초점을 맞추다 아웃포커싱되다를 반복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새 가운데 가장 예쁜 새가 붉은머리오목눈이다.

전체적으로 붉은 빛에다 눈이 오목하니 어여쁘다.

뱁새라고도 불리는데

뱁새는 분수를 모르고 과욕을 부리다 망조가 든 새로 속담에 등장한다.

그 속담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어여쁜 새를 그리 험악한 비유로 써먹다니!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니 녀석들은 귀소 중이었다.

큰 나무로 들어가 밤을 지내는지

제법 큰 전나무던가? 기억나질 않는데 무튼 그 나무 속으로 쉴새없이 빨려들듯 들어가는 걸 보고 집으로 왔다.


산에 오르는 길에 주운 잣나무 구과를 그려보았다.

솔방울도 하나 주웠지만 둘을 그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자정 무렵이었으니

안에 있던 씨앗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텅 빈 껍데기다.

껍데기는 가라, 할 때 그 껍데기는 부정적인 의미이지만

사실 껍데기는 장한 일을 한 뒤 남겨진 거다.

그러니까 껍데기도 껍데기 나름인 거다.


어딘가로 훌훌 날아갔을 씨앗들,

숲을 이루었으면.


202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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